영화 <습도 다소 높음>을 연출한 고봉수 감독.

영화 <습도 다소 높음>을 연출한 고봉수 감독. ⓒ 백지수표(주)

 

코로나 19 팬데믹 2년 차,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담아낸 영화는 이 작품이 처음일 것이다. B급 코미디의 달인, 특유의 개그감으로 꾸준히 영화를 발표해 온 고봉수 감독이 내놓은 <습도 다소 높음>은 말 그대로 코로나 시국을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 혹은 서민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23일 온라인을 통해 고봉수 감독과 영화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습도 다소 높음>은 2020년 한 여름을 배경으로 폐관 위기에 모인 극장에서 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그리고 소개팅 자리에서 여성에게 눈치 없이 행동하다가 차인 무명 배우, 마침 해당 극장에서 시사회 행사를 갖게 된 감독과 출연 배우들이 각각 저마다의 사정을 토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고봉수 감독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고봉수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들이 매번 출연한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엔 감독의 장편 데뷔작 <델타 보이즈>에 출연한 이후 인연을 이어온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차유미 배우가 그대로 다 출연한다. 최근작에서 새로운 얼굴의 배우를 캐스팅했던 것과 다소 다른 흐름이다. "영화제를 다닐 때마다 팬분들이 <델타 보이즈>나 <튼튼이의 모험> 때 했던 배우들을 한 작품에서 다 보고 싶어하시더라. 다들 바빴지만 의기투합했다"며 고 감독이 웃어 보였다.

코로나 시국을 정면돌파하다

이번 영화엔 앞서 말한대로 코로나 상황을 살아가는 감독의 시각과 나름의 해석이 담겨 있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것을 두고 그는 사명감이란 표현을 썼다. 

"코로나로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고 우울해하시더라. 영화로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작년 6월 경 코로나19 유행이 잠깐 주춤했을 때 시엠닉스라는 배급사 대표님께서 극장을 빌려 행사를 할 게 없을까 하셔서 차라리 극장을 빌려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었다. 사람들이 마스크 쓰는 걸 불편해하니 그걸 소재로 할 수 있겠다 싶었지. 뉴스를 보면 마스크를 안 쓰겠다며 난동을 부리거나 진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제게 인상 깊게 남았던 것 같다.

사실 영화엔 코로나로 극장 산업이 몰락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담겨 있다. 마지막 장면에 고전 <시네마 천국>을 오마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캐릭터가 극장 문을 닫고 나가는 것도 나름 의미를 담은 것이다. 요즘 OTT 서비스로 영화를 보는 분도 많지만 영화라는 건 극장이라는 장소가 없으면 안 된다."

 
간략한 대답이었지만 여기엔 일인다역을 하며 영화 작업을 해온 고봉수 감독의 뚝심이 담겨 있어 보였다. 그는 그간 발표한 작품들의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촬영, 편집까지 도맡곤 했다. 이번 영화 또한 단 4회차 만에 촬영을 끝낼 정도로 1인 시스템이 손에 익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습도 다소 높음>엔 나름 음악 감독과 미술 감독을 둘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고봉수 감독은 "이수빈 음악감독님께서 감사하게도 제게 음악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먼저 제안해 주셔서 높은 수준의 음악을 담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건 모든 감독의 꿈일 것이다. 고봉수 감독은 그간 배우들, 주변 분들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새삼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고교생 레슬러 유망주를 다룬 <튼튼이의 모험> 땐 배우들이 자신의 돈을 십시일반 투자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번 영화 또한 투자자의 결단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 관련 이미지.

영화 <습도 다소 높음> 관련 이미지. ⓒ 백지수표(주)

 
숨은 공신들

<습도 다소 높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도움을 준 이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배우 이희준, 그리고 고봉수 감독의 배우자였다. 자타공인 이희준 배우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상업영화와 드라마에서 고른 활약을 보인 그가 영화에 출연을 결정했다는 건 감독 입장에선 큰 힘이 됐을 터. 고봉수 감독은 "신민재 배우를 통해 이희준 배우님을 알게 됐는데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재빠르게 시나리오를 보냈다"며 "마침 그분이 참여하던 <보고타>가 잠시 촬영이 지연돼 하루 정도 시간이 나신다고 하더라. 시나리오를 드린 다음날 바로 하겠다고 연락주셨다"고 일화를 전했다.

"제작비가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이희준 배우님께 출연료를 제대로 못 드렸다. 거마비 정도 챙겨드리려 했는데 도와드리려 한 거라며 그것도 거절하시더라.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아내와 많이 상의했다. 소개팅 장면에서 아내에게 많이 물어봤다. 남자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정이 떨어지는지 말이다. 그리고 제목도 아내의 아이디어다. 도저히 제목이 생각 안나서 물어보니 시나리오를 읽고 단숨에 지금 제목을 말하더라. 습도가 높은 날 비를 기다리곤 하는데, 그 기다리는 마음이 희망을 상징한다는 설명을 듣는데 딱 이거다 싶었다(웃음)."

어려운 상황임에도 꾸준히 매년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을 발표해 온 고봉수 감독은 여전히 코미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용화 감독과 거대 예산의 프로젝트 또한 차질 없이 준비중이라고 한다. 관객이 기대하는 코미디, 개성을 그 또한 잘 이해하고 있었다. "진지한 이야기는 좀 오글거려서 성향상 잘 안 맞는 것 같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제겐 사실 과분한 사랑이다. 어떤 분들은 저보고 한국의 주성치라고도 하는데 영광이지. 코미디가 사실 남녀노소가 한 번에 좋아하기 어렵다. 그만큼 코드의 범위가 넓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렵겠지만 다들 좋아해 주시는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 예전엔 주로 꿈에 대한 이야길 많이 했는데 나이도 들고 가정이 생기다 보니 다른 이야기도 해보고 싶더라. 지금 기획 중인 영화가 있는데 아마도 내년에 선보일 수 있지 않나 싶다. 이렇게 우울한 시국에 영화 한 편으로 마음을 푸셨으면 좋겠다. 그게 영화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는 나름 제 작품을 사랑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으로 만들었다."
 
 영화 <습도 다소 높음>을 연출한 고봉수 감독.

영화 <습도 다소 높음>을 연출한 고봉수 감독. ⓒ 백지수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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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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