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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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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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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딸의 개학 날이다.    

"오전에 얼굴 보는 거 오랜만이다?"
"그러게."


식탁 앞에 앉은 딸이 돈가스와 김밥을 와구와구 먹더니 '뚜웅' 하는 소리가 났다('꿀꺽'보다는 '뚜웅'에 가깝다).

"뚜웅 소리도 오랜만이네. 반갑다. 뚜웅!"
"김밥 때문에 목이 메어서 그래."
"이때 계란국을 먹어야지."


내가 숟가락에 국을 떠서 주자 딸이 제비 새끼처럼 주둥이를 갖다 댔다.     

녀석이 국을 먹거나 볼이 미어지도록 음식을 먹는 걸 보는 게 얼마 만인지. 학교 가면 급식 시간까지 못 먹으니까 배를 채우고 가야겠다 싶었는지 딸은 반찬 투정은 넣어두고 접시를 싹싹 비웠다.      

이야, 이래서 학교를 가야 돼, 개학을 기다리는 대한민국 엄마들의 마음이 모두 하나가 되는 순간. 개학 시기도 어쩜 이리 타이밍이 절묘한지, 엄마들의 분노지수와 인내심의 상관관계를 역학 조사해서 개학 일을 정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평균 인내심에 미치지 못하는 나는 어제 그만 폭발하고야 말았다. 아침에 월명산을 갔다가 오는 길에 생일 선물로 받은 쿠폰으로 케이크를 샀다. 딸한테 방학 마지막 날을 애도하자며 약을 올릴 심산이었지만 돌아온 집은 적막강산. 예상대로 자고 있는 녀석을 뒤로하고 괜찮아, 일어나면 하면 되지, 하고 수업 준비를 했다.  

집에서 과외를 하는 나는 다음 수업까지 3시간이 비어서 나한테는 점심이고 딸한테는 아침인 식사 준비를 했다. 시래기밥을 하고 비벼 먹을 양념장, 순두부찌개를 만들었다. 밥을 푸고 숟가락을 놓으면서 딸을 불렀다. 일어나는 기척이 없네?

물을 뜨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면서 다시 불렀지만 묵묵부답. 그렇게 대여섯 번을 부른 뒤 순두부찌개의 뚜껑을 여는 순간 나의 이성의 뚜껑도 함께 열리고 말았다. 국의 뜨거운 김과 나의 화가 결합해서 인간이 냈다고는 믿기 어려운 괴성이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 인가 하고 튕기듯 나온 딸 초밥이 얼굴을 보니 아직 꿈과 현실을 헤매고 있는 듯했다.
   
"너 지금 몇 신데 아직까지 자는 거야. 1시야, 1시. 참는데도 한계가 있어. 사람이 예의가 있어야지. 밖에서 밥 차리는 소리가 들리면 나와서 숟가락도 놓고 해야지, 그렇게 자고 있어? 방학 동안 엄마가 잔소리 안 하려고 애쓰는 걸 알면 너도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지. 오히려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다가 1시가 말이 돼?"     

자기 결정권을 가진 아이로 키우기 위해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는 그 엄마는 오늘은 <기생충>의 박 사장으로 변신해서 '선'을 얘기하고 있었다. 화를 내는 중간에도 그놈의 자기 결정권이 생각나서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이런 이중고라니. 화를 다 내고 난 다음에는 완전히 KO패 당한 기분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모순적인 인간이 나라는 사실에 절망하고 나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비둘기처럼 다정한 딸과 나의 모습은 거센 폭풍 후가 지나간 후의 평화 같은 거였다. 나는 학교 가는 딸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했고 딸도 침대를 떠나 세상 밖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벌써 이년 째잖아" 
     
딸이 없는 아침, 모처럼 홀가분하고 기분이 들떠서(이렇게 자식은 부모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인가 봅니다) 대학 친구인 동동 브라더 맘에게 전화를 했다. 딸의 개학과 하루를 참지 못하고 폭발한 일을 동동 맘에게 스토리텔링을 했더니 동동 맘은 숨이 넘어가게 웃더니 말했다.

"어째 그리 나랑 멘트가 똑같냐?"

동동 맘도 동동 형제에게 '예의와 선'의 중요성을 설파한다고 했다.     

"우리도 어제 개학이었는데, 학교는 안가."

동동 맘과 동동 브라더가 살고 있는 경기도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여서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군산이다. 

"몇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있는 아이를 보는 게 제일 힘들어."

학교라면 쉬는 시간에 친구들하고 놀고 화장실을 가느라 움직이지만,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아이의 운동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친구가 말했다. 성장기 아이들이 이렇게 활동량이 없는 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괜찮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이년 째잖아."     

아이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학교와 함께 나눠지다가 온전히 엄마 혼자서 감당해야 하니 얼마나 부담이 될까. 엄마는 집안에 갇혀있는 아이들 걱정에 정작 본인은 힘들다는 내색도 못 한다. 그렇게 조금씩 지쳐가는 게 아닌가 싶다. 가족은 함께하면 좋고 떨어져 있으면 더 좋은 존재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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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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