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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미 공군 C-17 수송기가 활주로를 주행할 때 함께 달려가고 있다.
 지난 1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미 공군 C-17 수송기가 활주로를 주행할 때 함께 달려가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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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이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놓고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지 시각 17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보다 철군을 엉망으로 다룬 사람은 없다"며 "이번 사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수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빠져나오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며 철군 자체는 좋게 평가했다. 철군하는 것 자체는 잘하는 일이지만, 바이든처럼 철군하는 것은 '미국 역사상 최악'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철군에 관한 합의는 자신이 했으므로, 그 부분은 빼고 2021년 1월 20일 이후에 벌어진 일만 비판하는 것이다.

바이든은 2020년 2월 29일에 트럼프가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한다. 아프간에서 미군을 감축한 데 이어 철군까지 합의해준 것이 탈레반을 키워줬다고 비판한다.

바이든은 현지 시각 16일 발표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논평(Remarks by President Biden on Afghanistan)'에서 "취임했을 때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과 협상한 거래를 물려받았다"면서 트럼프 재임 기간에 아프간에서 미군이 약해지고 탈레반이 강해졌다고 강조했다.

"이 나라에서 합중국 군대는 이미 트럼프 행정부 때 약 1만5500명의 미군에서 2500명의 병력으로 줄어들었고, 탈레반은 2001년 이래로 가장 강력한 군대가 됐다."

만약 아프간 정부군이 질서를 유지하는 속에서 미군과 연합군이 철수를 완료하게 됐다면, 두 전·현직이 '네 탓'이라며 공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미국 정부가 승전을 자축하는 상황이 일어났을 것이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2001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킨 것은 빈 라덴의 알카에다를 숨겨주는 탈레반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대리인인 아프간 정부군이 질서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철군이 완료됐다면, 트럼프와 바이든이 서로 '내 덕'이라고 주장했을 수도 있다.

반드시 고려해야 할 기본 전제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앞서 이날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직후 국외로 도피했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날 대통령궁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앞서 이날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직후 국외로 도피했다.
ⓒ 카불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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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책임인가를 규명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기본 전제가 있다. 탈레반을 완전히 축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런 현실 인식이 탈레반과의 평화협정에도 반영돼 있다. 카타르 도하에서 체결된 이 협정은, 미군이 철수하는 조건으로 탈레반이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평화협상을 벌일 것을 규정했다. 아프간전쟁의 발발 명분이 됐던 탈레반-알카에다 연계를 탈레반 스스로 끊는 것을 조건으로 미군이 철수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은 탈레반의 힘을 미국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음을 반영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를 비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거기에 있다. 탈레반의 실체를 인정해주고 미군 철수를 약속해 탈레반을 더욱 키워줬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탈레반의 완전 축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필요한 일을 했다고 봤던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출범 직후의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의 평화협정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작년 2월의 평화협정에 따라, 작년 9월부터 아프간 정부군과 탈레반의 평화협상이 개시됐다. 출범 당시의 바이든 행정부는 이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출범 2일 뒤인 금년 1월 22일, 백악관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아프간 국가안보보좌관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면서 '평화협정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평화협정 재검토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미국 의회의 아프가니스탄연구그룹이 2월 3일 제출한 보고서에서 나타난다. 이 보고서는 5월 철수 계획의 연기를 주장하면서 '미군이 철수하면 아프간 테러조직들이 3년 내에 재건될 것'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실제로는 3년이 아닌 6개월 만에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했으므로, 결과적으로 보면 위 보고서는 탈레반의 군사력을 실제보다 훨씬 낮게 평가한 셈이 된다. 하지만 금년 연초의 바이든 정부는 이 보고서에 적힌 생각대로 움직였다. 미군이 철수한 지 몇 년 안 되어 탈레반이 재집권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했고, 이런 인식은 트럼프가 합의한 '5월 1일 이전 철군'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보고서 예측대로 2021년 5월 1일로부터 3년 이내에 탈레반이 재집권해서 미국의 위신을 추락시키면, 2024년에 있을 바이든의 대통령 재선 운동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또 중국 서쪽에서 반미 진영이 득세하면,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문제를 발판으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으로서는 이런 점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철군 재검토를 시사하는 이 시점에, 철군 연기의 명분이 될 만한 보고들도 나왔다. 1월 28일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탈레반이 평화협정를 깨고 있다고 보고했다. 탈레반이 파괴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이에 대해 모하마드 나임 탈레반 대변인은 1월 29일자 성명에서 평화협정을 깨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반박했다. AFP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그는 "그들은 민간인과 마을을 폭격했고, 이는 단순한 합의 위반을 넘어 인권을 위반한 것"이라며 미국을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2월 1일 미국은 '5월 1일 철수 계획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자 유럽 동맹국들도 태도가 바뀌었다. 일례로, 2월 15일에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적절한 시기까지는 아프간에서 나토군을 철수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평화협정을 뒤집는 발언을 내놓았다.

탈레반은 경고 메시지로 이런 움직임에 대응했다. 2월 1일에는 "외국군이 5월 이후에도 머문다면 공격을 재개하겠다"며 미국을 위협했고, 같은 달 13일에는 나토를 상대로 경고 성명을 표명했다. 그달 마지막 날에는 외국군 철수를 공식 요구했다.

탈레반의 태도가 거칠어지자, 미국과 동맹국들은 한걸음 물러섰다. 예정대로 5월 1일에 철군하되 철군 완료 시점만 다소 늦추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4월 14일 바이든 대통령은 '5월 1일부터 철군해 9월 11일까지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바이든은 5월 1일 미군 철수를 개시했지만, 탈레반은 "철수 기한이 이미 지났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런 뒤 5월 3일부터 아프간 정부군을 상대로 공격을 벌였다.

5월 3일 CNN 방송에 출연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4월 30일로 취임 100일이 된 바이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A학점을 주겠다"며 "나는 점수가 짠 사람"이라는 말로 바이든을 후하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프간 철군 문제와 관련해서는 "큰 후과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힐러리 클린턴으로부터 단서 딸린 A학점을 받기는 했지만, 5월 3일 이후에도 바이든은 일관성 있게 상황을 관리하지 못했다. 계획을 다시 바꿀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례로, 6월 21일에는 커비 국방부 대변인이 '탈레반으로 인해 아프간 상황이 달라지고 있으므로 미군 철수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더 오래 주둔할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는 탈레반을 불안케 만들었다. 또 평화협정에 구애받지 않고 강공책을 펴도록 만들었다. 이런 태도는 미국이 군사행동의 강도를 높이는 악순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7월 21일과 22일, 미국은 탈레반에 대한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아프간 남부를 이틀 연속 공습했다.

아프간주재 중국대사관은 6월 19일 자국 국민과 기관을 상대로 아프간을 떠날 것을 주문했다. 아프간 질서가 유지되기 힘들다는 인식을 이 시기의 중국 정부가 갖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아프간주재 미국대사관이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아프간의 조기 함락 가능성을 보고한 것은 7월 13일이다. 블링컨 장관이 캐나다·독일 외무장관 및 나토 사무총장과 함께 외국인 철수 문제를 본격 논의한 것은 8월 13일이다. 당사자인 미국과 유럽이 한 발 물러선 중국보다도 사태 인식을 철저히 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불필요한 전쟁과 책임회피의 결과
 
아프간 전쟁 종료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중계하는 CNN 방송 갈무리.
 아프간 전쟁 종료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중계하는 CNN 방송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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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개월간의 상황을 놓고 보면, 미군 철군 이후에 탈레반이 재집권할지도 모른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우려가 탈레반을 자극해 충돌을 격화시킨 측면이 농후하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가 합의한 협정대로라면, 적어도 5월 1일 시점에는 미군이 탈레반이 아닌 아프간 정부군의 '전송'을 받으면서 아프간을 떠날 수도 있었다. 트럼프가 바이든의 실책을 운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년간의 전쟁으로도 탈레반은 끝내 약화되지 않았다. 도리어 아프간 정부군을 능가했다. 그런 점에서, 탈레반의 재집권은 부득이한 면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부득이한 일을 트럼프는 자신의 퇴임 이후로 미뤘고, 바이든 역시 자기 재임 중에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 했다. 양쪽 다 자신들의 퇴임 이후로 사태를 떠넘기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 관한 한은 양쪽 다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볼 수 있다. 

근본적 해결보다는 책임 회피를 우선시하는 태도가 전·현직 미국 행정부 내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킨 조지 부시와 더불어 그 후임자들 역시 사태 해결에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태그:#아프간 사태, #아프간 전쟁, #탈레반, #탈레반 평화협정, #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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