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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젠 2020년 덴마크 미술비평국제협회(AICA)가 선정한 ‘올해의 최고전시(작가)’ 시상식 장면
 카이젠 2020년 덴마크 미술비평국제협회(AICA)가 선정한 ‘올해의 최고전시(작가)’ 시상식 장면
ⓒ A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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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인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의 개인전 '이별의 공동체'가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 9월 26일까지 열린다. 한국예술위원회와 덴마크예술재단이 후원했다. 이번에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발표한 '이별의 공동체(2019)', 라이트 박스 사진작품인 '달의 당김'(2020) 그리고 영상작품 '땋기와 고치기'(2020) 등이 소개된다.

1980년 제주에서 태어난 카이젠 작가는 3개월 후 덴마크에 입양되었다. 한국과 덴마크를 오가며 작업을 한다. 그녀의 작업은 다학제적 연구와 직접 답사를 통해 얻는 견문을 기반으로 한다. 그걸 영상, 설치, 사진, 텍스트, 퍼포먼스, 실험영화 등에 담는다. 페미니즘 관점도 포함된 서사와 역사를 결합해 기억, 난민, 이주 등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작가는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고, 2020년에 덴마크 '미술비평국제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 Critics, AICA)'가 선정한 '올해 최고전시(작가)'로 뽑혔다. 유럽에서 명성과 위상을 갖춘 작가로 우뚝 서게 된 셈이다. 코펜하겐대학에서 미술학박사를 받고, 현재 '덴마크 왕립미술아카데미' 미디어아트 교수로 재직 중이다.

디아스포라 작가, '바리신화' 차용
 
제인 진 카이젠 I '이별의 공동체’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3층 2021 사진 김상태
 제인 진 카이젠 I "이별의 공동체’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3층 2021 사진 김상태
ⓒ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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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별의 공동체'엔 역설적으로 만남의 공동체에 대한 강렬한 염원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공동체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한국 무속의 기원이 되는 '바리공주신화'를 차용했다. 이 공주는 나중에 무당이 되어 서로 다른 것과 연결하는 자, 그걸 통해 다른 사람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자가 된다.

'바라데기'의 서사구조는 카이젠의 삶과 닮았다. 바리데기는 '바리공주(버린 공주)'로도 불린다. 왜 그런가? 그 사연은 이렇다. 옛날에 '오구대왕' 부부가 살았다. 왕비가 내리 6번이나 딸만 낳고 7번째도 또 딸이자 분노해, 왕은 공주를 바구니에 담아 강에 버렸다. 그래서 버린 공주 즉 '바리공주'가 된다. 여기엔 성차별에 대한 은유도 깔려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국 강물에 사는 노부부에 의해 구해진다. 성장 후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냈고 아버지가 오구대왕이라는 걸 확인했으나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문도 듣게 된다. 무당이 된 바리공주는 왕과 재회했고 천신만고 끝에 생명수를 구해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살려낸다. 무당을 예술가로 바꾸면 카이젠 이야기가 된다.

카이젠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무의식이 작동한 것인지 자신의 원류 찾는 데 몰두한다. 친부모도 만났지만 이에 만족지 않는다. 그녀가 체득한 광범위한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해 제주 근현대사와 연계해서 탐색하고 연구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 그리고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제주도민 상당수가 죽임을 당한 끔찍한 4·3 사건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이별의 공동체', 대안성 모색
 
제인 진 카이젠 I '이별의 공동체’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3층 2021 사진 김상태
 제인 진 카이젠 I "이별의 공동체’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3층 2021 사진 김상태
ⓒ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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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대표작 '이별의 공동체'는 역시 굿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다. 그래서 4·3 학살 때 생존자인 심방(무당의 제주말) '고순안' 할머니가 주인공이 된다. 제례 퍼포먼스가 화면 전반에 계속 반복된다. 그런데 때로 치유를 불러오는 무당의 흐느낌에 작가가 DMZ에서 녹음한 지뢰 탐지기 소리를 덧씌워져 제주의 한과 한반도 분단의 한을 연결 짓기도 한다.

카이젠이 만약 덴마크에 입양되지 않고 제주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카이젠은 덴마크 중산층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코펜하겐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요셉 보이스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라고 했는데, 카이젠 작가는 이를 입증해 보인 셈이다.

한반도, 식민·분단·냉전 원류 찾기
 
제인 진 카이젠 I '이별의 공동체’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3층 2021 사진 김상태
 제인 진 카이젠 I "이별의 공동체’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3층 2021 사진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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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긴 과정 끝에 나온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역사적 사건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파장과 사회적 소외 그리고 여성차별이 어떻게 전쟁과 이주 속에서도 공동체를 만들어냈는지 찾으려 했다"라고 설명한다. 위에서도 언급됐지만, 그녀의 작품에는 제주를 넘어 한반도의 냉전 속 분단으로 희생된 이들의 비극적 사연 등이 같이 녹아 있다.

위 영상은 작가가 과거에 버려졌다는 상처와 20세기 한반도에서 일어난 몸서리쳐지는 정치사를 연계하면서, 작가의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심적 옥죔을 표현한 것 같다. 작가는 겨울 제주 오름에서 흰 한복을 입고 드론 카메라의 원심력을 활용해 이를 촬영했다. 

그녀의 개인사는 한반도 근현대사와 닮았다. 입양으로 디아스포라가 된 그녀 말고도 우리가 몰라 그렇지 한인 디아스포라는 다양하게 흩어져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갔던 고려인들은 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한다. 그리고 강제노동에 끌려간 재일조선인들과 4·3학살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도민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가는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작품화하기 위해 5년간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과 중국과 일본, 독일과 미국, 카자흐스탄(고려인거주지) 등 두루 횡단한다.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한인 디아스포라는 750만 명이고, 거기다 해외입양 간 20만 명 합치면 780만 명 정도 된단다. 작가는 이걸 개인의 희생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죽음으로 봤다.

한국 샤머니즘에서 길 찾다
 
제인 진 카이젠 I '이별의 공동체’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3층 2021. 이별의 공동체에 나오는 장면 제주 해녀들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깃발을 하늘에 날리다.
 제인 진 카이젠 I "이별의 공동체’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3층 2021. 이별의 공동체에 나오는 장면 제주 해녀들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깃발을 하늘에 날리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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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상실과 파국의 기막힌 역사가 많다. 하긴 이게 되려 풍부한 예술적 소재가 되기도 한다. 카이젠에게 자신의 예술과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피부에 가장 와 닿았던 사건은, 역시 제주에서 접한 '샤머니즘' 공동체였다. 그녀는 모두가 침묵할 때 타자에게 손을 내밀며 상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해주는 신령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모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제주도의 작은 마을에서 여전히 활발한 샤머니즘의 공동체성에 끌렸다"라며 "샤머니즘은 모두가 침묵할 때 유일하게 말을 건넬 수 있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곳 무당은 원혼을 달래주는 데 대단한 역할을 했다"라고 토로했다.

작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넘나들며 소통하는 샤머니즘에서 예술 본령과 공동체 원형을 찾는다. 이런 문제를 다룰 때는 문명사를 총체적으로 보는 인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답이 나오지 않는다. 서구에서 위로와 치유의 미학을 창시한 독일의 샤먼 작가 '요셉 보이스'의 예술론과 많이 닮아있다.

'하나됨' 위해 자매 머리 따주기
 
제인 진 카이젠 I "땋기와 고치기" 2채널 비디오 설치, 4K 울트라 HD, 반복재생 흑백화면 사운드 6:03분 각 103×153×11cm 2020. 작가의 조카에 여기에 참가하다
 제인 진 카이젠 I "땋기와 고치기" 2채널 비디오 설치, 4K 울트라 HD, 반복재생 흑백화면 사운드 6:03분 각 103×153×11cm 2020. 작가의 조카에 여기에 참가하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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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제작된 위 영상은 이번 전시에서 많은 주목을 받을 듯하다. 여러 세대, 8명의 여성이 둥그렇게 원형으로 앉아 과거 기억의 징표가 담긴 것 같은 머리카락을 만지고, 빗고, 따준다. 서로의 머리카락을 매듭처럼 묶어주면서 인간 세상이 그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의 '인드라망' 세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더 나아가 각자가 겪은 크고 작은 상처를 봉합하는 위안 공동체의 결속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관계인지 모른다. 개별화된 요즘 이런 자매공동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감흥을 일으킨다. 작가는 이런 대안 공동체와 경로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미학적 비전을 찾는다.

이수경, '달빛 왕관'전 아트선재 2층에서
 
이수경 I '달빛왕관’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2층 2021. 오른쪽에서 2번째 이수경 작가
 이수경 I "달빛왕관’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2층 2021. 오른쪽에서 2번째 이수경 작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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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도 같은 기간 동안, 이수경 작가의 개인전 '달빛 왕관'이 열린다.

이번 전에 2019년 이탈리아 '마드레미술관'과 '카포디몬테미술관'에 출품된 그녀 작품 5점과 신작 6점을 합쳐 총 11점을 선보인다. 작가가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모은 성상 부스러기를 손끝의 불로 녹이듯 작품 하나하나를 심혈을 기울여 빚었다. 정성스러운 손길에 더해진 섬세한 터치가 느껴지고, 작가가 작업에 몰입한 농밀한 시간도 읽힌다.

작가는 코로나 시대에 죽음과 공포와 좌절을 넘어 "내 몸이 곧 성스러운 신전이니 내 기운을 휘황찬란한 왕관처럼 만들어 보자"며 "난세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놓인 왕관처럼, 낮은 자세로 우리를 소중한 영물로 만들어보자!"라고 주장을 펴는 듯하다. 

이수경은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관에 초대받은 중견작가다. '대영박물관'이 그녀 작품 한 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LA카운티미술관, 보스턴파인아트박물관, 스펜서미술관, 마드리드 아르코컬렉션, 홍콩 M+ 등에도 소장돼있다.  

덧붙이는 글 | 아트선재센터 미술관 사이트 http://www.artsonje.org
제인 진 작가 관련 사이트 http://janejinkaisen.com/ http://artsonje.org/community-of-parting/
https://m.koreatimes.co.kr/pages/article.asp?newsIdx=313345&fbclid=IwAR2f4kp7j3f0NCGNh1w0pEECRmGHQ4MomMOAsPJ1lOdwy2WaxS4sDKTH0MU


태그:#제인 진 카이젠, #이수경, #디아스포로, #샤머니즘, #이별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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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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