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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화개공영버스터미널. 지역 기반시설을 두고 귀엽다고 하면 실례이려나
 하동 화개공영버스터미널. 지역 기반시설을 두고 귀엽다고 하면 실례이려나
ⓒ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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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1일부터 사흘간 머문 구례 숙소에선 어디서든 산이 보였다. 뒤에 지리산이 있었고, 저 멀리에선 이름을 알 수 없는 산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루는, 비가 지나가다 말다 하던 날이었는데 이곳은 비가 조금씩 오시고, 저 건너 산 아래 마을은 쨍하니 해가 비추는 것이었다. 이런 광경을 미국 플로리다에서 본 적 있다. 땅덩이가 넓어서 그런 건가 했는데 이런 현상이 이 나라 남녘에서도 일어나는구나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구례를 떠난다. 전날 사장님과 마지막 차 시간을 마쳤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오고 갔다. 가을에 오시라고, 나는 꼭 오고 만다고 답했다. 가을의 지리산과 구례의 풍경은 어떨지 기대가 컸다. 

떠나는 날인 지난 8월 3일은 마침 구례 장날이었다. 3과 8일 들어가는 날에만 열린다는 5일장. 인근 마을 화개장은 상설로 변했다고 들었다. 정기장, 그것도 시골장이 주는 정겨움이 있다. 나는 수도권에 머무를 무렵 성남 모란시장을 자주 갔다. 거기는 4와 9가 들어가는 날만 열리는 곳이다.

코로나19로 한동안 파장기였는데 얼마 전부터는 재개했다. 한강 이남권 최대 규모의 정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거기서 돼지부속을 먹고, 김제집 이모가 만들어주는 껍데기와 허파, 양 볶음을 먹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사장님은 장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오전 게스트하우스는 정리하고 챙겨야 할 일이 많음을 알기에 택시를 불렀다. 해가 쨍한 날이었다. 버스는 언제 올지 몰랐다. 사장님은 장에 들러 꼭 돼지국밥을 먹고 가라고 당부했다. 내가 검색한 바에 따르면 구례장은 소머리국밥이 유명했고 돼지국밥을 자주 먹던 터라 소머리로 갔다. 

장날이라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구례는 경상남도와 경계를 면하고 있는 곳이기에 경남 방언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장 복판이 시끌시끌했는데 코로나19 검역원과 좌판을 벌이는 상인 하나가 다투는 중이었다. 당사자들은 고역이겠지만, 장날 한 곳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모습은 정답고 그리웠던 풍경이다. 그들을 일별하고 소머리국밥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기다려야 하지는 않아 금세 들어갔고 국밥 하나와 막걸리를 시켰다.

소머리와 당면, 부추가 그득 들어 있는 뚝배기 한 그릇과 묵은지, 깍두기, 양파, 고추, 새우젓을 담은 한상이 걸게 나왔다. 나는 맛있게 먹었다. '나는'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호불호가 갈릴 듯한 풍미였기 때문이다. 설명 상에는 담백하고 소 누린내가 안 나는 맛이라고는 하지만 검색했던 블로그에는 한 입 먹고 죄 남기고 나온 분들도 꽤 많았다.      

한 그릇 배부르게 먹고 장에서 멀지 않은 하동 화개로 가기로 했다. 10여 년 전 여행에서 보지 못한 쌍계사가 목적이었다. 하동 여행에서 최참판 댁만 보고 왔다. 버스 안에서 보는 섬진강이 그만이었다. 마음 같아선 한 입에 다 넣고 긴한 갈증을 채우고 싶었던 기억이다. 여전히 에어컨을 틀지 않는 터미널에서 나와 인근 카페에 가 콜드브루 커피 하나를 시켜 먹는다. 책을 간만에 폈는데 서울 곳곳을 누비던 유희열과 제작진이 낸 책이었다. 

구례-하동은 그리 멀지 않았다. 지도 앱에 따르면 1시간쯤 걸리는 거리인데 30분 조금 넘으니 도착했다. 화개공영터미널. 작은 간이역 같은 규모였다. 그래도 서울 남부터미널까지 가는 노선이 있더라. 역시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하는 건가. 

화개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왜 하동이 아니라 화개(행정구역 상 하동 내에 있다)였을까. 섬진강이 면해 있다는 게 가장 컸으려나. 지리산이 뒤에 병풍처럼 둘러 있고. 작은 동네라 게스트하우스가 없었다. 관광 명소라 펜션 위주였다. 터미널 가까운 곳에 있는 모텔에 짐을 부렸다. 1박에 4만 원.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도시나 대처에선 대실 정도 되는 비용.

2층 올라가는 벽면에 송해 할아버지 사인과 기념 사진이 걸려 있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던 분이고, 항상 전날 오셔서 그 고장 숙소를 잡으신 뒤 마을 사우나에 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송해 할아버지가 근사한 4성급 호텔만 고집한다거나 에어비엔비에서 검색되는 고가의 숙소만 잡는다고 하셔도 이상할 것 같다. 

눈 앞에 펼쳐지는 섬진강의 지천. 50m거리에서 본류와 합류하는 그곳엔 가족 단위 피서객들의 물놀이가 한창이었다. 소설 <토지>를 경전처럼 신봉하던 무렵, 고요하고 흘러넘치는 젖줄 같은 모습만 기억하던 내겐 다소 주저되는 모습이었으나 온 이상 몸은 담가야 했다.

모텔이 제공한 수건을 들고 여분의 옷가지를 챙긴 뒤 강에 뛰어든다. 안전 문제로 얕은 곳에서만 물놀이가 가능했다. 몸 담그며 건너 지리산 연봉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눅었다. 생각과 고민이 지나치게 많아 늘 문제인 내가 오랜만에 가진 미동의 시간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나. 

염천의 복판인데 미지근한 강물에도 몸이 시려왔다. 강에서 나오니 배가 고파오는 시간이었다. 인근에 중국집이 있다고 해서 가기로 했다. 삼선짬뽕과 이과두주의 뜨거운 기운이 몸을 덥혔다. 물놀이를 한 이후라 모자랐는지 군만두를 추가했다. 배가 든든하고 지리산과 섬진강이 환대해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숙소에 돌아가 여행기를 시작했다. 여행기? 기약 없이 떠나온 터라 유랑기가 될 터이지만. 이번엔 안 쓰고 풍경만을 누리기로 했지만 그게 안 됐다. 여행기를 마무리하고 모텔 옆 호프집에 갔다. 맥주를 시켰더니 너무 미지근해서 흡사 소주를 탄 느낌이었고 닭봉 한 마리 양이 많을 듯해 사정사정 주문한 반 마리엔 5조각이 담겼다. 실망스러웠다. 고장 인심이라고 하기엔 과했지만 좋았던 첫인상에 금이 가던 순간이었다. 

블로그 검색해보니 호평이 많은, 오리 날개를 닭튀김처럼 튀겨준다는 또 다른 호프집에 갔다. 두건을 쓴 단단한 몸의 사장님이 맞아주었다. 생전 처음 마주하는 오리 날개 튀김을 하시게 된 계기를 여쭤보니 전남 함평을 여행하다 지역에서 유명한다는 오리 날개 튀김 집을 가게 되었단다. 연세 지긋한 노인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오고 같은 메뉴를 선보이게 됐다고 한다. 물론 소스나 파슬리 가루를 추가하는 변주는 사장님의 연구 결과였다.  

사적인 이야기라 밝힐 순 없지만 사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살아온 날들, 계획한 일들, 운영하는 가게까지. 사장님은 젊은 연배였고 어린 아들을 키우고 계셨다. 지역의 발전과 가게 영업의 유지, 아이의 바른 성장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고민의 결이 튼튼한 분이었다.

얼큰히 마신 뒤 숙소로 돌아간다. 이향에서의 밤은, 외롭다. 모텔 TV채널이 500개에 달해도 외롭고 쓸쓸한 감정은 지울 수 없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린 뒤 그래도 남은 쓸쓸함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문밖을 나선다. 이미 시간은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어섰다. 사위 어둠. 행인들은커녕 오가는 차도 없었다. 세상이 숨을 죽인 것 같은 시간.

강가로 나간다. 누구 보는 이 없는 상황에서 물소리만 들린다. 칠흑 같은 지리산이 굽어볼 것이었다. 이놈, 속에 업화 가득하구나. 태워지지 않을 번뇌 가득이구나. 세파에 절어 속수무책이구나. 말하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s://blog.naver.com/leehhwanhee/222457062426)에도 게재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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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지망생으로 살았다. 가수지망생, PD지망생을 거쳐 취업지망생까지. 지망은 늘 지망으로 그쳤고 이루거나 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야기를 짓는 일을 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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