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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에 하얀 물감을 묻혀 하늘에 흩어놓은 듯 맑은 날, 연기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리산과 섬진강
 붓에 하얀 물감을 묻혀 하늘에 흩어놓은 듯 맑은 날, 연기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리산과 섬진강
ⓒ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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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구례구역(求禮口驛)은 지나치기만 했다. 임실, 오수 같은 치즈와 명견의 고장을 지나치면 구례구역이 나왔고 순천, 여천을 지나 전라선이 끝나는 곳이 여수엑스포역이었다. 처음 갔던 때가 2011년이었다.

나이가 찰대로 차 '내일로 패스' 막차를 탔다. 순천만에서 살아있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당시 계절성 태풍의 눈에 자리했던 보성과 목포에선 창을 때리는 태풍이 지나가던 여관방에 숨죽이며 지냈다. 막 엑스포 공원이 지어지기 시작한 여수의 첫인상은 나와 맞지 않았다. 

다시, 지난 7월 31일 구례에 갔다. 구례에 봐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코와 턱에 자란 수염이 멋진 사장님이 지키시는 곳이었다. 야생 녹차와 보이차 덩이를 차도로 썰어 밤마다 내려주시는 차(茶) 시간이 기다려지는 곳이다. 구례구역에서 온전히 택시를 타기엔 먼 거리였고 버스는 언제 올지, 하세월이었다. 중간 경유지인 구례공영버스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지리산의 광배가 늘씬하게 벌어졌다. 길옆에는 섬진강이 흘렀다.

택시로 10분께를 달려 도착한 터미널은 냉방이 되지 않았다. 구례구역도 냉방을 하지 않았는데, 더위에 지친 순행자는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 하고 오는 더위를 받아들일밖에 도리 없었다. 지방재정이 어렵나. 생태지향적 철학을 가진 군수가 재직하는 곳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한 시간쯤 기다리자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안은 냉방 가동 중이라 기사님을 부둥켜안을 뻔했다.

화엄사가 종착지인 버스는 구례읍내를 지나고 도보 여행자에게 박한 인도가 없는 길을 지나 OO리라는 곳에 닿았다. 특이하게 입구엔 치킨집이 있었다. 숙소에 가니, 포털 예약 시스템이 어그러졌는지 사장님은 내가 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다고 한다. 마침 빈방이 있었고, 6인 도미토리에서 혼자 지내는 특혜를 사흘 내내 누리게 된다.

"짐 풀었음 차 한 잔 합시다."

사장님의 도타운 청이었다. 그는 나를 보며 더위가 내려앉은 얼굴이라 했고 차는 차가운 성질이라 거듭 마시면 곧 열이 내릴 거라 말했다.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하는 일은 무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이며 오늘은 무얼 할지. 노파심에서 더하는 서술인데, 사장님은 첫 만남에 상대의 신상을 꼬치꼬치 캐묻는 결례를 범하는 분이 아니었다. 둘 사이 마음과 말이 수월했고, 자연스레 이어진 문답이었다.

경남 통영 출신의 사장님은 서울에서 사업과 직장생활을 하시다 구례에 내려와 자리를 잡으셨다고 한다. 들어보니 게스트하우스의 흥행이나 성업을 바라지는 않는 영업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뒤에 들어보니 어떤 날은 아고다에서 들어온 단체 손님 예약을 물리치셨다고 한다. 분과 힘에 넘치는 손님을 받다 보면 마땅히 대접해야 할 바와 성의를 다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보통 여행 첫날은 숙소에서 누워 쉬는 편이었는데 사장님은 인근에 있는 화엄사와 연기암에 오를 것을 권하셨다. 좋다며, 그쯤은 걸어줘야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다. 수긍했고 그의 픽업 트럭에 올라탔다. 화엄사 입구 곁에 마련된 연기암 오르는 샛길에 나를 내려주시고는 숙소로 돌아가셨다.

손에는 아이패드가 들렸다. 슬렁슬렁 올라갈 생각이었던 나는 중간중간 쉬며 영상이나 e북을 볼 생각이었다. 오판이었다. 큰 돌이 촘촘히 박힌 산길은 도시 촌놈의 연약한 발을 쿡쿡 눌렀다. 1.8km에 달하는 연기암까지의 거리가 가늠되지 않았다. 초행이라 힘을 안배하는 요령이 없었기에 마냥 쉬지 않고 올랐다.

곁에 흐르는 계곡물에선 행락객들이 발을 담그거나 몸을 적시며 재잘거리는 중이었다. 나는 무얼 바라 이곳을 오르는 중인 걸까. 실존이나 여행의 물음이 아닌 즉자적인 생각이었다. 등산복을 갖춰입고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오는 분들을 마주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인생 뭐 있나' 하는 생각.

연기암이라는 데는 언제 나와, 라고 증이 날 때쯤 마주한 안내 푯말. 화엄사 최대 규모 암자답게 절에 가는 길 한쪽에 카페가 마련돼 있었다. 대추차와 팥빙수라는 구원이 눈에 띄었다. 내려오는 길에 마시자고 생각하며 마저 오르니 보이는 연기암의 면모. 문수보살님이 산 아래를 굽어보고 계셨다. 더위에 지친 방문객을 맞아주는 약수가 솟았고 첫 젖을 먹던 무렵처럼 들이켰다.

대웅전과 요사채, 스님들의 수행 공간 그리고 몇 곳의 건물이 들어선, 암자라고 하기엔 크고 사찰이라 하기엔 작은 곳이었다. 대웅전에 올라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건너편을 내다봤다. 눈 앞에 펼쳐진 장엄. 지리산 연봉이 부드럽게 출렁이는 모습과 멀리 세상을 적시는 섬진강이 보였다. 다시, 살아서 이 풍경을 마주하는구나 하는 감상. 몇 분을 주저앉아 보기만 했다. 세파에 찌들고 절여진 미욱한 사부대중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카페에 들를까 하다 자동차가 드나드는 찻길로 방향을 틀었다. 어서 내려가고 싶었다. 사장님 말에 따르면 진짜 좋은 곳은 그 길로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그 길을 걸을 때 얻으신다. 산허리를 둘러둘러 아래로아래로 내려갔다. 내 뒤를 걷던, 일행이 있는 몇몇 분들의 수다에 기대한 적요함은 깨졌지만 걸을 만했고 걸어야 했다. 히치하이킹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들었다.

45~50분쯤 걸으니 몇 개의 암자를 지나 화엄사의 정경이 보이는 듯했다. 화엄사 주변에 딸린 암자만 해도 10여 개가 넘는다고. 쏟아지는 볕을 막아주던 나무들 사이로 걸으며 땀이 식을 때쯤 화엄사 입구에 당도했다. 왕복 2시간여에 이르는 거리. 구례 최대 사찰이라는 화엄사를 보고 갈까 하다, 입구에 마련된 지역 토산품들과 기념품들 상점을 보자 왠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식었다. 쉬고 싶었고, 에어컨을 쐬고 싶었고, 500cc를 들이켜고 싶었다.

지도앱을 켜보니 숙소까지는 걸어서 또 한 40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아, 이건 아니라고 보아. 아닌 건 아닌 겨 하며(originated from <오케이 광자매>) 택시를 잡아타고 쌩하니 내려간다. 내린 곳은 치킨집. 방앗간을 찾는 참새마냥 기어들어가 500을 시키고 반 마리 튀김이 가능하다는 치킨까지 시킨다. 그래, 극락은 호프집에 있었다(이곳에 묵는 연 사흘 간 하루도 안 빼고 갔더라나 뭐라나).

불콰하게 취해버린 몸으로 들어간 숙소에서 씻고 보내야 할 기사를 쓴다. 기사고 뭐고 다 자파한 뒤 자고 싶었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이 기사가 돈으로 바뀌고 그게 다시 밥으로 바뀌고 막걸리와 몸 누일 곳으로 바뀔 것이었다.

기사를 마무리하고 묵은 빨래를 돌리러 욕실에 다시 갔다. 밤하늘 올려볼까 마음먹고 나온 마당에선 작은 만찬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차 한 잔 하십시다." 사장님이 말했고, 온갖 책과 진공관 앰프, CD와 글씨, 서간들이 가득한 곳에서 다시 차를 내려주신다. 그걸 마시며 살아온 이야기와 나아갈 이야기를 나눈다. 짧은 시간에 마음이 통했고 우리는 웃음 지었다. 차 시간이 끝나고 재개된 만찬과 밤이 깊어간다. 벌레 소리도 안 들리는 고요한 밤이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s://blog.naver.com/leehhwanhee/222455527957)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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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지망생으로 살았다. 가수지망생, PD지망생을 거쳐 취업지망생까지. 지망은 늘 지망으로 그쳤고 이루거나 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야기를 짓는 일을 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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