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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저녁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기사 <"한국어는 적국의 언어"... 일본의 향후 대응 시나리오>를 읽고 두 눈을 의심했다. 악화된 한일관계를 반영하는 내용의 기사가 게재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기사의 제목은 충격이 컸다.

제목으로만 판단했을 때는 앞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어를 적성어(敵性語) 취급할 것이라는 전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에서 유학생으로 거주하고 있는 필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사가 나면 조마조마해질 수밖에 없다.

기사 내용을 확인해봤다. 개인청구권 문제에 대한 한일간의 갈등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주장은 읽혔지만, 어디에도 일본 정부가 장차 한국어를 적성어 취급할 것이라는 분석은 없었다.

기사 제목과 기사 내용의 위화감 앞에서 잠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필자는 기사를 또다시 정독하고 나서야 '한국어는 적국의 언어'라는 표현이 섞인 제목이 뽑힌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기사는 일본의 안내판이나 광고 등에서 한글이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의 소설을 인용한 뒤, 이를 토대로 일본에서 혐한 정서가 심화되고 있음을 주장했다. 이 내용이 그대로 제목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문제 삼는 기사에는 기자가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고, 공식적인 통계·논문이 인용된 것도 아니었다. 소설 속 구절을 빌어 일본 속 혐한 정서가 심하다고 짚을 뿐이다. 기사에서 한국어가 앞으로 일본에서 적성어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는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극적인 제목에 몰려든 누리꾼들은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일본인을 원숭이로 비하하거나 일본 열도의 침몰을 염원하는 혐오성 댓글들이 절대다수를 이뤘다. 결과적으로 기사는 증오와 혐오를 이끌어냈다.

증오와 혐오의 잉태
 
일본 도시의 일상에서 한국어는 찾아보기 쉬운 주요 외국어 중 하나이다.
▲ 한국어로 된 오사카 상가의 환영 메세지 일본 도시의 일상에서 한국어는 찾아보기 쉬운 주요 외국어 중 하나이다.
ⓒ 박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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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한국어가 일본에서 적성어로 취급되어 일본 사회에서 배격될 가능성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 '적성어 배격'이라는 것은, 전체주의와 증오가 팽배했던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완전히 실현된 적이 없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1941년 12월 제국 일본이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개전한 이래, 귀축미영(鬼畜米英、미국과 영국을 귀신과 짐승으로 격하하는 용어)의 프로파간다는 적극적으로 남발됐고 전 사회적으로 반미반영 감정이 크게 고조됐다.

이때 민간사회의 극우주의자들은 미국과 영국의 언어인 영어를 배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영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추락했다. 심지어 교육과정에서도 영어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간판, 방송, 출판물 등에서 쓰이던 영어식 표현들은 일본식 표현으로 대체됐다.

과거 영어 배격 주장은 있었다, 그러나
 
극우주의자들은 적의 언어인 영어를 사회에서 배격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국 지도부조차도 영어 금지에 난색을 표했다. 한편, 전후 일본에서는 순일본어 사용 고집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졌다.
▲ 간판에서 영어를 추방하자는 선전물(1943년) 극우주의자들은 적의 언어인 영어를 사회에서 배격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국 지도부조차도 영어 금지에 난색을 표했다. 한편, 전후 일본에서는 순일본어 사용 고집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졌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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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패전에 이르기까지 영어를 금지하진 않았다. 태평양 전쟁 개전의 주역인 도조 히데키 수상조차도 '영어를 금지해서는 오히려 전쟁수행이 곤란하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해군병학교(사관학교) 교장 이노우에 시게요시 제독은 '해군 장교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적성어 배격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기도 했다. 

제국 일본이 패전한 이후, 연합군사령부가 들어선 일본에선 영어의 사회적 지위가 회복됐다. 민간에서 적성어 배격을 주장했던 극우파들에 대한 기억은 '순일본어 사용 고집'에 대한 거부감으로까지 이어졌다.

오늘날의 현대 일본어는, 외국어에서 어휘를 수용해 가타카나로 표기하는 것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즉 외국어 어휘를 일본식으로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전 세계적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마저, 일본에서는 'ソーシャルディスタンス'(social distance)라는 영어식 표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는 한국어에서 넘어 온 어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타카나 표기의 한계상 발음이 한국어 원어 발음과 다소 다르긴 하나 '한국 유래'라는 것은 일본에서 전혀 숨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삼겹살(サムギョプサル、사무겨푸사루), 김치(キムチ、기무치), 게장(ゲジャン게쟝), 막걸리(マッコリ、맛코리) 등을 찾아 한인타운을 찾는 일본 시민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분주하다.
 
한인타운이 아닌 일반 다른 지역의 마트에서도 김치와 소주를 비롯한 한국 관련 식품들은 인기가 많다.
▲ 일본 오사카의 마트에 마련된 한국 테마의 코너  한인타운이 아닌 일반 다른 지역의 마트에서도 김치와 소주를 비롯한 한국 관련 식품들은 인기가 많다.
ⓒ 박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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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와 일본 시민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일본에서 한류가 실존하는 강력한 사회 현상임은 구태여 새롭게 논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물론 한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한국 정부에 대한 호감과 동일하진 않다. 한국 식당을 찾고 한국 아이돌에 열광하는 일본인들 중에도,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에 의문이나 불만을 품고 있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없다. 스시나 타코야끼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라고 해서 스가 내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듯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양국 정부의 사이를 초월한 시민 사회의 교감과 대화라고 생각한다.

국가(정부)와 시민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관점은 반드시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가 한국인 전체를 대변하지 않듯이 일본도 집권여당이 일본인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와 일본 시민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욱일기를 들고서 중국이나 한국에 대해 적의를 드러내는 극우 세력들 역시 일본 시민 사회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한국 시민 사회의 전체가 아니듯이 말이다.
 
박근혜 하야(탄핵)을 주장하며 거리로 쏟아진 한국 시민 사회의 모습은 일본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지지와 공감을 보냈다.
▲ 한국의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교토대 학생들의 선전물(2016년 12월) 박근혜 하야(탄핵)을 주장하며 거리로 쏟아진 한국 시민 사회의 모습은 일본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지지와 공감을 보냈다.
ⓒ 박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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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획일적인 주체가 아니며 국가와 구분되지만, 결국은 국가주권의 토대다. 그러므로 시민사회는 국가 사이의 문제 해결에 있어 반드시 연대해야 할 대상이다.

시민사회의 일원 중에는 한국을 오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적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소통을 멈추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한국에 호감을 갖고, 한국을 궁금해한다. 대화가 깊어질 수록, 오해는 풀리고 호감은 깊어질 수 있다.

일본 시민들 중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한국 시민들이 겪은 고통에 공감하며 연대와 지지를 보냈던 이들도 있고,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구명하는 데 힘을 모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러한 시민 사회의 움직임이 토대가 되어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이 가능했다. 시민 사회 간의 소통이야 말로 양국 관계를 재구축하는 데 있어 소중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증오와 혐오는 사태만 악화시킬 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광홍은 오사카시립대에서 일본인의 전쟁체험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석사과정 학생입니다.


태그:#일본, #한일관계, #한국어, #적성어,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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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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