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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병원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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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대장암 수술 후 6주가 지났다. 항암치료와 치료를 위한 입원이 진작 예정되어 있었지만 마치 모든 치료의 과정이 끝난 것처럼 잠시 평화가 찾아오기도 했다. 걷는 걸음의 속도도 빨라졌고 배에 힘도 약간 들어간다고 했다. 식사량도 꾸준히 조금씩 느는 것 같았고, 몸무게가 느는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마치 나의 지분인양 뿌듯했으니. 게다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많아진다는 것에 감사했다.

환자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이라도 환자의 마음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아직 품고 있는 병에 대한 마음의 고민이나 치료의 과정, 완치에 대한 걱정이나 기대에서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누가 더 마음을 깊이 쏟느냐의 차이는 아닌 것 같다. 주체의 문제인 것 같다. 아무리 마음을 쏟는다 해도 제삼자의 마음이 당사자의 마음일 수는 없었다.

아픈 사람들이 나오는 TV 채널의 영상이나 이야기는 여전히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예민해졌다. 이전에 즐겨 봤던 드라마라는 이유로 눈감아 주었던 의학 드라마도 지금은 채널을 돌리다 잠깐만 봐도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한 마디 한다.

"아픈 사람들 나오는 거 딱 싫어."

돈, 돈, 돈, 돈 

어느 순간 홈쇼핑 채널이 많다는 것을 느끼는 때가 있다. 채널 하나 건너 새로운 물건을 판매한다. 홈쇼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도 통계를 따로 내지는 않았지만 건강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각종 질환, 암, 투병, 보험 등 직접적으로 몸의 상태를 거론하는 것도 많고, 노약자를 위한 보호식, 입맛 돌게 하는 밥상, 건강 보조식품, 가족들의 건강을 위한 상차림, 건강한 실내 환경 등 몸의 건강을 생각한 패션... 건강이라는 말이 홍수를 이루며 관련 상품들이 판매된다.

판매하는 상품이 비슷한 시간대에 동시다발적으로 소개되는 것도 비슷하다. 건강보조식품의 경우에도 여러 채널에서 동시에, 식재료도 비슷한 것들끼리 동시에, 건강하게 피로를 풀어준다는 의료기나 가구들도 동시에, 가공식품들도 성분이 비슷한 것들을 동시에 방송한다.

쓰나미처럼 여러 채널에서 동시에 휩쓸고 지나갈 때 가장 환자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보험 상품들이다. 특히 암을 대비한다는 말에는 투병 당사자로서 일정 부분 혜택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색한다.

왜 싫어할까. 아마도 누군가의 아픔이나 고통이 상품화되고 홍보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 싫은 것 같았다. 암이 당사자에게는 고통이며, 집안은 우울에 휩싸이고, 돈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양 방송하는 것이 싫은 게 아닐까 싶었다.

이미 마음만으로도 생과 사를 오가야 했던, 가슴 졸이는 경험은 현실 광고에서 호객을 위한 재료일 뿐, 당사자의 마음까지는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강력한 협박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때론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게 민감한 감정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광고에서는 당사자가 아닌 가족들의 내밀한 걱정을 공론화하고 있었고, 돈이 치료의 전부인 것처럼 부풀리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어쩌면 돈은 삶의 절대적인 것이면서 적대적인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돈이 공기, 물, 불 등의 자연물과 같이 인간 삶의 절대적 배경이 된다는 뜻이다. 돈은 소유를 지시하기보다는 가치를 매개함으로써 인간관계를 맺어준다. 돈이 잘 돌면 재화도 공평하게 쓰이고 인간관계도 돈독해진다. 그러나 잘 돌지 않으면 불평이 쌓이고 불신은 커진다. (윤주필,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돈 이야기로 읽는 그림 중)

돈, 그 단어가 어떤 걱정보다 앞서야 한다는 사실이 당사자와 가족에게는 현실적이어서 더 징그러웠던 것 같다. 처음 남편의 발병을 확인했을 당시, 나는 까마득하게 잊은 보험 가입 여부를 떠올렸다. 그런 스스로에게도 진저리가 쳐졌던 것 같다. 먼지를 털듯 돈 생각을 털어냈고 환자의 건강과 완전한 치유의 방법만을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달라진 계절, 달라진 일상 

남편은 1차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여전히 간호간병 통합 병동으로 들어갔고, 환자가 없으니 바쁜 일상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불편하면서도 좋았다. 종일 환자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니 궁금증을 덜어내고 나면 정적이 찾아왔다. 불쑥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으면 환자와 통화를 했고, 별일 없음을 확인하고는 안심했다.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들어가기로 예정된 전날부터 남편은 급격히 우울해졌다.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고 맥을 놓아버렸다. 아침저녁으로 씩씩하게 하던 걷기도 이틀을 멈췄다. 수술의 상처가 아물어가는데, 다시 삽관, 투약 등의 과정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병원에 들어가고 만 삼일 동안 치료약과 보조약 영양제 등이 몸으로 들어갔다. 약이 들어가는 시간 때문에 퇴원은 저녁 9시에야 겨우 할 수 있었다. 퇴원 수속 먼저 오전에 끝냈고, 다시 병실로 올라가 남편은 정맥 삽관한 곳으로 약을 넣었다. 치료를 위해 뭐든 해야 했지만, 의학이란 감정을 배제하는 것 같았다. 원활한 치료를 위한다지만 살을 째고, 약이 들어가는 그곳을 보니 마음이 저릿했다.

남편이 없는 사흘을 함께 걷던 습관대로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매일 돌던 코스, 마트와 빵집, 채소가게를 돌았다. 병원에 들러 하루 한 번 얼굴을 보는 것도 추가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간을 잠시 보내고 돌아오곤 했다.

"코로나라서 밖에 나갈 수 없잖아."
"실내에서 맛있는 거 해 먹으면 되지."
"그럼 에어비앤비로 할까? 밥만 해 먹고 안에만 있을 거면 굳이 좋은 시설 필요 없잖아."

길을 걷는데 옆 사람의 전화 대화가 들려왔다. 늦은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는 것 같았다. 나의 시간이 멈춘 사이 사람들의 시간은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병과 싸운다는 건 시간과 싸우는 것 같았다. 흐르던 시간이 어느 순간 멈춰 서서는 꼼짝도 하지 않는 채로 마음을 괴롭혔다. 파이팅을 외치며 힘을 내는 것도 잠시, 시간은 그대로니 헛힘만 더 들었다. 시간을 적으로 돌리지 말고 내 편으로 만들어 달래야 할 것 같았다. 힘들지 않게 흘러가 달라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출근을 하고 사색하며 일상을 즐겼던 때가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 감탄하고 짙은 초록도 누리고 맛집도 찾고 좋은 사람도 만나며 살아왔던 삶이었다. 불과 한 계절이 지났을 뿐인데, 그런 여유와 즐거움이 언제 있었던가 싶게 아득했다. 의식하지 못하던 것들을 문득 의식하게 되는 순간, 상실의 아쉬움은 더 크게 다가왔다. 포기해야 하는 것, 더는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슬펐다.

우리는 늦은 봄을 지나 무더위의 시간과 싸우며 뜨거운 여름과 진검승부를 겨뤘다. 이제 다른 차원에서 찬란한 낙화를 보여줄 가을과의 투쟁도 준비하고 있다. 남편을 병원에 보내고 모처럼 여유 있게 가계부를 정리했다. 병원비 항목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이미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도 했다. 결론은 돈인가 싶어 겁이 나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니 겁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없는 며칠, 집에서 나는 병원이 나오는 드라마도 보고 건강으로 협박하는 홈쇼핑 광고도 백색소음처럼 마냥 틀었다. 남편의 질색하는 목소리가 가끔 들리는 것 같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지만, 당연히 남편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병실엔 TV가 없다고 하니 남편이 방송 내용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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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남은 생도 이전처럼 힘 있게 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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