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물,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꽃, 꽃이 되는 꿈/ 씨가 되는 꿈, 풀이 되는 꿈
강, 강이 되는 꿈/ 빛이 되는 꿈, 소금이 되는 꿈
바다, 바다가 되는 꿈/ 파도가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루시드 폴이 만든  노래<물이 되는 꿈>이 그림책이 된다면?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이 광경을 지난 4일부터 서울 용산 알부스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이수지 작가의 전시회 '여름 협주곡'(8월 4일~9월 14일)에서 만날 수 있다. 물론 루시드 폴과 이수지 작가의 만남 <물이 되는 꿈>은 이미 지난 2020년 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좀 다르다. '인쇄'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수지 작가가 애초에 그렸던 날것 그대로의 '원화'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협주곡 전시회 포스터
 여름 협주곡 전시회 포스터
ⓒ 앨부스 갤러리

관련사진보기

 

이미 '그림'으로 제본된 그림책의 원화를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늦여름의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한남 초등학교 언덕길을 올라 만난, 그 이름처럼 하얀 '앨부스 갤러리'('albus'는 라틴어 '희다'라는 의미이다). 갤러리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여름날 맑은 바다같은 루시드 폴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진다. 그리고 그곳에 <물이 되는 꿈>의 원화가 그림책과 함께 걸려있다. 

제주에 사는 루시드 폴은 '물'을 떠올릴 때마다 느꼈던 감정들을 멜로디와 노랫말에 실어 <물이 되는 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곡에 맞춰 그림을 그린 이수지 작가는 '물 속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이들은 누구일까?'를 떠올리다가 '수중 재활 센터'에서 만난 한 아이를 그림책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휠체어를 타야 했던 아이는 보조장비를 차고 물가에 앉는다. 물 속에 들어가 신체의 자유를 얻은 아이는 거기서 더 나아가 '물' 자체가 된다. 물과 함께 흘러 강으로, 바다로... 보는 것만으로도 루시드 폴의 가사 그대로 물이 되고, 바다가 된다. 

작가의 원화는 수채화 작업답게 붓터치와 색의 농담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특히 같은 '물색'이지만, 원화가 보여주는 호숫빛 '물색'과 그림책에 담긴 바닷빛 '물색'은 원화 전시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선물'이다.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 이수지

관련사진보기

 
이뿐만이 아니다. 지하 1층에는 <물이 되는 꿈>과 함께 이수지 작가를 세계적인 작가로 확고하게 만든 <파도야 놀자> 원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두 그림은 지하 갤러리 전체를 '물색'으로 물들인다. 

<그림자 놀이>, <거울 속으로>와 함께 이수지 작가의 경계 3부작 <파도야 놀자> 역시 바닷가에 놀러간 소녀의 이야기다. 엄마와 함께 바닷가에 놀러간 소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파도와 온전한 친구가 된다. 들락날락하는 파도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파도에 흠씬 젖어버리는 소녀. 바다와 자신의 경계를 넘어선 소녀의 모습은 <물이 되는 꿈>과 함께 '물아일체'라는 '혼연'의 감성을 고스란히 일깨워준다.

그림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걸러지지 않은 원화가 주는 감성에 갤러리라는 장소가 주는 '집중력'이 더해져 작가가 그림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했다. 
 
파도야 놀자
 파도야 놀자
ⓒ 이수지

관련사진보기

   
파도야 놀자
 파도야 놀자
ⓒ 이수지

관련사진보기

 
2002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이래 2003년 스위스 올해의 그림책,  2008 뉴욕 타임스 우수 그림책, 미 일러스트레이터 협회 올해의 원화전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전세계 각국에서 인정을 받은 이수지 작가의 창작 시원은 어디일까?

갤러리 1층에서 이수지 작가의 첫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영국으로 유학을 간 작가의 하숙집 거실에 있던 빅토리아 풍의 벽난로를 모티브로 삼고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야기 구조를 도입한 이 그림책은 그 자체로 중층의 '무대'로서 보는 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수지 작가의 어린 시절이 연상되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루이스 캐럴의 원작처럼 토끼를 쫓다, 그 관계가 역전된다. 이후 루이스 캐럴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 대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코의 <채찍질 당하는 예수 그리스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르네 마그리트의 <개인적 가치> 등 그 자체가 '퍼즐'이 되는 작품 속으로 빨려들며 '그림'이 더해진 '이야기 책'이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파격적으로 펼쳐보인다. 
 
여름이 온다
 여름이 온다
ⓒ 이수지

관련사진보기


이수지 작가가 그림책에서 능수능란하게 펼쳐보이는 '무대'는 신작 그림책 <여름이 온다>에서 한껏 만개한다. 전시회 2층 전체에 울려퍼지는 비발디의 '여름'을 모티브로 한 그림책은 '음악'을 매개로 한 작품답게 연주회의 무대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무대'는 연주회라는 공간을 넘어 '여름'이라는 시간적 장소로 이동한다. 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 정원에서 한껏 뛰놀던 아이들은 이수지 작가가 애용하는 '물'을 이용하여 '놀이' 삼매경에 빠져든다.

이수지 작가 특유의 물빛이 낭자한 가운데 콜라주, 물감 뿌리기, 그리고 실을 활용한 다양한 기법이 여름이라는 공간 안에서 한껏 뛰노는 아이들의 역동성을 제대로 표현해낸다. 또한 비발디의 여름이라는 음악이 매개임을 드러내는 악보라는 공간 속에 '여름 놀이'가 한창인 아이들이 음표처럼 펼쳐지며 그림의 '음률'을 시각화시키는 지점에 이르면 저절로 작가의 상상력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음악이 연주되는 무대와 여름이라는 계절의 무대가 교차되며 비발디의 '여름'이 펼쳐내는 클라이맥스는 여름의 소나기로 맞물린다. 그리고 이내 연주가들과 들판에서 놀던 아이들이 잇달아 무대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림책은 마무리된다. 

전시된 대부분의 그림책은 '그림'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 '그림'들 속에 그 어떤 글책보다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무대를 통해 그림을 펼쳐낸 이수지 작가의 세계는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예술적으로 한 발 더 올라서게 한다. 묘하게도 전시회를 보고나면 내 방 서가에 이수지 그림책을 넣어두고픈 갈증이 더욱 간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 앨부스 갤러리, #이수지 작가 , #여름 협주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