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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영화 <1987>을 보고 나는 놀랐다. 설경구가 그 역을 맡은 김정남씨가 이부영과 함께 '박종철 고문은폐조작'을 폭로한 주역이라는 사실을 나는 영화를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운동권에서 잔뼈가 굵은 나였는데, 그렇게 중요한 사건의 비밀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살았다니... 사건의 뒤에서 소리도 없이 자취도 없이 바람처럼 활동한 선배가 있었음을 알고서 나는 선배의 그윽한 인격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일을 이루면 몸은 물러선다"는 공성신퇴(功成身退)의 정신을 이룬 이가 우리 시대에도 있었구나.

그후 나는 김정남 선배의 팬이 되었다. 최근 나는 김정남의 대화록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를 읽고 놀라운 사실을 또 발견하였다.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의 저자가 조영래 선배였음은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 조영래씨가 쫓기는 몸으로 전태일의 책을 만든 것은 1976년이었다. 이어 1978년 일본에서 <불꽃이여, 나를 태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책의 저자가 김영기(金英琪)였다는 것이다. 가운데 이름자 영(英)은 조영래였고, 마지막 이름자 기(琪)는 장기표였다. 알고 보니, 전태일의 수기를 어머니로부터 건네받은 이는 장기표였다. 그만큼 이소선과 장기표는 서로를 아끼는 특수 관계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맨 앞의 김(金)은 누구인가?

김정남은 조영래가 갈무리한 <전태일 평전>의 최초의 독자였다. 그리고 이 원고를 일본에서 출간하도록 다리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김(金)은 김정남이었다. 그러니까 일어판 <불꽃이여, 나를 태우라>가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은 김정남, 조영래, 장기표 세 사람의 공동작업의 귀결이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 나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던 책,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의 배후에 이런 진실이 숨어 있었음을 까마득히 먼 훗날에 알게 되었다. 나는 또 한 번 '진실을 발견하는 기쁨'에 잔잔히 휩싸였다.

박병규, 너도...
'광주형 일자리'의 최초 설계자인 박병규 전 광주시 경제부시장이 최근 펴낸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
 "광주형 일자리"의 최초 설계자인 박병규 전 광주시 경제부시장이 최근 펴낸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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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이루면 몸은 물러선다"는 공성신퇴(功成身退)의 정신을 이룬 이가 또 있으니 조영래 선배가 바로 그 인물이다. 그는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의 저자가 자신임을 내내 숨기며 살았다. 1990년 12월 폐암으로 영면하기 직전에 조영래는 두 가지의 회한을 고백하였다고 한다. 하나는 책의 독자를 대학생에게 맞춘 것이 한스러웠고, 다른 하나는 분신을 미화한 것이 두고두고 괴로웠다는 것이었다.

오늘 나는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을 읽고, 조영래 선배의 영전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선배님, 선배님의 진솔한 고백을 잘 알겠습니다만, 그렇게 자괴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젊은 날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읽고 노동운동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노동 현실을 개선하고자 분투하는 노동자들도 많더이다. 박병규처럼요."

오늘 나는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을 읽고, 박병규와 내가 떠돌았던 1983년 구로의 공장 지대를 떠올리게 되었다. 박병규는 20세의 나이에, 황광우는 26세의 나이에 구로 인근에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삶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을 하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전태일이 박병규에게 다가왔다.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열독한 그 며칠 사이, 박병규는 전태일의 혼에 이끌려 마침내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예사롭지 않은 사람, 박병규

오늘 나는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을 읽고, 박병규가 예사로운 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대공장에서 노조위원장 한 번 하는 것도 힘든데, 박병규는 무려 세 번이나 역임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박병규는 매일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동료들의 고충, 애환을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1990년대만 해도 노조위원장의 자리는 감옥 가는 자리였다.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노조위원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1990년대만 해도 노조위원장의 자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천막을 치고 단식 농성을 하는 자리였다. "식칼을 무는 심정으로 투쟁에 떨쳐나선다"는 문구가 파업 현장을 도배하던 시절, 박병규도 그 어느 노동운동가 못지않게 전투적으로 싸웠다.

오늘 나는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을 읽고, 박병규가 그 거친 노동 현장에 인문학의 부드러움을 도입한 노동운동가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철학과 학생이나 읽을까 말까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노동자가 읽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철학도보다 더 정확하게 '악의 평범성'에 담긴 아렌트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였다는 것이다. 아니다. 아렌트는 말을 하였으나, 아렌트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박병규는 아렌트보다 더 아렌트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였다고 말하고 싶다.

때는 2000년 즈음이었다. IMF에 이어 정리해고를 밥 먹듯 하는 시대가 닥쳤다. 오직 기업의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현장을 휩쓸었다. 기업이 지불능력이 있고, 노동조합이 교섭능력이 있는 대공장 노동자들은 전과 다름없는 노동조건을 지킬 수 있었으나, 늘어만 가는 청년실업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노동현실의 양극화가 무섭게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몰아가던 그 시절 대기업 노조위원장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기업을 넘어, 자신의 현장을 넘어, 노동자 모두의 현실을 고민하진 않았다.

박병규는 달랐다. 그는 잘 나가는 대기업의 직장을 버렸다. 어느 누군들 통장에 찍히는 급여의 숫자를 모를까? 하지만 박병규는 통장의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간 곳은 광주시청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위장취업이었다.

1980년대 우리들이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구로로 인천으로 공장으로 달려갔는데, 언론은 이 대열을 '대학생의 위장취업'이라 하였다. 나는 그 위장취업의 대열, 맨 앞에 있었다. 그때 우리가 노동현장에 들어간 이유는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2015년 잘 나가는 대기업 노동자 박병규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박봉의 공무원이 되는 걸 선택하였으니, 나는 이 사건을 노동자의 '역(逆) 위장취업'이라고 부르고 싶다. 박병규는 무엇을 바라며 위장취업의 험난한 길을 갔던가?

2018년 박병규는 광주시의 경제부시장이 되었다. 그때 노동자가 부시장이 된 것에 대해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노동자 주제에 뭘 안다고?" 그것은 질투심이었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를 뒤덮어온 노동에 대한 하대, 그 악습의 연장이었다. 나는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공무원이 된 박병규의 하방을 잘 알고 있었고, 나는 조만간 박병규가 사고를 칠 것을 기다렸다.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을 읽고서야 얻은 깨달음
 
'광주형 일자리'의 최초 설계자인 박병규 전 광주시 경제부시장이 최근 펴낸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 그림은 광주형일자리 개념도.
 "광주형 일자리"의 최초 설계자인 박병규 전 광주시 경제부시장이 최근 펴낸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 그림은 광주형일자리 개념도.
ⓒ 아논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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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을 읽고서 공무원 박병규가 무슨 일을 하였나 뒤늦게 알게 되었다. '광주형 일자리'는 박병규의 별명이다. 나는 박병규의 광주형 일자리가 함평 등지에 들어서는 자동차 공장의 신설인 것으로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광주형 일자리란 공장 몇 개 증설하여, 일자리 몇 개 더 늘리는 그런 시시한 개혁이 아니었다.

오늘 나는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을 읽고, 그동안 내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였던가,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대한민국의 노사관계 전반을 혁신하는 새로운 아이디어, 뉴딜(New Deal)이었다.

노동자와 기업주의 관계를 우리는 오랫동안 적대적인 관계, 즉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로만 알았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박병규는 달랐다. 노사관계에는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갈등의 측면도 있지만 서로 협력하면 상당히 많은 개선을 할 수 있는 상생의 측면도 있음을 박병규는 몸으로 체험하였다. 노사관계의 적대성만 규탄하면서 눈앞의 양극화를 외면하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무사안일, 그것이 바로 아렌트가 고발한 '악의 평범성'이요, 고민 없이 살아가는 이의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이었다.

박병규는 달랐다. 그는 생각하는 노동자였다. 생각을 해보니 이 사회를 지옥으로 몰고 가는 양극화를 타개할 출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 출구는 사회적 합의와 함께 진행하는 노사의 상생 프로그램에 있었다. 중소기업 노동자도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다! 비정규 노동자도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하면,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적정의 임금, 적정의 노동 시간, 경영 참여를 이룰 수 있다! 그렇지 않는가?

뒤늦게 나는 박병규로부터 우리의 경제 현실을 극복하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배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를 설치하였고,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설치했다. "오늘 일자리 몇 개 늘렸나?" 박병규는 생각이 달랐다. 문제는 일자리의 양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라고 자부할 수 있는 일자리의 질이었다. 일자리의 양을 기록하는 현황판의 숫자로는 양극화 문제 해결의 대안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고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나, 부끄럽지만 나는 오늘 <공장으로 간 철학소년>을 읽고서 나의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생각이란 보수적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익숙한 개념으로만 세계를 보려한다. 나도 일자리 문제를 일자리의 개수로 생각하였다. 박병규는 달랐다. 박병규는 좋은 일자리를 관계의 문제로 바라보았다. 중소기업에서도 노사가 대화를 나누고 연대를 하면 얼마든지 상생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아이디어... 얼마나 창의적인 생각인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였다. 나는 박병규의 꿈이 조만간 광주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당연한 현실이 되길 고대한다. 나는 박병규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功成) 그날, 소리 없이 사라지는(身退) 데 동의하는 인물임을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작가이자 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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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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