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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중 이 구간은 지리산 산록에 조성된 녹차밭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 녹차밭이 길게 펼쳐지는 하동 화개장터 쌍계사 가는 구간 지리산 둘레길 중 이 구간은 지리산 산록에 조성된 녹차밭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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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것은 때론 순례자가 되는 시간이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 걸으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같이 걷는 것보다 때론 혼자서 걸어 보는 것도 좋을 때가 있다.

스페인에는 유명한 산티아고 길이 있다지만 굳이 그런 길을 걷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에는 그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그 길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 볼 수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그 산이 주는 거대함만큼이나 그 길에서 갖는 느낌이 남다르다. 지리산의 크기는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군·하동군·함양군 등 3개 도, 1개 시, 4개 군에 걸쳐 있다는 것이 잘 말해준다. 지리산 둘레길은 그 산자락의 일부를 걸어보는 시간이다.

지리산 옛길을 바탕으로 조성된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주변의 3개 도, 5개 시군의 21개 읍면 120여 개 마을을 잇는 285km의 긴 구간이다. 2007년 시작한 이래 2014년까지 순환로를 포함 22구간 285km가 개통되었다. 각 구간은 각각의 특색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구간을 선택하면 된다.

녹차길 따라가는 하동 가탄-부춘 구간

둘레길 하면 제주도 올레길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지리산을 연결하는 둘레길도 지리산의 독특한 맛을 느끼면서 걸을 수 있다. 지리산은 워낙 큰 산이라 어느 구간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 구간마다 특징이나 걷는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구간의 거리와 시간을 잘 선택해서 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리산 둘레길 22개 구간 중에 하동군 화개면 가탄 마을과 부춘 마을을 잇는 구간이 있다. 이 구간은 하동군 화개면 탑리 가탄마을과 부춘리를 잇는 약 11.4km의 둘레길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고산지역의 길들을 걷는 구간이 많은데 이 구간은 화개골 차밭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5월쯤에는 곳곳에서 차를 따는 풍경들과 마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5월이 아니어도 잘 정돈된 차밭 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이 구간은 우리나라 녹차의 주산지 중 하나인 하동 녹차 재배지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화개천을 사이에 두고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지리산 산록에는 녹차밭이 길게 이어지고 있어 아름다운 녹차밭의 경관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곳은 보성이나 제주도처럼 넓은 차밭이 대단위로 조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마을을 끼고 산기슭에 아기자기한 차밭들이 조성되어 있어 인공과 자연미의 조화가 느껴진다.
 
아담한 동네 슈퍼가 마을 들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 지리산 둘레길 가탄 - 부춘 구간의 시작점인 길가슈퍼 아담한 동네 슈퍼가 마을 들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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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관광지로 번화해 가는 화개장터 인근 거리에는 2022년 차 국제박람회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어 이곳이 차의 고장임을 느끼게 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약 1.5킬로 가량 올라가면 둘레길이 시작되는 가탄마을이 나타난다. 가탄마을의 시작점은 길가슈퍼다. 농협 하나로마트에 밀려 시골동네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았지만 작고 아담한 슈퍼가 둘레길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가게 간판도 한자로 길가(吉佳)라 적혀 있다.

둘레길을 걷는 묘미는 무엇보다 아직도 조금씩 남아있는 산촌의 옛 모습을 발견하는 기쁨이기도 하다. 별장 같은 도시화된 집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아직 남아있는 산촌의 집들과 돌담들을 만나는 기쁨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인정 많은 동네 사람들을 가끔씩 만나는 것도 먼 여행지에서 느껴보는 색다름이다.

길가슈퍼에서 마을의 안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파른 언덕에 농지를 만들기 위해 돌을 쌓고 만든 텃밭들이 눈에 들어온다. 돌로 쌓은 석축들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경사진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 아래 화개천을 끼고 펼쳐지는 경관들이 점점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차밭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차밭과 마을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정원을 연상케 한다. 마을 곳곳에는 별장식의 새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어 달라져 가는 산촌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마을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점점 차밭들이 많아진다. 녹차밭과 함께 산비탈에 조성된 고사리밭도 연초록의 숲을 이루고 있어 인상적이다.
 
이 구간은 녹차밭을 따라 걷는 구간으로 경사진 산록에 조성된 차밭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 녹차밭 사이를 걷는 하동 가탄-부춘 구간  이 구간은 녹차밭을 따라 걷는 구간으로 경사진 산록에 조성된 차밭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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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탄 마을에서 신촌 마을 쪽으로 언덕길을 넘으면 꽤 넓은 차밭들이 펼쳐진다. 상당히 집단적으로 조성된 차밭도 눈에 띈다. 곡선을 이루며 잘 정돈된 차밭은 예술적인 선의 미를 느낄 수 있다. 넓은 평지보다 경사진 곳에 조성된 차밭의 굴곡진 곡선의 아름다움이 독특하다. 길과 길 사이에 조성된 굴곡진 차밭과 그 차밭을 가르기 위해 조성된 돌로 쌓은 곡선의 석축, 이곳 둘레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차밭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둘레길 푯말이 곳곳에 나 있어 비교적 잘 찾아갈 수 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끔씩 어디로 갈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되돌아 오는 것을 새삼 느껴보는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곳 녹차밭 둘레길을 가다 보면 넓게 조성된 천년 차밭길이 나온다. 경사진 차밭길을 따라 오르면 맨 위 전망 좋은 곳에 예쁘게 만들어진 정자가 있다. 정자 위에 올라서면 멀리 화개장터와 화개천을 따라 쌍계사로 이어지는 지리산 줄기의 경관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지를 향해가는 고행길
 
녹차밭 둘레길을 따라 안내 표지판이 곳곳에 서 있다.
▲ 지리산 둘레길 안내 표지 녹차밭 둘레길을 따라 안내 표지판이 곳곳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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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항로처럼 둘레길도 평평한 길만 가는 것은 아니다. 차밭 길을 따라 신촌마을까지 이어지던 둘레길은 이곳부터 등산로로 바뀐다. 지리산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길의 성격으로 따져보면 고행의 길이다.

신촌마을에서 이 구간의 끝인 부춘까지 3시간 이상 산행을 해야 하는 꽤 힘든 코스다. 길은 가파른 돌계단의 산길을 거의 800고지까지 올라가야 한다. 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보는 명상의 시간은 다소 어렵다. 심장의 박동과 육체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주도 올레길이 대체로 평평한 길인 것에 비해 지리산 둘레길이 다소 어려운 것은 이런 산길을 거의 등반하다시피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리산 둘레길은 각 구간의 코스 상황과 시간도 잘 살펴야 한다. 가탄-부춘 구간의 거리는 약 13km, 넉넉잡아 6시간가량은 잡아야 한다. 출발 시간과 도착 시간을 잘 계산해야 둘레길의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태그:#지리산, #둘레길, #하동 화개장터, #부춘, #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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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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