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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윤의 근본 없는 이장 일기'는 귀농 3년차이자 함평군 대각리 오두마을의 최연소 이장으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27살 한대윤 시민기자의 특별한 귀농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오두마을 이장 한대윤이 한옥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 현 오두마을 이장의 집 오두마을 이장 한대윤이 한옥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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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픈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다. '서울 말고는 다 시골'이라는 말. 한걸음 나아가 '수도권과 비(非)수도권을 오갈 때는 여권을 발급해야 한다'는 농담도 있다. 그만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격차가 크다는 의미이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다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터라 학생일 때는 제대로 된 '시골살이'를 해본적이 없다. 다만 대학 진학 후 매년 갔었던 '농활'이 시골생활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농활에서 뵀던 '형님'들의 말씀이 기억난다.

"나이 들어서 귀농하고 싶다고? 오지마라! 올 거면 젊어서 와!"

농촌은 항상 젊은 사람이 없다는데 왜 없을까? 농활을 다녀온 뒤엔 더욱 궁금했다. 서울살이와 시골살이 모두를 고민해보게 되는 계기였다.

6년간의 서울살이

청년이 겪는 서울살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는 말이 있다.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인 만큼 누구나 서울을 바라보며 진학, 취업을 하는 것에 큰 의문을 갖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청년들 대부분은 살면서 한 번쯤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상상을 해볼 거라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권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 다니기 전까지 약 6년 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서울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빼곡한 하루하루. '도시의 일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버스, 지하철에 가득가득 실린 사람들이다. 대학생들은 강의실에서도 식당에서도 빼곡하게 앉아 생활을 이어나간다. 높은 인구 밀도는 닭장 속에 갇힌 닭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물리적인 빼곡함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빼곡함도 느낀다. 하루 계획을 분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더 정확한 표현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가 아닐까 생각한다.

두 번째, 비싸고 좁은 집. 가정 형편이 정말 넉넉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집이 좁고 여건이 열악하다. 대학생들은 월세 들어 사는 건 물을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며 발을 뻗을 수 없는 집, 소음이 끊임없는 집, 환기가 안 되는 집, 심지어는 물이 새는 집 등에서 산다. 이런 열악한 주거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정도로 집값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세 번째, 도시공해. 공기 오염, 빛 공해, 소음 공해 등 사람이 많다 보니 자연히 도시공해가 생긴다. 매일 저녁마다 식당거리엔 쓰레기가 한 가득 쌓여있고 골목에선 맡고 싶지 않은 냄새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또한 밤낮을 가리지 않는 빛과 소음, 배기가스로 인한 공기오염은 피하기 힘든 일이다.

네 번째, 많은 기회. 위와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드는 이유는 '기회'라고 표현하고 싶다. 질 좋은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기회,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람과 함께 하는 모든 일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나는 서울살이 최대의 장점인 '기회'에 의문이 생겼다. 많은 기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회를 얻으려는 사람 또한 많기 때문에 경쟁이 생기곤 한다. 매년 알바 자리 구하는 것만 해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다. 청년들이 널리고 널려있으니 스스로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중반 당시에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또래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누군가 "10년, 20년 혹은 평생을 서울에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쉽게 답할 수가 없다. 내가 아직 서울에서 나의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청년들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대체되곤 하는 구조가 서울에 숨겨진 모습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서울에서 제공하는 많은 기회도 결국 '서울'에 한정된 기회였다. 도시 생활만 해본 나는 견문을 더 넓히고 싶었다. 그러던 중 시골살이를 제안 받았다. 함평으로 귀향해서 식용 굼벵이 사육을 하신다는 40대 선배의 제안이었다. 고민할 것 없이, 나는 곧바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내가 스물네 살 때의 일이다. 

3개월, 1년, 3년... 그렇게 나는 정착했다
 
오두마을 버스 정류장 함평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나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오두마을 정류장 오두마을 버스 정류장 함평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나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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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일, 얼마 안되는 짐을 모두 싸 들고 함평으로 내려왔다. 내려오고 나서 "살만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청년이 겪는 시골살이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우선적으로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우선 내려온 첫날 밤 별이 참 많았기 때문에 머무르기로 했어요. 그리고 3개월만 지내보고 나갈까 했어요. 그런데 집을 계약하고 1년을 살아보기로, 1년이 지나니까 3년까지만 더 살아보기로 한 것이 다음 달이면 3년을 다 채우게 됐네요."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유동적인 하루하루. 농촌의 일상이나 농민의 일상이 항상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농민들은 해 뜨기 전부터 일어나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농번기에는 정말 바빠서 '해뜨기 전부터 해질 때까지 일한다'는 게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다만 대부분 사적으로 약속을 잡거나 일을 같이 할 때 분 단위까지 엄밀하게 약속을 하지 않는다. 7시부터 일한다고 하면 7시 즈음으로 서로 이해하는 식이다.

나는 2018년 함평에 내려와 4개월은 굼벵이 사육장에서 일했고, 그 다음해에는 내 농사를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아 정리했다. 지금은 이웃의 농사를 돕고 있다. 농번기가 아닌 (주로 겨울) 농한기에는 일을 확실히 적게 하는 편이고 비가 온다든지 하는 날씨 여건에 따라 일을 쉬기도 한다. 농민들은 누군가에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들보다는 자기 스스로 일정을 정하고 생활하는 편이다.

또 그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농촌의 일상은 상대적으로 유동적인 느낌이 든다. 내가 결정한 일들은 미뤄질 수도 있고, 대개 미뤄진다고 엄청난 문제가 생기진 않기 때문에 삶의 변수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두 번째, 싸고 좋은 집. 내가 지내는 집은 원래 펜션으로 사용되던 현대식 한옥이다. 거실 하나, 방 하나로 기본적인 에어컨, 냉장고 등을 갖춘 곳이다. 지내는 집에 대해서 큰 불만 없이 만족하고 있다. 지금 지불하고 있는 월세를 기준으로 서울의 주거를 비교해 볼 수 있겠다.

지금 월세에 3배를 주면 대학가에서 그런대로 살 수 있는 셋방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5배 정도 주면 현재 집과 비슷한 시설을 갖춘 집에 살 수 있을 테고, 집 밖에 마당이나 깨끗한 시골의 주변 환경까지 고려한다면 월세에 10배까지 지불해도 서울에선 지금 사는 곳 같은 방을 구하기 힘들 것이다.

세 번째, 적은 공해와 깨끗한 환경. 기본적으로는 시골의 환경이 훨씬 깨끗하다.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공기가 맑고 자연이라는 천연 정화시설이 항상 주변에 오염을 줄여준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 주변에 축사가 있다든지 누가 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운다든지 조류 퇴치용 소음발생기가 있다든지 한다면 그 근방은 농업공해에 시달릴 수 있다.

네 번째, 지역 특유의 혜택.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시골은 확실히 노인을 대상으로 한 더 많은 혜택들이 있다. 우선 시골이 보편적 노인복지가 잘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사회복지관에서 잠깐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봤을 때, 서울은 지불할 수 있는 금액에 따라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는 폭이 정해진다. 따라서 의료, 보건, 생활 등의 격차가 심하다.

농촌은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이 오히려 서울보다 더 잘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게 바로 경로당이다. 마을마다 경로당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고 그 안에서 시설 운영, 식재료 구매를 위한 비용을 지원받는다.
 
지난 겨울 오두마을 경로당에 눈이 내리고 있다.
▲ 오두마을 경로당 지난 겨울 오두마을 경로당에 눈이 내리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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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근방에 대형병원들이 적지만 지역 곳곳에 보건소가 있다. 보건소에선 일상에서 생길 수 있는 작은 상처 치료를 할 수 있고 상비약 구매를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필요한 주사 정도는 맞을 수 있다. 이 보건소의 핵심은 비용이 아주 저렴하다는 것이다.

아직 보건소의 비용 기준을 상세히는 모르지만 보건소에서 상처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파스를 붙이고, 소화제를 구매했는데 2000원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때문에 보건소에 갈 때는 3000원만 있어도 별 걱정 없이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의 기회. 시골엔 인구가 적고 도시에 비해 산업이 다양하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자연히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도 적다. 대신 청년들을 우대하는 몇 가지 정책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청년 농업인들을 육성하는 정책(청년창업농)이 있다. 농업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기도 하며 낮은 이율로 대출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한다.

농업이 아니더라도 청년들을 지원하는 일자리 정책들이 있지만 그보단 청년인구 자체가 적어 경쟁이 아주 적다. 만성적으로 인력난을 겪는 특정 직업군이 아니더라도 시골 지역에 남아 일을 하려는 청년인구 자체가 굉장히 적다.

나는 요즘 농사일 외에 국가 혹은 지자체 사업의 일환으로 인권·통일·디지털·진로 등을 주제로 프리랜서 교육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같이 하고 있는 강사 선생님들 중에 30, 40대 분들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면접을 보면서 20대 후반인 것이 큰 장점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나이가 일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청년인구가 소멸해 가는 지역에서 분명 청년들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 느끼는 부분이 여기 있었다.

물론 시골의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중교통과 편의시설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프라가 적고 사람도 적다. 그런데 귀농귀촌을 할 때 내가 느낀 가장 큰 어려움은 적은 인프라보다 인식 차이였다. 시골에 내려오고 나서, 시골은 무법천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쉽게 법에 기대기 어려웠다. 

그러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생각이 크고 신고 정신이 투철한 사람은 매정한 사람 혹은 무지한 사람, 마을에서 경계할 사람이라고 취급받기도 한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이런 인식이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도시생활을 하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인식 차이마저도 이유가 있고 사회적 맥락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지역을 떠나지 않고 더 배우려고 남아있다. 법이 없다는 건 불편함이 없다는 의미도 있다. 공자가 말한 이상적인 '대동사회'는 농촌사회를 염두에 둔 말일 것이 분명하다.

집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고, 횡단보도도 인도도 없지만 쉽게 교통사고를 당할 거란 불안이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서로 주고받는 음식, 노동, 서비스들이 있고... 이런 것들이 분명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법보다 사회에 통용되는 규칙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나무숲 옆 오솔길에 고양이들이 쉬고 있다.
▲ 오두마을 대나무 오솔길 대나무숲 옆 오솔길에 고양이들이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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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홀리데이라는 것은 보통 국외로 나가 일을 하면서 그 나라에 대해 더 배우고 경험을 쌓는 일일 것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해당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거나 이민을 준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정 기간에 걸쳐 일을 하고 생활한다는 것은 유흥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과 확실한 차이가 있다. 생활을 하기 위해선 현실의 문제를 계속해서 해결해 나가야 하고 그 사회에 어느 정도 관여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워킹홀리데이가 '새로운 현실에 대한 경험'을 위한 일이라면 꼭 국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발자취를 남겨본 적이 없는 공간이라면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그곳은 새로운 공간일 테니까. 더구나 새로운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여권을 발급하지 않아도, 우리 옆엔 언제나 새로운 기회들이 있다면 더욱 매혹적인 일이다.

삶이 거대한 모험이라면 나는 지금 함평에서 작은 모험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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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군 오두마을에서 시골살이를 시작한 마을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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