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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가 오지 않았다. 그것도 우체국에서. 이건 5년간 한 집에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다. 종종 다른 택배사에서 오배송이 있기는 하였지만 우체국은 예외였고, 담당하시는 집배원도 같은 분이었기에 모종의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우체국 택배 실종은 개인적으로는 사건이라고 불러도 될 법한 일이었다. 

이번 택배는 꽤 중요한 물건이었다. 우리 집은 8월에 큰 아이, 작은 아이 생일이 모두 있다. 각각 7세, 5세인데 같은 유치원에 다닌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 생일 파티를 조촐하게 열어주는 전통이 있다.

우리는 다 같이 나눠 먹을 케이크를 준비하고, 답례품으로 개인별 수제 쿠키와 블록 장난감을 계획했다. 아이들이 손으로 편지를 써주기 때문에 올망졸망한 글씨와 정성에 답례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동네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쿠키를, 마지막으로 인터넷에서 예쁘게 포장된 블록 장난감을 시켰다. 블록을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고른 제품이었다. 그런데 택배 누락으로 장난감이 도착하지 않았다. 

"우선 파티부터 하면 돼. 맛있게 케이크와 쿠키를 먹고, 장난감은 택배 오면 나눠 주자."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수긍했다. 마침내 생일을 하루 넘겨 우체국 택배에서 배송 예고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익숙한 집배원 이름과 전화번호. 나는 안심이 되었다. 마침 내가 쉬는 날이라 평일이라도 직접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다. 아이가 하원 해서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배달 예정 메시지를 받은 시각은 오전 11시 13분. 내가 집에 있을 때 집배원님이 오시면 좋겠지만, 12시에 인근 책방에서 약속이 있다. 11시 40분, 책방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문 앞에 인터넷 서점 비닐봉지가 있었다. 작은 녀석 그림책이다. 나는 얼른 봉투를 집어 대충 던져 놓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밖에 다른 택배는 없었다. 

책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아내와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순댓국집에서 또다시 알림이 울렸다. 우체국이었다. 배달 완료! 우체국은 밤늦게 보내는 경우도 없이 규칙을 잘 지킨다. 생일 선물이 하루 늦어지면 뭐 어때,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나는 마음을 푹 놓고 있다가 4시에 아이들을 유치원에서 픽업하여 집에 왔다. 그러나 문 앞에 마땅히 있어야 할 물건이 없었다. 배달 완료라고 찍힌 아이의 생일잔치 답례품이.

의아했지만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가끔 모 택배회사 기사님은 우리 아파트 단지에 들어오는 시점에 택배 배송 완료 메시지를 미리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문자를 받자마자 문을 열면 물건이 없을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럴 때는 시간이 약이다. 한 시간 안쪽으로 분명 물건이 도착하게 되어 있다. 약간의 시간차라고 할까.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담당 택배 기사님도 거의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피차 예민하게 얼굴을 붉힐 까닭은 없다. 

두 시간이 흘러 이윽고 6시 23분. 문 앞에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배송 완료 메시지 전송 시각과는 5시간 이상 차이가 난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저녁 시간이라 실례인 줄 알면서도 한 번도 없었던 일이고, 혹시나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니 집배원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 그러셨어요. 제가 그 시간에 배송을 했는데...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고 내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드렸다. 상대방은 매우 난처한 목소리로 찾아보겠다고, 그런데 확실히 물건을 놓았다(그렇지 않으면 배송 완료 메시지를 보낼 수 없기에)는 기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워낙 꼼꼼하고 친절한 분이시라 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알겠노라고 끊었다. 

사라진 택배의 행방을 찾아서 

온갖 생각이 뒤죽박죽 끓어올랐다. 아이에게는 뭐라고 설명하지, 기사님이 착각하셨을 수도, 설마 누가 가져갔나... 만일 누군가 가져간 것이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아마도 규정에 따라 기사님은 물건을 배송한 후에 배송 완료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여태 그래 왔듯.

그렇지만 2016년에 이 집에 이사 와서 택배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단 한 건도. 며칠 집을 비우게 되어 30만 원이 넘는 홍삼 진액 선물세트를 현관 앞에 방치한 적도 있는데 멀쩡했다. 이웃도 사려 깊은 분들이다. 

'하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설마 짓궂은 누군가가 장난을 친 건가. 아니야, 도대체 누가 친구야 생일 축하해줘서 고마워 라고 적힌 유치원생 장난감을 가져간단 말인가.'
 
아이 생일 잔치 답례품 상자
 아이 생일 잔치 답례품 상자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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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하루가 흘렀다. 나는 오전에 집배원님께 택배 확인되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하고 기다렸다. 만일 못 찾으면 어쩔 수 없다. 도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배송을 증명할 길은 전무하지 않은가. 아내와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우체국 집배원님 번호였다. 운전하는 나 대신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동까지 아무리 돌아다녀도 상자를 못 찾겠어요. 물품이 뭐라고 하셨나요? 아무래도 배상해드려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러셨군요. 남편과 이야기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아내는 전화를 끊자마자 배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가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기사님이 배상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금액도 7만 원 정도니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이 비 오는데 그 고생을 하셨으니 충분히 할 만큼 하셨다(강원 영동 지방에는 며칠째 굵은 비가 쏟아졌다), 만약에 이런 식으로 개인 배상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나. 

아내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단번에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택배 배송 완료 시점부터 내가 집에 도착하기까지 공백 시간은 3시간에 지나지 않고, 누군가 지독한 악의를 품지 않는 한 도난 가능성은 극히 낮다. 정말로 오배송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아내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물품 금액의 절반만 배상을 요구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비겁한 방안도 일순 머리에 떠올랐다. 절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습성은 이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집에 돌아오는 길은 장대비로 앞이 이따금씩 보이지 않았다. 겨우 빗발이 잦아들었을 무렵 맞은편 차선으로 형광빛이 도는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담당 집배원님이었다. 거짓말 같은 타이밍과 거짓말 같은 풍경이었다. 비를 맞으며 저속으로 나아가는 오토바이를 본 순간 나는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에 휩싸였다.

비가 들이치지 않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안전하게 있지만, 집배원은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고 비가 억수 같이 퍼붓는 중에도 소포와 우편물을 옮겨야 하는 것이다. 길은 미끄러웠고 바람은 찼다. 아마도 나의 택배 확인 요청으로 인해 오늘은 더 분주했을 것이다. 물에 젖은 종이 상자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나는 배상을 안 하셔도 된다는 전화를 하지 못했다. 아이의 새로운 선물을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으면서도, 과연 사라진 택배가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손실일까 하고 망설였다. 그냥 그렇게 시곗바늘이 둥글게 흘러갔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못 보던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관리사무소라고 했다. 3층에서 우리 집 택배로 추정되는 상자를 가지고 있으니 가지고 가라는 연락. 내려가 보니 우리가 받았어야 할 택배가 맞았다. 상자에 붙어 있는 운송장을 보는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건 누구라도 실수했겠구나 하고.

우리 집은 13층인데 주소가 길어서 그런지 운송장 배송지에는 줄 바꿈이 일어나 마지막 줄에는 000호까지만 인쇄되어 있었다. 앞에 적혀있어야 할 숫자 1은 주소 첫 번째 줄 끄트머리에 보일락 말락 했다.

나는 물건을 되찾은 기쁨과 배상 따위를 운운하지 않아도 된다는 행복에 얼른 집배원님 전화번호를 눌렀다. 정말 송구스럽다는 음성으로 전화를 받은 집배원은 물가액을 물어보았다. 나는 여차 저차 해서 물건을 찾았다고 들떠서 말했으나, 집배원님은 그게 본인의 실책을 확인하려는 시도로 아셨는지 말수가 더 줄어들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보이지는 않지만) 배상 같은 거 안 하셔도 되고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렸다. 

앞으로는 더욱 신중하게 정확한 배송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저 야박하게 굴었던 게 미안해서 전화를 드린 건데, 정말 비장한 다짐 같은 걸 듣기 위해서 한 건 아닌데 너무 힘든 표정 같은 것이 수화기 너머로 보였다. 사실관계와 책임유무를 떠나서 나는 물건을 되찾았고, 그분은 최선을 다했다. 더 이상 집배원님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감사합니다로 전화를 끊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지, 라는 말도 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왜 이리 치사한 인간인가 하고 되묻게 되었다. 만약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얼마 동안이나 배상 유무나 배상 비율 같은 걸 고민하며 앉아 있었을까. 거액도 아니고, 대체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늦어져도 큰 사달이 날 것도 아닌데. 

나는 계산이 빠르고, 피해 보는 걸 싫어한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 때문에 쓸데없는 걸 걱정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한다. 꼭 이해타산이 정확해야 하는 걸까, 그래야만 잘 사는 걸까. 적당히 넘길 줄도 알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배상은 괜찮습니다' 하고 먼저 말할 줄도 아는 사람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그래도 앞으로 택배가 안 오면 3층부터 먼저 가 봐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인색한 천성은 잘 바뀌지 않으니, 택배 오배송 대처 요령이라도 익혀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이라도 줄여야 할 것 같다. 

태그:#택배, #우체국, #오배송, #집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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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선생님의 보글보글> (2021 청소년 교양도서)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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