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시백 시집 <널 위한 문장> 표지
 이시백 시집 <널 위한 문장> 표지
ⓒ 이시백

관련사진보기


시를 읽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달마다 우편배달부가 문학잡지를 집으로 가져다주는데도 그렇다. 대학생 때 시를 써서 무슨 문학상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요즘 발표되고 있는 시들과 거리가 '저만치(김소월 〈산유화〉의 표현)' 멀어졌다.

시와 소원해진 것은 남명 조식 선생의 가르침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정인홍, 김면, 곽재우 등 기라성 같은 임진왜란 의병장들의 스승인 조식은 "정주보다 뒤에 태어난 학자는 책을 쓸 필요가 없다(程朱以後學者不必著書)"라고 했다. 성리학에 관한 연구는 정호·정이 형제와 주자가 이미 완성했으므로 후대 학자들은 그들이 말한 바를 실천만 하면 된다는 가르침이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정주의 가르침을 표절하여 박학한 체 자랑하고 새로운 설을 만들어 남을 현혹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주자 이후 성리학자들은 책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말하자면, 김소월의 〈산유화〉, 〈진달래꽃〉, 이육사의 〈광야〉, 〈청포도〉, 윤동주의 〈서시〉, 〈별 헤는 밤〉, 조지훈의 〈승무〉, 〈낙화〉 같은 시를 보면 이제 시인들이 더 이상 창작을 하지 않아도 될 듯 여겨진다는 뜻이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심훈의 〈그날이 오면〉도 있다. 백석, 정지용, 이병기도 빼놓을 수 없고, 상당히 근래로 치면 신경림의 〈농무〉도 있다. 더 뛰어난 시, 아니 그 비슷한 경지의 시라도 새롭게 창작해낼 시인이 또 있을까?

빗물에 젖은 바위의 말은 눅눅해.
잘 알아듣지 못해 귀를 쫑긋 세우지.
벽소령 뒷길에 새긴 고대문자는 에움길이야.
누가 봐도 직설적이지.
사람주나무 앞을 지나는 길에 봤어.
잎잎마다 빗물에 바록거리지.
나를 흉보는 거 같아 머리를 숙이며 걷는 지리산.
그늘흰사초가 문장을 이어주네.
며칠 전에 초록담비가 다녀갔데.
구융젖을 빨며 자라던 구석바치였는데 말이지.
너럭바위는 늘 비틈허지.
사득다리도 안다니깐.
산벼락을 맞은 이후로 살님네가 생겼다하네.
보득솔도 알고 보드기도 알아.
지리산에 소문이 빠르거든.
두 사람은 너럭에게 약속했대.
고주박이 되도록 길을 걷자구.


원작과 달리 임의로 행 구분을 한 〈자연놀이 2〉 전문이다. 2021년 7월 30일 태어난 이시백 제3 시집 <널 위한 문장>에 실려 있다. 읽는 순간 "이런 시는 처음 본다!" 하는 느낌이 강렬하게 마음을 적신다.

우선 어조와 분위기가 특이하다. 당연히 읽는 재미가 색다르고 쏠쏠하다. 언뜻 고려 시대 가전체(假傳體)와 닮은 듯 여겨지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시를 뜻으로만 읽으면, 목숨을 잃을 만큼 큰 위기를 겪은 후('산벼락을 맞은 이후') 비로소 사랑의 가치를 깨달았다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시는 지리산 식물들의 세계를 전해주는 듯하지만, 사람도 마찬가지다.

돈이나 권력 등을 추구하느라 사랑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유한한 미물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미래의 행복을 얻기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이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인간만 그렇다. 〈자연놀이 2〉는 그 삭막한 말을 '누가 봐도 직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정감있게 속삭여주고 있다.

이끼 같은 삶에도 행복이 있을까?

〈자연놀이 2〉에는 '빗물에 젖은 바위'가 등장하지만, 으레 있을 것 같은 이끼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 이끼도 '고주박이 되도록 길을 걷자'고 약속한 '두 사람'의 소문을 들었을 터이다. 왜냐하면 '지리산에 소문이 빠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끼는 스스로 옮겨 다니면서 그 소문을 퍼뜨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끼는 '난 돌아눕지 못한 채 평생을 산다'고 말한다.

난 돌아눕지 못한 채 평생을 산다.
낮은 자리에서 태어나
낮은 자리에서 생을 마감할 거다
나무처럼 크지 않으니
멀리 바깥 구경 한 번 못했다
그저 딱딱한 바닥에 붙어
넉넉한 곡기 없이 버팅기는 중
비가 내릴 때까지 참고 참았다가
마른 맨몸 벗어나곤 한다
아침저녁으로 이슬이 내리면
한 모금 목을 축이듯
급식센터가 나를 살린다
근근히 허기를 지우는 하루 한낮
내 일상이 그렇다
포기하지 못하고
무심한 바위를 붙잡고 있는 나
바위는 선사시대부터 있었다


〈이끼의 노래> 전문이다. 〈자연놀이 2〉에 은근히 등장했던 '사람'이 이 시에서는 훨씬 더 표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있었'던 바위에 붙어 '돌아눕지 못한 채 평생을 산' 이끼는 '급식센터가' 주는 먹을거리로 '근근이' 살아가는 '나'의 비유다.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멀리 바깥 구경 한 번 못'하는 채 '낮은 자리에서 태어나 / 낮은 자리에서 생을 마감할' 하층민의 '일상'을 애잔하게 묘사하고 있다.

왜 나는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게 살아가는 '평생'에도 희망이 있는 것일까? 시집에 실려 있는 다른 시 〈올갱이는 색깔도 곱다〉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돌에 붙은 이끼가 유일한 식량'이고 '한평생 오체투지로 옹동거리며' 살아가는 처지이지만 '더디어도 포기는 없다'고 말한다.

흐르는 물살을 놓치지 않으려
몸의 전부를 걸고 바위에 차린 살림
숱한 날을 모질게 붙어 새끼들에게
물 밑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 준다.
돌에 붙은 이끼가 유일한 식량
서로 나누며 한평생
오체투지로 옹동거리며 산다
물밑의 삶, 더디어도 포기는 없다
자신이 품은 색으로
물빛을 변화시키는 올갱이
삶이란 내 안의 색채를 드러내
주위를 변화시키는 것
나무도 그렇고, 풀잎도 그렇고
개울가 올갱이도 그렇다


남들 눈에는 아무 보람도 즐거움도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삶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는 까닭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은 모두 '자신이 품은 색으로' 다른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던 '안의 색채를 드러내 주위를 변화시키는' 나무처럼, 풀처럼, 올갱이처럼 사람도 남들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체투지'로 '모질게' 살아가고 있는 그 강인한 생명력도 아름답지만 '색깔도 곱다'는 찬사까지 가능하다. '유일한 식량'조차 '한평생' '서로 나누며' 살아간다면, 비록 가난할지라도 지리산이 다 알 정도로 사랑하는 이와 더불어 나아가는 생애라면, 참으로 고운 삶이 아닐까!

시인은 어떤 집에서 살고 있을까?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은 어떤 집에서 살고 있을까? 시인의 주택을 엿볼 수는 없으니 그의 정신적 집인 시집을 꼼꼼하게 읽어본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주택이 그려져 있는 〈내가 사는 곳〉이라는 제목의 시가 들어 있다. 예상대로 시인의 주택은 좁은 모양이다. 시 첫행이 '우리 집은 너무 솔아서'인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 집은 너무 솔아서
가축을 키우기 어려워
이웃에서 키우는 가을배추, 실파를
매일 바라볼 뿐이야
고민 끝에 난
하늘에 양떼를 한 마리
두 마리 방목했지
어느새 양떼들이 자라
가을맞이 하러 왔네
천상의 양떼를 모두 데리고
인사를 왔지 뭐야
난 밤이 되면 양떼를 쓰다듬으러
하늘길을 오르지
집 옆에 흐르는 개울물이
나를 데려다주거든
밤하늘을 오를 땐
물소리로 오르는 거야


시를 읽으니 독자도 물소리를 타고 천상으로 올라가 밤하늘의 양떼와 노니는 듯한 몽환에 빠져든다. 이런 즐거움을 달리 맛볼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요즘 발표되는 시들을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시백, 제3 시집 <널 위한 문장>(작가교실, 2021년 7월 30일), 135쪽, 1만원.


널 위한 문장

이시백 (지은이), 작가교실(2021)


태그:#이시백, #널 위한 문장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