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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기자말]
보이지 않는 당신에게, 혜미가 드립니다.

(* 아래 오디오 버튼을 누르시면 편지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지낭독 서비스는 오마이뉴스 페이지에서만 가능합니다.)

당신 곁의 페미니즘 · 일곱번째 편지: 보이지 않는 당신께

지난 편지, 묵직한 질문을 주셔서 고민이 길었습니다. 사실 제가 결론낼 수 있는 고민인가 싶었고, 악플들에 성애님 마음이 걱정되기도 했어요. 세상은 변하고 있나, 변할 수 있을까 하는 큰 물음이 가슴에 쿵 울립니다.

시댁과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라니... 혼인관계인 두 사람이 동의한 일인데, 다른 갈등이 왜 따라와야 하는 걸까요. '남성'이라면 겪지 않았을 일을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다면 그 또한 차별이 아닐까요. 한 가족의 일이라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성애님이 지금 겪는 일이 제 얘기가 되거나 또는 제 친구들도 겪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위로를 보냅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고맙고요.

그만둘 용기, 기꺼이 불화할 용기

용기 있는 여성들이 활약했던 비장애인 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저는 원래 올림픽 같은 거대 행사를 선호하진 않아요. 행사 한 번을 위해 산을 깎고, 살던 사람들을 내쫓는 일이 다반사니까요(이번에도 일본에선 강제퇴거에 저항하는 시위들이 곳곳에서 발생했어요). 경기는 따로 챙겨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운동하는 여성들이 눈에 자주 띄는 건 좋았습니다. 어느새 안산 선수 인스타를 팔로잉하고, 김연경 선수의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는 저를 발견하네요.
 
체조 전설로 불리는 시몬 바일스(24·미국)가 3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평균대 결선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모습.
 체조 전설로 불리는 시몬 바일스(24·미국)가 3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평균대 결선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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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기사들 중 제 이목을 끈 건 미국 기계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 얘기였어요. 22세까지 딴 세계선수권 금메달만 14개,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그가 이번에 '기권'으로 유명해진 얘기요.

시몬 바일스는 2018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체조 주치의 래리 나사르 성폭력 사건의 피해생존자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관련 기사를 읽는 동안 이게 실화였나 싶어 눈을 의심하게 되더라고요. 가해자의 성범죄로 인한 피해자만 260명이 넘는다고 하고, 바일스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 올림픽에 출전한다고 밝히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는 갑자기 개인전 결선과 단체전을 앞두고 기권 선언을 합니다. '정신건강'을 이유로 말이지요.

많은 이들이 그가 기권한 뒤 "진정한 용기"라는 찬사를 보냈습니다(관련 기사: '포기해도 돼'... 올림픽 패러다임 바뀌나). 부상이 투혼이 되는, 늘 초인적 힘을 기대받는 운동선수들에게 정신건강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해준 일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최근 인상 깊은 다큐를 한 편 봤습니다. 여성 운동선수들이 여성-남성 간 임금·상금 격차와 선수들을 성 상품화하는 언행을 지적하는 내용이었어요(KBS 다큐 '국가대표'편 바로보기). 어쩌면 지겹게 반복된 얘기 같지만, 당사자들로선 말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얘길 하면 늘 지루하게 따라붙는 게 '남자랑 여자랑 체격·체력이 같으냐' '어차피 남자한테 질 거다'라는 억지 주장들이잖아요.

누구도 하기 어렵던 말을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꺼내는 게 쉽지는 않겠죠. 그럼에도 김연경 선수는 '누군가는 얘기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라고 담담하게 말해요. 그러니까 같은 국제경기에 나가도 전원 비즈니스석에 타는 남성들에 비해 여성 선수들은 좌석을 절반만 배정받고, 통역비를 주지 않아 선수들이 직접 나서는 일 같은 거요.
 
김연경이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여자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후 코트를 떠나고 있다.
 김연경이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여자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후 코트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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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대우를 받은 건 배구만이 아니었어요. 축구 지소연, 골퍼 박세리, 핸드볼 김온아, 펜싱 남현희... 수십 배 격차 나는 임금, 남성에만 치우친 지도자들, 성차별적인 복장과 인터뷰 질문들까지. 그들 또한 오랜 세월 차별받아 왔더라고요. 미국 나이키는 자사 후원선수들이 임신하면 후원금을 70% 이상 깎거나 후원을 아예 중단했다고 해요. 이 또한 미 육상선수 앨리슨 패트릭의 <뉴욕타임스> 기고로 알려졌고, 폭로 뒤에야 정책이 바뀌었다네요.

룰(rule)이 생명인 스포츠가, 젠더를 이유로 차별과 규칙 위반을 숨 쉬듯 해 왔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된 셈입니다.
   
너무 쉽게 평가받는 여성의 몸... 정치인만 못 보는 비혼·비출산 배경
 
KBS1 다큐 인사이트 -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방송화면. <동일 경기 동일 임금(Equal play, equal pay)>이라고 명확히 짚는 KBS의 태도가 정말 좋았습니다.
 KBS1 다큐 인사이트 -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방송화면. <동일 경기 동일 임금(Equal play, equal pay)>이라고 명확히 짚는 KBS의 태도가 정말 좋았습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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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보며 여성의 몸은 만년 2등인가 싶었어요. 이래라저래라, 너무 쉽게 평가되는 듯 보여서요. 성애님이 지난 편지에서 말한 '모성쓰기'도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이를 낳는 부부가 하는 선택인데, 부성이 아닌 모성을 따른다고 하면 왜 늘 추가 설명이 필요할까요. 엄마 성(姓)을 쓴다는 선택, 그 자체만으로 왜 '논란'이 되는 걸까요. 기본값이 남성이고, 여성의 몸은 여전히 '대를 잇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인가요.

누구보다 흐름에 민감해야 할 정치인들 인식은 아직도 조선시대네요. '페미니즘 감별사' 윤석열 후보가 "페미니즘의 악용이 건전한 교제도 막는다"며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 한다"고 한 걸 아시죠. 그러나 '2020년 서울시 성인지 통계'를 보면, 15세 이상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이 2시간 26분인데 반면 남성은 41분에 불과합니다. 맞벌이 부부 경우엔 여성이 2시간 1분, 남성은 38분입니다. 이런 현실을 윤 후보는 모르는지, 알고도 그러는지 궁금해지네요.

여성들은 왜 출산을 꺼릴까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2019)에 따르면, 기혼과 미혼 모두 출산 기피 이유의 1순위는 '경제적 불안정', 2순위도 그와 연관 있는 양육비와 교육비용 부담 때문이에요. 윤 후보가 진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진정 해결하고 싶다면, '건전 교제'나 '정치적 악용 페미니즘' 운운할 게 아니라 이런 경제적 불평등을 먼저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를 포함해 세계와 불화하는 여성들의 삶으로 세계에 균열을 낼 궁리를 해봅니다. 한국 정치인들의 주장처럼 이 모든 사회문제의 원인이 페미니즘 때문이라면, 그 전제가 맞다고 한다면... 결국은 성평등한 세상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세계는 또다시 다른 절반의 목소리를 지우기에 바쁩니다.

격차를 만들고 공정을 해치는 주장과 언행, 그런 게 부당하다고 함께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야겠지요? 그래야 변화할 테니까요. 잘 보이지 않는, 세상 곳곳의 연결되고픈 얼굴들을 떠올립니다. 부당한 처우에 혼자만 앓고 있진 않기를 바라면서요.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인 여성을 지우는가', 규칙위반 중인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고 싶은 당신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2021년 8월 17일
"이런 식빵"을 외치며, 혜미 드림.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 긍정적인 피드백과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편지를 즐겁게 읽으셨다면, 여기(링크)를 눌러 응원을 남겨주세요. 

덧붙이는 글 |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람.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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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자세히 보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A political reporter. I'm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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