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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라온 지  4일째 되는 금요일, 셋째 딸은 하던 일을 미루고 손자 둘을 데리고 용인에서 고덕의 둘째 딸네 아파트까지 달려왔다. 할아버지 할머니 뵙고 인사드려야 한다고 온 것이다. 손자는 멀리서 공부하고 있어 자주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울에 올라온 김에 보려고 할 걸음에 달려와 준 딸과 손자가 기특하고 고맙다. 가족은 언제나 만나면 기쁘고 애달프다.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가족이다.

딸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해 집에서 멀지 않는 구리에 있는 동구릉을 가기로 하고 셋째 딸이 운전을 하고 달린다. 우리 부부가 서울에 오면 가능한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 구경을 시켜주고 같이 보내며 추억을 만든다. 아마도 나이 든 부모와 함께 하면서 가족 간에 정을 나누려 하는 마음들이 고맙고 흐뭇하다.

내가 서울을 오고 간 세월이 30년이 넘었어도 한가롭게 이런 곳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서울에 오면은 애들 반찬 만들어 주고 쇼핑하고 내려가기가 바빴다. 아마도 그때는 젊었고 애들이 어려서 그랬을 것 같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글을 쓰면서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조용하고 사색할 수 있는 곳,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찾는 일이 의미 있고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이런 곳에서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이 즐겁다. 

오랜 세월 숨 가쁘게 살아왔던 날들, 이제는 잠깐 마음을 내려놓고 쉬면서 지난날을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삶에서 쉼이 필요한 시간이다. 시간은 마음속에 탐구 정신과 꿈을 준다는 말이 있다

차를 타고 25분 정도 되었는데 금방 동구릉에 도착을 한다. 평일 날이라서 그런지사람도 별로 없고 조용하다. 동구릉은 '동쪽의 아홉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조선 왕실 최대 규모의 왕릉 군이다. 1408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이 처음 조성되었으며 이후 조선 역대의 여러 왕과 왕후의 능을 포함해 모두 9기의 능이 조성되어있다. 

경기도 구리시에 자리하고 있는 왕릉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능이 조성되었는데 왕이나 왕후의 봉분을 단독으로 조성한 단릉, 왕과 왕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왕과 왕비의 능을 가각 조성한것이 강릉, 왕과 왕후를 하나의 봉분에 조성한 합장릉, 왕과 두 왕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이 이 한자리에서 다양한 형태의 왕릉을 볼 수 있다.

조선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탁월한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19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조상에 대한 존경과 숭모를 중요한 가치로 삼아 역대 왕과 왕비의 능을 엄격히 관리했다. 

조선 왕조 42기 능 중에서 하나도 훼손이 되지 않고, 제대로 완전하게 보존되어있다. 42기 능 중에 북한 개성에 남아 있는 후릉, 제릉을 제외한 40기는 남한에 남아있다.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세계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어 그 문화적 사료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 왕릉을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느끼는 기운이 다르다. 입구 맨 앞에 홍살문이 있는데 이곳은 신성한 지역을 알리는 신호이다. 마음부터 경건해진다. 길 양옆에 오래된 적송이 품어내는 기운은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기상까지 느껴진다.  

홍살문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깨끗하게 정돈된 길은 대비로 길을 쓸고 있는 나이드신 어른들이 그늘에 앉아계신다. 길을 싸리비로 쓸다니 생소하다. 옛날 살던 방식대로 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자고 일어나면 마당을 싸리비로 쓰는 일부터 하루 시작을 했었다. 빗자루 자국이 남아 있는 흙길을 걸으니 정감이 있다.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날이 더워서일까,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히려 사람이 없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 너무 좋다. 나는 예전부터 조선 완조의 궁중 비화 같은 소설은 좋아했다. 왕비 열전 20권을 다 읽었을 정도로 궁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인간의 권력과 삶의 애환과 사랑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능을 보수할 때 쓰는 돌이라고 한다. 그런데 돌을 가지고 어떻게 아치를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능을 보수할 때 쓰는 돌이라고 한다. 그런데 돌을 가지고 어떻게 아치를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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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가는 소나무 길
 왕릉 가는 소나무 길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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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과 왕능
 정자각과 왕능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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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면서 현릉, 목릉, 휘릉, 수릉들이 보였다. 한때 왕의로서 세상을 호령하던 왕들은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능안에 누워 계신다. 책과 TV에서만 보아왔던 왕들의 능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그분들의 업적이 이어져서 지금 이 나라가 건재하지 않을까. 능에 누워 계시는 왕들은 저마다 사연이 많기도 하다.

특히 다른 왕릉의 제일 위에 있는 건릉은 위치마저 위풍당당한 곳에 누워 계시는 태조 이성계의 왕릉은 능을 바라보는 자체부터 카리스마가 품어져 나온다. 능위에는 빽빽이 자라고 있는 새파란 억새가 보인다. 가을이면 능에서 피어나는 억새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능일 것 같다.

말년에 고향이 그리워하며 그곳에 묻히기를 원했던 태조를 위해 태종이 태조의 고향 함경도 영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 건원릉 봉분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건능은 죽어서도 후손인 여러 왕과 왕비를 굽어보며 무슨 호령하고 계실지. 

함경도 동북면의 호랑이 이성계는 조선의 용이 되어 500년을 이어가게 하는 역사의 인물이 된 왕이다. 우리의 500년 찬란한 문화와 역사가 지금도 우리는 그 숨결을 느끼며 자긍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들,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지난 삶을 뒤돌아 보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구릉을 산책하면서 쉼을 하면 어떨까 생각을 해 본다. 그동안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아름다운 우리 전통과 옛 선조들의 고고한 인품과 삶에 가치를 잊고 살지 않았나 생각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동구릉,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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