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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클라라와 태양.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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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서 클라라는 인간의 친구가 되도록 고안된 인공지능 로봇(AF, Artificial Friend)입니다. 사람 대신 배달을 하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응대하고 청소를 하는 로봇이 나오는 세상이니 로봇이 사람의 친구가 안 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여전히 무겁게 다가오는 마당에, 인간과 마음을 나눌 친구로서의 로봇까지 상상해보는게 그리 반갑지 만은 않았습니다. 사랑이나 우정 같은 '관계'만큼은 그들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탓일 겁니다. 아니, 그런 '인간적'인 영역에는 침범해 들어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로봇 친구가 세상을 사는 법

소설 <클라라와 태양>의 주인공인 AF 클라라가 저의 이런 생각에 균열을 불러왔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클라라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과연 사랑이나 우정이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일까? 정말로 우리는 AI보다 더 인간적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질문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인간다움의 가치, 사랑, 배려, 공감, 겸손, 책임, 희생 등을 떠올리면 최소한 이 책에서만큼은 클라라가 가장 인간다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최신 사양의 AF를 찾습니다. 클라라는 가장 사양이 좋은 AF는 아닙니다. 하지만 클라라는 어느 AF보다 감수성이 좋은 친구였습니다. 클라라는 매장 안에서만 살면서도 유리창 밖 세상을 섬세히 관찰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주먹을 한쪽 눈에 갖다 대는 게 속상한 감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배우죠. 또,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서로를 꼭 껴안을 때 행복함과 속상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조시의 친구가 된 클라라는 조시의 집에 함께 살며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조시가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을 땐 자신을 매우 차갑게 대한다는 것이죠. 사람에겐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밖에 없는 아들 릭을 공부시키기 위해 그를 멀리 떠나보내려는 릭의 엄마에게서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클라라가 애써 깨우친 것들은 인간인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인간을 이해해보려는 클라라의 진심과 열의입니다. 이런 클라라 앞에서 저는 또 한 번 질문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진심과 열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라고요.

조시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클라라의 노력은 아픈 조시를 살리기 위한 결단으로 연결됩니다. 놀랍게도 클라라에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조시를 낫게 하려는 그녀의 선택은 아픈 자식을 구하려는 엄마의 몸부림을 떠올리게 할 정도입니다. 클라라가 릭의 엄마에게서 얻은 깨달음대로 그녀는 자신이 외로워질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희생을 감내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또 깨닫습니다. 조시 한 사람의 내면에 다가가려 애쓰는 것만으로는 조시를 다 알 수는 없다는 것을요. 조시라는 한 인간의 특별함은 조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다는 것을요. 한 존재의 특별함이란 것이 그를 둘러싼 관계, 사랑 속에 있음을 간파해냅니다. 로봇 친구 클라라는 이렇게 또 한 번의 깊숙한 성장을 이루어 냅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 친구가 '화자'인 이유

클라라 같은 로봇 친구를 사고 파는 상황이 아직은 현실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소설 속 상황이 근미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상상 속의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 로봇 친구가 얼마나 풍부한 감수성과 이해력을 갖고 있을 것이냐를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저자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왜 이토록 인간적인 로봇 친구를, 그것도 주인공이자 화자로 선택했을까요?

우리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람의 의도 섞인 친절을 진심 어린 관심과 걱정으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로봇, 친구를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용기 있는 로봇,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소외될지라도 자신의 소임과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로봇. 인생의 시련까지도 사랑하라고 외쳤던 니체의 '아모르파티'가 이 로봇에게는 절대로 모자라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소설 속 인간들의 세상은 좀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로봇 친구를 삽니다. 로봇은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지만 로봇과 아이의 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로봇은 언제든 버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질병 유전을 막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지능적으로 더 똑똑한 아이로 키우기 위한 목적의 유전자 편집이 일반화됩니다. 문제는 유전자 편집의 여부가 아이들의 세상을 가르는 기준으로 사용되죠. 여기에도 '스카이캐슬'은 존재합니다.

아마도 작가는 클라라의 눈에 비춰진 세상을 묘사함으로써 우리 인간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로봇 앞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요? 혹시 인간다움이 인간만의 것이라고 우리 스스로 과대평가해온 것은 아닐까요?

지금의 우리라면 머지않아 우리에게 클라라가 다가왔을 때 우리의 일자리와 인간의 역할을 빼앗는 존재로 차별하고 배척하는 일에 골몰하게 될까 두렵기도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그들을 사랑할 준비,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요?

일자리를 빼앗길 위험보다 더 큰 위험은 그들에게 우리의 인간다움을 빼앗길 위험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다움'이라는 말이 없어지겠지요. 로봇이 얼마나 인간적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가 우리의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기자 본인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s://blog.naver.com/fullcount99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은이), 홍한별 (옮긴이), 민음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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