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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로 가는 길에 본 무지개
▲ 대구로 가는 길에 본 무지개 대구로 가는 길에 본 무지개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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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친구들과 놀아야 한다는 딸에게 장문의 문자로 설득한 끝에 대구를 갈 수 있었다. 나도 가기 싫다는 녀석을 억지로 데려가고 싶지 않지만 지난번에 혼자 갔다가 아빠가 왜 혼자 왔냐며 역정을 내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빠는 딸보다 손녀가 그렇게나 좋을까.

딸한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아침에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했어. 어제 할아버지한테 온 전화를 못 받았거든. 할아버지가 전화한 용건은 멸치, 아몬드랑 호두를 보내준다는 거였는데, 엄마는 지난번에 보내준 것도 아직 있어서 안 보내도 된다고 했어.     

할머니, 할아버지 보면 온종일 집에서 자식들한테 줄 생각만 하는 사람들 같아. 어쩌면 남은 생이 길지 않았다는 생각에 줄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주려고 하는 건지. 그런 생각이 들면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저릿해진다.
    
엄마 생일이 7월이잖아. 이 더위에 나를 낳느라 할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했어. 에어컨도 없고, 산후조리해 주는 사람도 없이. 젊음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한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후의 지금이 엄마는 안쓰럽고 허망하게 느껴진다.      

네가 일어나서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어놓고, 수업 준비를 하는 지금 우리의 시간도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몰라.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엄마의 모습이 너와 나의 미래 모습이기도 하니까. 엄마는 우리가 지금밖에 할 수 없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앞으로 방학 동안 친구들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오늘은 엄마와 대구를 가면 안 될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너를 기다리는 걸 아니까 엄마 혼자 대구를 갈 수가 없다. 네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나도 손주가 그렇게 예쁠까? 아직 먼 얘기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의 너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겠지. 그 마음이 짐작이 되기 때문에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네가 생일 선물로 해주겠다고 한 44(내 나이) 번의 안마는 대구 가는 걸로 퉁쳐줄게."

  
엄마가 이렇게까지 나오면 별 수 없다고 생각한 딸은 나와 대구를 가기로 했다. 하지만 대구에서 초밥이(딸)는 밥 먹자고 깨웠다고 입이 나와서는, 밥상을 드는데 너무 높게 들어서 "좀 낮춰"라고 했다고 밥 먹는 내내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득도의 길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며 꾹 참고 있는데 아빠는 그런 초밥이를 예뻐 죽겠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빠는 그 시대에 흔치 않은 딸 바보였다. 친척집에 갈 일이 있을 때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는 아빠를 사춘기였던 나는 귀찮아하기도 했다. 같이 집을 나서면 아빠는 나한테 이런저런 말을 많이 했는데 그때 아빠 얼굴이 지금 초밥이를 바라보는 얼굴이었다.      

대구 부모님 집은 내가 사는 군산에서 250킬로미터 거리. 그곳을 갈 때면 내가 두고 온 것들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들고, 돌아올 때는 앞으로의 삶을 향해 떠나는 기분이다.     

대구에서 군산으로 오는 길, 대구를 떠나는 아쉬움보다 군산인 집으로 돌아가는 안도감이 커진 건 언제부터였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초밥이와 나는 릴레이로 신청곡을 받고 초밥이가 틀었다.

"이 노래 좋지?"
"허세가 가득한 중 2병 노래다. 이런 신파조 발라드는 엄마는 별로야. 규현이 부른 거 찾아봐."
"규현 노래 진짜 잘하지?"


둘의 취향이 일치된 노래를 찾기라도 하면 반갑기도 하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 신이 난다. 그러다 잠이 든 초밥이가 불쑥 깨서는 잘 듣고 있는 노래의 음향을 팍 줄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초밥이 덕분에 십센치의 <스토커>와 이무진의 <신호등>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무진의 염소 창법을 칭찬하자 초밥이는 이것도 좋다며 <누구 없소>를 틀어줬다. 나는 "이거 우리 꺼"라며 우리 세대가 원조임을 알렸고, 초밥이는 심드렁하게 그러냐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태그:#딸, #아빠, #할아버지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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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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