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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거의 매일, 자의 반 타의 반 하루에 다섯 편의 시를 읽고 방송 원고 같은 짧은 산문도 같이 쓰는데요, 오늘 새벽 읽은 시는 김선태 시인의 시 <어머니, 지독한>이라는 시입니다. 시는 이런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대학 시절 지독한 열병을 앓았습니다. 생사(生死)를 오가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내장이 파열되는 상태였으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쉽게 가늠이 됩니다. 시인은 한 달간 꼼짝없이 병원에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하게도 회복되었지만, 문제는 시인의 몸이었죠. 퇴원 때 깡마르고 험상궂은 반란군처럼 보였다고 하네요. 1990년 개봉한 영화 <남부군>의 '안성기'를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너무 오래된 영화라서 사진을 올립니다).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
ⓒ 영화 남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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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칠순 어머니는
고향집에서 기르던 개를 손수 잡으셨다
당신을 그렇게 좋아라 따르던 황구였다
독하게 마음먹고 밧줄로 목을 조른 뒤
지게에 지고 개울가에 나가 해체했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지독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김선태 시인의 시 <어머니, 지독한> 중에서

이 시를 몇 번이나 읽었는데, '칠순'이라는 단어가 이제서야 눈에 들어옵니다. 시인이 잘못될지 몰라서 '단장의 마음'으로 지켜보던 칠순 어머니가, 선택한 것은 고향집에서 손수 기르던 황구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개'만큼 확실한 보양식은 없었을 테니까요. 왜 개였을까를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약'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의 어머니, 그렇게 몸이 크지도 않을 텐데, 자기 몸 반만 한 황구의 숨은 또, 어떻게 끊었을까요. 동시에 황구의 마음도 같이 헤아려봅니다. 자기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왜 반항하지 않았을까요.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이심전심(以心傳心)은 아니었을까요. 아들을 위해 지독한 마음을 먹은 칠순 노모의 마음을 황구도 알았던 걸까요.

단장이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일컫는 말입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창자는 아들이 사경을 헤맬 때 이미 끊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 끊어진 창자가 독하게 마음먹고 황구를 죽일 때 다시 한 번 사정없이 토막 났겠죠. 단장을 생각하니 또 다른 단장이 떠오릅니다. 가수 황금심이 부른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죠. 노래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애환이 담긴 미아리고개(1966년 사진)
 애환이 담긴 미아리고개(1966년 사진)
ⓒ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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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황금심 가수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 중에서

이 노래도 참 아프죠. 시인의 어머니만큼이나 사랑하는 임을 바라보던 시선은 몇 번이나 애가 끊어지고 끊어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미아리고개를 넘어서면, 다시 못 보리라는 것을 알거든요. 이 노래가 국민가요로 불렸던 까닭, 그만큼 많은 사람이 단장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단장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없어야 할 텐데요. 이 노래를 친일 작사가인 반야월이 작사를 한 것은 안타깝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중의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만 단장의 아픔이 없으면 괜찮은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아프가니스탄' 뉴스가 심심치 않게 올라옵니다. 미국이 병력을 철수시키자, 탈레반 세력이 나라 전체를 점령했다고 하죠.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부패는 이미 도를 넘어섰고, 이 상황에서 미국이 빠져버리자마자 종이 고양이로 전락을 한 것입니다.

걱정되는 것은, 탈레반으로 인해 발생할 '인권유린'의 문제입니다. 저곳에서 수많은 단장이 끊어지는 사건이 발생할 것입니다. 6·25사변 때 북한군에 의해 자행된 <단장의 미아리 고개>와 같은 만행, 그것을 갚아 주기 위해 저질렀던 애꿎은 부역자들에 대한 만행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발생할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죠.

단장이 끊어지는 마음들을 살펴봅니다. 제가 소개하는 시와 산문이 얼마나 저 단장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제 시와 산문이, 치유의 발판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 <시 빨래하기 좋은 날>처럼 아픈 마음이,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금세 말랐으면 좋겠습니다.
 
날이 좋아서

아픔과 슬픔, 아쉬움까지 툭툭 털어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채 털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눈물처럼 바닥에 떨어져 어두운 얼룩을 남기지만

괜찮습니다,
금세 마를 테니까요

날이 좋아서
이번에는

한나절도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영헌 시 <시 빨래하기 좋은 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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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평일 새벽 6시 <클럽하우스>, <카카오 음>에서 시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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