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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일은 언제나 고역이다. 아주 오랫동안 남이 보게 되는 주민등록증 사진은 더 그렇다. 머리를 만지고 어울리는 옷을 고른다. 웃는 것도 연습해본다. 이 사진을 보여주면 나는 술을 마실 수 있다. 내 친구들 모두 비슷했으리라. 그런데 이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19살도 있다. '미등록 이주 아동', 국적 없이 한국에 사는 친구들이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이주민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 중 부모의 체류자격 상실, 난민 신청 실패 등 다양한 이유로 체류자격이 없는 아이들을 말한다. 한국에 있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은 2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이 모두 학교를 다니려면 전교생 400명인 학교 50개가 필요하다. 적지 않은 수다.

부모가 유효한 체류자격이 없다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법을 어긴 존재가 된다. 아이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아파서 병원을 가는 일이다. 나는 이들을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하지만 소개해준 사람은 있다. 르포 작가 은유이다. 그가 쓴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란 책에서는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되어버린 한국의 미등록 이주 아동들을 소개한다.

일상에서 배제되고 살면서 좌절하는... '비국민' 아이들
 
은유가 쓴 <있지만 없는 아이들>(창비) 표지 사진이다. 이 책은 미등록 이주 아동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 표지 은유가 쓴 <있지만 없는 아이들>(창비) 표지 사진이다. 이 책은 미등록 이주 아동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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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 아동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학습권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친구들과 똑같이 생활하지는 못한다. 주민(외국인)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이다. 본인 명의의 핸드폰 개통이 어렵고, 청와대에 견학을 가지도 못한다. 봉사 사이트 1365자원봉사포털에 가입하지 못하고, 역사 골든벨에서 우승을 해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주민(외국인)등록번호가 필요한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니 일주일에 마스크 다섯 장도 살 수 없었다. 친구들이 QR 체크인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이들은 손으로 전화번호를 적어야 한다. 은유 작가는 "미등록 이주 아동은 공부할 권리는 있지만 살아갈 자격이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생활만 불편한 게 아니다. 미래 계획을 세우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졸업 이후, 아이들의 불안은 더 커진다. 현행 법체계 안에서는 성인이 되면 한국의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인데도 언제든 강제추방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스무살이 된 이들은 한국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역사를 배우고, 한국어를 쓰고 말하고, 한국 노래를 듣고 한국 친구들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법은 미등록 이주 성년은 보호하지 않는다.

미등록 이주민이 될 것이라는 걸 아는 미등록 이주 청소년들이 어떤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 책에는 우즈베키스탄 태생인 미등록 이주 청소년 카림 이야기가 나온다. 국어와 역사를 좋아하고 반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난민 신청이 불인정 되면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학교 공부는 손놓고 수업시간에 아예 다른 책을 보거나 입시를 포기한 친구들과 모여서 놀기만 바뻤다.

지금은 시골의 한 건설 현장과 농산물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든 쫒겨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불안함을 느낀다. 미동록 이주 아동은 '나중에'가 없다. 불안한 미래만 있을 뿐이다. 한국 국적의 청소년들도 미래는 불안하다. 하지만 이들의 꿈은 불안한 한국 국적의 청소년들처럼 살고 그들처럼 성년이 되는 것이다. 친구처럼…

우리가 이주아동을 지켜 줘야하는 이유

UN의 아동권리 협약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협약이 정하는 생존권, 보호권 등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결정할 때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함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196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했고, 한국은 1991년 비준 당사국이 됐다. 국내에서도 아동권리협약을 적용하기 위해 아동의 권리와 관련한 다양한 법령을 두었다.

그중 아동의 복지를 보장함을 목표로 하는 『아동 복지법』은 제2조의 기본이념에서 아동은 자신 또는 부모의 종교, 사회적 신분, 출생 지역,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않고 자라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인권법과 국내법 모두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본 것처럼 미등록 이주아동은 등록 이주아동과 학교와 사회에서 다른 대우를 받는다.
 
 법무부가 지난 4월에 발표한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착 시행방한’ 법부무가 조건부 구제대책을 마련했으나 대다수 아동은 해당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가 지난 4월에 발표한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착 시행방한’ 법부무가 조건부 구제대책을 마련했으나 대다수 아동은 해당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법무부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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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아동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에 의해 한국으로 건너온 아이들이다. 누구도 자신이 출생한 사실, 또는 유아기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는 없다. 학교와 사회 생활 문제도 문제지만 가장 큰 것은 이들에게 어떤 미래도 보장을 하지 않는 한국의 국적법이다.

최근 법무부가 국내 출생 후 15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들에 한해 체류자격을 심사받을 기회를 준다고 발표했다.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 법무부의 최초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왜 15년인가? 10년은 안되는가? 혹은 5년은 안되는가? 아니 이들은 왜 심사대상이 되는가? 그 이유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태어나자마자 한국에 온 아이나, 15년보다 짧은 기간 체류했지만 국적국에 귀국하기 힘든 경우는 구제되지 못한다.

UN 아동권리 협약이 체결된 이유는, 아이들이 약한 존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미래를 책임질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나라의 사법체계가 한 아이의 미래를 심사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배우고,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고 한국 친구들과 뛰어놀던 아이들의 미래를 국가가 통째로 빼앗을 수 있을까? 그 가능성만으로도 우리는 UN아동권리협약의 체결 당사국의 지위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봐야한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지은이),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창비(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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