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학생이 되고 첫 방학을 보내고 있는 큰 애가 할 일을 미뤄두고 미적거린다. 며칠 전 동기들과 공모전에 출품할 영상을 찍어왔는데, 며칠 째 편집에 손을 안 대고 있다. 촬영 막바지에 더위에 지쳐 즉흥적으로 수정해서 찍는 바람에 영상이 마음에 안 든단다. 공모전 마감이 코 앞이라면서 어찌 저리 천하태평일까? 괜히 옆에서 지켜보는 내 속만 자글자글 끓는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할 일을 두고 미적거리는 아이를 곱게 보아 넘기지 못해 잔소리를 하고 만다
  할 일을 두고 미적거리는 아이를 곱게 보아 넘기지 못해 잔소리를 하고 만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도대체 언제 편집을 시작할 거냐고 넌지시 몇 번 물었는데 대답이 영 시원찮다. 결국 조바심이 넘쳐, 늦잠에서 기상 중인 큰 애에게 속 끓이던 말들을 쏟아붓고 말았다.

"얘, 찍은 영상이 마음에 안 들어도 일은 끝까지 마쳐야지! 편집 잘해서 꼭 늦지 않게 출품하렴. 이번에 성과가 없더라도 일을 마무리 지어야 경험이 쌓이고, 다음에는 좀 더 분발할 수 있지, 안 그러니?"

"아우, 참! 알았어요. 알아서 해요!"


돌아오는 큰 애의 짜증 섞인 대답에 아차 싶었다. 그 톤과 표정에 '자기는 아무 걱정이 없는데, 전혀 관련 없는 엄마가 왜 나서서 참견인가' 하는 못마땅함이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공손히 답해도 시원찮은데 짜증이라니. '에잇, 말하지 말걸.' 금세 후회가 되었다. 다 큰 아이에게 이런 훈계조의 잔소리는 어떻게든 꿀꺽 삼켜버리는 게 여로모로 낫다. 나는 걱정으로 한 잔소리지만, 오가는 서로의 대꾸에 자칫 감정만 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껏 큰 애를 겪으며 몇 번이고 깨달았으면서 또 선을 넘어버렸다. 왜 나는, 아이가 귀 기울여 듣지도 않고 감정의 앙금만 남기는 잔소리를 여전히 놓지 못할까? 물론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빈둥거리는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 외에 뭔가 더 있다. 버린다, 버린다 하면서 여전히 버리지 못한 자식의 성취에 대한 욕심이 숨어있는 것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부모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정도가 지나쳐 갈등을 야기한다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자식의 성취를 내 성취로 간주하고, 자식 잘 키웠다는 주변의 찬사를 뿌듯해하는 환상 속의 나를 무의식적으로 갈망하는 건 아닌지. 그 환상을 실현시키려는 욕망 때문에 불필요한 간섭과 참견의 잔소리를 고집하는 건 아닌지. 애꿎은 아이만 닦달해 대리 만족하겠다는 심보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잔소리를 못 끊는 마음을 한 겹 더 들어가 보면, 바로 자식의 행동을 내 말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도 스며있는 것 같다. 부모는 자식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있고, 자식은 그 말을 따라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를 은연중에 당연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래도 될까?

물론 아이를 정성껏 키운 공은 있지만, 그렇다고 성인이 된 아이가 나의 말에 무조건 순종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고, 나와 다른 시각, 가치관을 지닌 개별적, 독립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녹록지 않은 인생에서 한때 길을 잃더라도 자기만의 삶의 지도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오롯이 자녀의 몫이니 말이다. 머리로는 쉽게 알지만, 마음으로 수긍하는 건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영화로도 제작된 에세이 <뷰티풀 보이>
  영화로도 제작된 에세이 <뷰티풀 보이>
ⓒ (주)더쿱, (주)SH 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데이비드 셰프의 에세이 <뷰티풀 보이>를 보면, 작가는 아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아들을 구원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작가는 누구보다 총명하고 전도유망한 아들, 닉을 온사랑으로 애지중지 키운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슬슬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급기야 대학도 마치지 못한 채 중독의 늪에 빠져버린다.

작가는 애끓는 심정으로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구해보려고 어르고, 달래고, 위협도 하며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들한테 느끼는 배신감이 만만치 않다. 마약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잡았다가도 다시 마약을 하러 길거리로 사라져 버리고, 마약을 구하는 데 위조 수표를 만들어 쓰고, 절도와 무단 침입 등을 일삼는다.

그럼에도 계속 아들의 빚을 막아주고, 피해를 보상해주며 아들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설득한다. 그러던 중 작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을 상한다. 결국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수술을 받게 되고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다. 그때, 죽음을 앞두고 찾아든 깨달음 즉, 자신이 아들을 도울 수는 있지만, 아들의 생존은 결국 아들에게 달려있고, 둘의 삶은 별개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다 해도, 자식은 자식대로의 삶이 따로 있고, 부모는 그런 자식을 한 발 떨어져 믿고 지켜봐 주어야 한다는 작가의 깨달음이 마음을 울린다. 성인이 된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로서 늘 기억해야 할 점일 것이다. 

우리에겐 각자의 삶의 있다 

아침에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밀고 들어온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때가 되면 저절로 변화해가는 계절이 참 경이롭다. 날씨가 선선해지니 에어컨을 끄고, 저녁 장을 보러 시장에도 나가본다. 산행도 다시 시작하며 활동량을 자연히 늘려간다. 계절 변화에 맞게 나의 행동 양식도 자연스레 바뀌는 것이다. 아이를 길러냄도 이와 같지 아닐까? 아이의 성장에 따라 부모의 사랑법도 그에 맞게 변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순리를 따르는 일이지 싶다.

결국 머지않아 내 품을 떠나 홀로 세상에 발 디딜 자녀이다. 좌충우돌하며 세상에 부딪혀 봄으로써 자신을 알아가고, 사는 법을 익혀가며 자생력을 기를 것임을 믿는다.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그저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 주고 싶다. 게다가, 무엇보다 나에겐 집중해야 할 내 몫의 인생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식 걱정은 이쯤 접어두고,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나의 삶에나 몰두하고 힘쓸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잔소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