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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회 상임위에서 심사중인 언론 징벌적 손배제 도입에 찬성하는 글을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가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한 반대 주장도 환영합니다.[편집자말]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10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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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영미법 계통이어서 우리 법체계에 안 맞고' '총체적으로 잘못된 위헌 법률'이며 '파시즘으로 가는 길'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징벌적 손배제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최악의 언론 통제'이며 앞으로 '최순실 보도' 같은 탐사보도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국민의힘은 '대선용 언론재갈법'이라고 매도한다.

과연 타당한 주장들일까?

일반 제조물보다 더 위험한 '유해언론'

징벌적 배상제가 '영미법 계통이어서 우리 법체계에 맞지 않고' '위헌 법률'이라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미국에는 사실 언론에 징벌적 배상을 물리는 특별법은 없다. 그 대신 상법이 포괄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고 언론에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해 우리 법무부가 상법 개정을 통해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려 했을 때 언론이 어떤 태도를 보였던가? '언론을 상대로 제조물 책임을 묻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며 반대해 입법이 좌절됐다.

나는 언론이 일반 제조물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해언론이 널려 있는 게 우리 언론 환경이다. 독극물보다 피해가 더 큰 게 유해식품과 유해언론이다. 독극물은 '독극물'이라고 써놨는데, 유해식품은 '건강식품'으로 포장하고 유해언론은 '일류신문'으로 위장한다. 이번 법 개정안은 원래 열람 차단이 청구된 기사는 그 사실을 기사에 표시하도록 했는데, 언론단체 요청으로 그 조항을 삭제한 것은 입법 후퇴다.

영미법은 관련 법조항이 없더라도 법원이 판례로 법질서를 지킨다. 수천억 원대 징벌적 배상 판결이 가능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영미법의 '무한손배' 정신을 살리면서도 5배 이내로 제한해서 과잉처벌이나 불확실성을 없애자는 건데 왜 언론학계와 언론계 다수가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영미식 언론자유는 누리면서 영미식 책임은 지지 않는 모순

법은 사회 현실과 필요에 따라 만드는 것이지 영미법이면 어떻고 고조선 8조법금이면 어떤가. <한서 지리지>에 따르면 8조법금에는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으며 속죄하려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고 돼 있다. 함무라비법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단순 손해배상뿐 아니라 '가축을 훔치면 열 배로 배상해야 한다'는 징벌적 배상 규정이 있다.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에 형사소송 말고도 경제적 배상을 강제해야 하는 이유는 돈을 벌려고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확증편향을 거쳐 더 많은 독자와 시청자를 모으는 구조여서 이를 막으려면 민사소송을 겸해 경제적 이익을 몇 배로 박탈해야 한다.

고조선 8조법금과 함무라비법에서 경제범죄에 징벌적 배상을 물린 것도 같은 취지가 아닐까? 우리는 왜 이런 고대의 법 정신조차 살리지 못하는 나라가 됐는가? 매월 억대 수익을 올리는 극단적 유튜버나 기성언론에게 수백만 원 배상금은 '필요경비'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언론의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도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징벌적 손배제가 왜 '반헌법적 과잉입법'인가? 사실 한번 잃은 명예는 거액 배상으로도 회복하기 힘들다. 영미식 언론 자유는 누리면서 영미식 책임은 지지 않는 모순은 법 제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현업단체 간부들이 모여 무슨 자정 결의문이나 취재윤리강령 같은 걸 수도 없이 발표했지만 바쁜 언론인들이 그걸 읽기나 할까? 인센티브나 제재는커녕 데스크가 선정성과 속보성을 강요하는 언론사도 많다. 문체부와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는 일부 조항의 경우 외국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는데, 설령 없다 할지라도 선진국 중 신뢰도 꼴찌 언론을 가진 나라가 앞장서서 만들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0일 여의도 국회앞에서 허위·조작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0일 여의도 국회앞에서 허위·조작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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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전문기자들은 위축 걱정 안 해

탐사보도가 위축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탐사보도가 아무리 중요해도 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익 목적 보도인 경우 '위법성 조각' 곧 위법성이 좀 있어도 법원이 봐주는 게 확립된 판례다. '현실적 악의'는 악의 없이 취재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중과실 문제도 마찬가지다. 웬만큼 훈련받은 기자라면 중과실을 범하지 않는다.

지금 주요 언론사 어뷰징팀은 저널리즘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이가 많아 인권침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탐사보도가 위축된 것은 포털이라는 가두리 양식장에 갇혀 클릭 수에 사운을 거는 언론사 탓이지 '언론 탄압' 때문이 아니다.

막상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뉴스타파>와 <열린공감TV>의 탐사전문기자들은 징벌적 배상제에 반대하지 않는다. 최순실 사건을 탐사보도한 김의겸 의원은 이 법안의 공동발의자이기도 하다.

탐사전문기자들은 악의를 갖고 취재할 이유가 없고 허위조작이 아니라 진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보도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인가라고 반문한다. <열린공감TV> 강진구 기자는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급여까지 가압류한 KT&G생명과학 전 사장 등에게 서울경찰청이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동안 기자협회와 언론노조에서 내 사건을 징벌적 손해배상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해왔지만 나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KT&G처럼 정당한 기사를 가짜뉴스로 몰아서 기자와 언론사를 겁박하는 경우에도 이에 상응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있어야 한다.
 
징벌적 손배제가 도입되면 법원이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언론보도를 막기 위한 권력자나 대기업의 '전략적 봉쇄 소송'은 미국의 경우 법원이 대개 각하 결정을 내린다. 미국에서 함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견제 장치는 역설적이게도 엄청난 소송 비용이다.

그러나 이번에 여당이 언론단체 등의 요구로 고위공직자와 대기업 임원 등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아예 할 수 없게 고친 것은 입법 취지의 후퇴라고 생각한다. 전략적 봉쇄 소송을 막는 확실한 방식이긴 하지만, 고위공직자의 명예도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에게는 언론의 악의와 중대과실을 스스로 입증하게 하면 함부로 소송을 걸 수는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 보도관행에 비추어 또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사실 기자들이 동네북처럼 두들기는 대상이 공직자들이다. 공무원은 선출된 국민의 대표는 아니지만 역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다. 허위∙과장보도는 정책 왜곡을 불러오고 결국 손해는 국민에게 넘겨진다.

'대선용 언론재갈법'이라는 흑색선전

국민의힘이 '대선용 언론재갈법'이라고 매도한 것은 사실검증도 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일부 논객의 가짜뉴스를 믿은 탓인 듯하다. 언론중재법은 8월에 통과되더라도 관보에 공고하고 6개월 뒤에나 시행되기에 3월 9일 대선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언론 현업단체들은 법안이 상당히 후퇴했는데도 이제는 '수정' 아닌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며 사실상 법안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엄혹한 시기에 박종철 사건 등을 특종보도해 민주화에 기여해온 기성언론은 지금 무엇이 두려운가?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 사주의 자유가 아니라 언론인과 시민의 자유로 발전해왔다. 언론중재법은 사주로부터 침해되는 언론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언론단체는 '시민의 알 권리' 타령을 하지만, 시민이 알고 싶어하는 건 가짜뉴스가 아니다.

현업단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언론 자유 침해인가? 사주와 조직의 이익 침해인가? 아니면 기득권 침해인가? 그저 취재보도 편의주의인가?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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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조선일보 기자, 한겨레 경제부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대원장(2008~2019)을 역임한 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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