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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에서 황당한 사건을 하나 접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지난 11일,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항소심에서 유죄를 받자, 내 페이스북 피드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측을 지지하는 이들은 '정경심 교수 측에 유리한 증거가 채택되지 않았고, 사법부가 검찰과 언론에 무릎 꿇은 일'이라 힐난했다. 반면, 조국 전 장관을 비판하는 이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중 조국 전 장관을 비판하는 입장을 가진 한 페이스북 친구(아래 페친)는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이런 코멘트를 달았다.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억 원, 추징금 1억4000만 원이었는데, 2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5000만 원, 추징금 1061만 원으로 줄었으면 사실상 정경심은 무죄라는 얘기네요. 우왕~"

말미에 쓰인 "우왕~"이라는 감탄사에서도 알 수 있듯, 이는 정경심 교수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일종의 반어법으로 비판하는 코멘트였다. 곧이어 진중권 전 교수는 해당 게시글을 공유하며 "코멘트가 예술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몇 시간이 흐른 뒤, 해당 페친의 코멘트가 <중앙일보> 기사에 인용된다. 문제는 그 기사에서 이 페친의 코멘트가 '정경심 교수의 지지자'의 의견으로 설명됐다는 점이다. 
 
중앙일보의 '정경심 유죄 뒤 지지자들 올린 글… 진중권 "코멘트가 예술"' 보도. 페친의 코멘트가 완전히 다른 뜻으로 인용됐다.
 중앙일보의 "정경심 유죄 뒤 지지자들 올린 글… 진중권 "코멘트가 예술"" 보도. 페친의 코멘트가 완전히 다른 뜻으로 인용됐다.
ⓒ 중앙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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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인용된 진중권 교수의 포스팅.
 기사에 인용된 진중권 교수의 포스팅.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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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지난 11일, '정경심 유죄 뒤 지지자들 올린 글… 진중권 "코멘트가 예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진 전 교수는 11일 페이스북에 정 교수 지지자들이 '벌금이 줄었으니 사실상 무죄'라고 주장하는 글을 공유하며 "코멘트가 예술"이라고 비꼬았다"고 언급했다(관련 기사). 조국 전 장관 측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페친이, 기사 안에서 '정경심 교수 지지자'로 표현된 것이다. 기사가 나간 뒤, 그는 황당함을 토로했다. 

그뿐만 아니다. 기사는 해당 대목에 이어 "일부 조 전 장관 지지자들은 이날 판결에서 1심보다 벌금과 추징금이 대폭 줄어든 것을 두고 사실상 무죄라고 해석하고 있다. 진 교수는 이같은 발언에 대해 "코멘트가 예술"이라고 일침을 쏜 것이다"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혈안이 된 언론

물론 해당 코멘트를 쓴 페친이 그간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보여왔던 사람인지 몰랐다면, 그 '의도'를 헷갈릴 수는 있다. 같은 선상에서 "코멘트가 예술"이라는 진 전 교수의 코멘트도 '일침'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누리꾼의 어떤 코멘트를 기사에 사용하려고 했다면, 기자는 그 맥락를 제대로 확인해 인용했어야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포털의 댓글 같은 경우, 그들의 정치적 지향성을 판단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 SNS라면 얘기가 다르다. 페이스북 메신저 등을 통해 코멘트 이용에 대한 동의를 받고, 기사 작성 취지를 설명한 후 보다 정확한 의견을 되물어볼 수 있었다. 신속히 보도해야 할 문제도 아닌 만큼 당사자의 답장을 들어보고 기사를 써도 늦지 않다. 이런 황당한 오보와 해프닝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기본적인 조사다.

또 이같은 과정은 코멘트 당사자에 대한 예의이자 의무다. SNS를 공적 발화의 장으로 활용하는 진 전 교수와 같은 유명인이 아니라, 개인의 의견을 인용하고 싶다면 당연히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만일 코멘트가 엉뚱하게 인용된 것으로 인해 당사자가 불필요한 오해나 공격을 받는다면, 기자는 책임질 수 있는가.  

이는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기삿거리를 만들어내는 언론 전반의 문제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조사나 팩트체크를 하기 힘든 SNS,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입맛에 맞게 인용하고, 왜곡했던 관행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기자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언론이 진심으로 반성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가짜뉴스에 대응해야 할 언론이 정반대로 스스로 가짜뉴스를 만들고 있는 꼴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을 욕하는 시대다. 기존 언론을 믿지 못하겠다며 그보다 하등 나을 게 없는 유튜브가 진실이라 믿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심 답답하면서도 '왜 저 사람들이 언론을 불신하고 유튜브로 가게 되었을까, 그게 단지 유튜브가 당신들의 입맛에 맞는 얘기들만 해줘서 그런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이유도 크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위 사례와 같이 기본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는 기자들과 그걸 통제하긴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언론 환경 제반에 있지 않을까. 최소한의 기본은 지켜야 기존 언론이 유튜브나 가짜뉴스들보다 낫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과연 언론이 그러한 자부심을 가져도 될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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