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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책 앞표지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책 앞표지
ⓒ 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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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이라는 에세이에서 했던 말이다. 울프가 이 책을 내놓은 이후, '자기만의 방'은 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여성의 권익을 수호하는 은유로 사용돼 왔다. 그런데 여기에 담긴 의미는 단지 여성의 삶에만 한정되는 것일까?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케임브리지대학의 여성 교육 기관인 거턴 대학과 뉴넘대학에서 '여성과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던 원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를 수정·보완해 1929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전체 구성은 불특정화자인 '나'가 등장해 강연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당시 영국 사회를 살펴보면 1870년대까지도 여성이 소유한 재산은 남편에게 귀속된 것으로 보았고, 1928년에야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주어지면서 여성의 재산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사회 정치적으로 여성의 입지가 새롭게 다져지던 시기,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통해 여성이 억압받았던 역사를 규명하고, 여성에게 일과 소득의 필요성을 알림과 동시에 그 권리를 주장했다.

<자기만의 방>에서 화자는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책 한 권의 분량을 이 생각에 이르게 된 과정과 근거를 펼쳐 보이는 데 할애한다.

화자는 우선 학문과 종교적 공간, 그리고 부의 세습에서 배제됐던 여성의 현실을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하고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당했던 여성의 처지를 드러낸다. 억압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겐 자신의 재능을 펼칠 자유가 없었고, 18세기가 돼서야 중산층 여성에서 글을 쓰는 존재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문헌 고찰과 상상력을 발휘해 방증한다.

'여성과 소설'을 주제로 한 강연에는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공간과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넘어, 창의적인 작가가 지녀야 할 정체성에 대한 고민까지 담겨있다. 여성 작가 또는 작가 지망생에게 기존의 남성적 글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여성적'이라는 이분법에서 탈피해 '양성적'인 시선으로 확장되기를 제안한다.

창조적인 정신은 '남성적이기만 한 마음'도 '여성적이기만 한 마음'도 아닌, 한 인간 내부에 있는 남성적인 부분과 여성적인 부분이 소통하고 '공명하며 스며드는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화자는 마지막까지,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다며 여성의 글쓰기에 있어 경제력의 토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강조한다. 실재하는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는 경제력을 통해 획득 가능하다. 그러므로 삶의 본질을 찾아 활기로 가득한 삶,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한 삶을 영위하는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경제력이다.

이 글의 진정한 의미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범함이 아닐까 싶다. 돈이 명백한 힘이 되는 사회지만, 돈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시되거나 천박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시선은 여성에게 더 강압적이었다. 여성이 돈이나 권력에 대해 욕망을 갖는 것을 억압하던 사회에서 공간과 부를 획득해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라고 강조하는 화자는 현재의 시선에서도 급진적으로 보인다.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당부하는 뜻은 실재를 마주하는 활기찬 삶을, 활기차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든 없든 말이지요." 
p.179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박혜원 옮기, 더스토리 출판사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집필한 지 100년이 흘렀다. 그녀가 책 속에서 예견했던 것처럼 많은 가치들이 바뀌었고 여성이 남성에게 예속된 위치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해 경제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의문은 남는다. 이 사회에서 "방해받지 않고 눈부시게 불타오르는 마음"을 지닌 여성이 얼마나 될까. 여성은 '보호받는 존재'에서 완전히 벗어났을까.

경제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가사와 육아의 부담은 상당 부분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가사와 아이의 끝없는 요구는 자유롭게 불타오르고픈 여성의 마음을 수시로 방해한다. 온전히 자유로운 존재로 사회 활동을 누리고 싶지만, 여성 혐오와 극단적 성범죄가 범람하는 탓에 오히려 보호가 필요한 여건에 처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지요"라는 책 속 화자의 말은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당위성을 가진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 권력이며, 그 권력은 물질적인 것(경제력)에서 비롯된다. 가사와 육아의 부담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의 현실은 여전히 경제력 담보에 한계로 작용한다.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스트로 실천적 활동을 하지 않았던 버지니아 울프에게 '페미니스트 작가'로 명명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다. 가부장적 시선이 팽배하던 시대에 여성에게 경제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작가로서 여성과 남성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양성적 시선의 정체성을 제안한 점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선도적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당시에도 급진적으로 평가되었을 견해이지만 100년이나 지난 지금도 이 주장은 유효성을 지닌다.

이 책을 통해 울프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강조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p.180)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실재의 본질을 사유하며 매 순간 생의 활기를 감지하는 삶이 울프 식의 자기 자신이 되어 누리는 삶일 것이다.

그녀의 다른 작품인 <올랜도>의 '올랜도', <댈러웨이 부인>의 '클라리사', <등대로>의 '릴리 브리스코'가 붙잡으려 했던 삶과 존재의 의미 또한 그것과 연결돼 있다. 그렇기에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소득'은 단지 글을 쓰는 여성에게 해당하는 조건이 아니다.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삶을 영위하고픈 여성과 남성,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자기만의 방'은 물질적인 것 이상의,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들이는 모든 노력에 대한 은유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으로, 혹은 남성으로, 규정된 역할에 가두어진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은유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화두로 남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초판본 자기만의 방 (양장) - 192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버지니아 울프 (지은이), 박혜원 (옮긴이), 더스토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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