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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부부 약 200만 명의 삶을 10년 동안 추적한 결과, 출퇴근 시간이 80분 이상 되는 부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에 비해 이혼율이 40%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가정과 서로에게 써야 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출퇴근으로 녹초가 되면, 서로에게 쓸 에너지 또한 줄어들어 헤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출퇴근 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길다는 점이다. 노동시간도 OECD 최상위권이니, 사실상 부부나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보낼 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생의 질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미치겠지만, (OECD에 한정한다면) 사랑하는 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건 꽤나 의미심장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사실, 사랑의 문제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고, 상대방을 탓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사랑할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경쟁이 극심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스펙을 쌓으며 입시와 취업을 준비해야하는 상황 또한 '시간 부족'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건, 자투리 같은 시간에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정도가 전부인 것이다. 

이런 '시간 부족 사회'는 사람에게서 사랑할 능력도 점점 앗아가게 되는 것 같다. 집에 돌아오더라도, 이미 녹초가 되어 대화할 기력도 없고, 스마튼폰만 들여다보다 시간이 다 지나가버린다. 사랑은 남는 시간에 대충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확고한 의지, 명징한 의식, 충만한 마음으로 애써서 해야만 하는 것인데, 사랑 자체에 쓸 수 있는 마음이나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도 줄어들고, 서로가 함께 의지를 불태우며 하는 일들도 사라지며, 자연스레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개개인만의 탓이 아닌데도, 각 개인들은 서로만을 비난하면서 관계의 파탄으로 접어들 여지만 커져 나간다. 그렇게 보면, 우리 사회는 사랑을 중심에 두고 살아갈 여지 자체를 차단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화두가 되고 있는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은 놀고 먹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습성을 반영한 말이 아니라, 사실은 온전한 에너지로 인간답게 사랑하며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라 봐야할 것이다. 많은 사회 문제들이 바로 이 '여력 없음'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 또한 자명해 보인다. 저출생, 혐오와 증오, 극단적인 자살률 등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풍요롭고 온전한 삶을 누리고 있기 보다는, 삶 자체에 짓눌린 곳에서 터져나오는 비명들로 점철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들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사랑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시대가 아닐까 싶다. 곁에 있는 사람을, 가족을, 나아가 삶을 온전히 사랑할 권리가 사실은 모두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사랑할 권리는 사회 전체를 지탱하는 근간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사회가 파국에 치달을 것은 너무 당연한 귀결이다. 사랑할 수 없는 사회가 이어질수록, 이 사회의 데드라인도 점점 다가온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정지우 문화평론가(jiwoo9217@gmail.com). 이 글은 정지우 작가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writerjiwoo)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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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겸 변호사.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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