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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15일은 76주년 광복절이다. 청와대는 광복절을 맞아 1920년 일제와의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봉환될 것이라 밝혔다. 친정부 여론과 반정부 여론이 극심히 갈리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이번 일은 이역만리 타지에 있던 독립운동가를 모셔온 잘한 일이라는 데에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는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을 반대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소홀히 대우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굳이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에까지 모셔올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만약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제대로 된 묘지도, 관리할 이도 없이 방치되어 있다면 나 역시 유해봉환에 적극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의 경우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카자흐스탄 교민들, 소위 고려인이라 불리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인 사회는 장군이 묻힌 크즐오르다 지역 공산당에 분묘 수리를 지원해달라고 요구하고 크즐오르다 박물관에 장군의 초상화를 다른 혁명가들과 함께 전시해주고 그의 일대기를 러시아어로 번역해 교육할 것 역시 요구했다. 흐루쇼프 집권 이후 바뀐 민족정책에 힘입어 요구들은 모두 승인되었다. 장군 사후 15년이 지난 1958년의 일이다.

반면 한국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80년대였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가 창설된 건 2005년이다. 고려인 사회가 그의 묘소를 정비하고 새로운 묘비를 세우기 위해 성금을 모으고자 창설한 분묘수리위원회는 1951년에 창설되었다. 이렇듯 고려인 사회는 한국보다 수십 년 먼저 장군을 성심성의껏 모셔왔다.

크즐오르다에는 아직도 어린 시절 장군에게 달리기 대회 우승 선물로 학용품을 받았다는 김 아파나시 할아버지 등 장군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노인들이 있다. 그들의 후손들은 장군 얘기를 듣고 자라며 고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워나갔고 직접 묘소를 정비하고 참배해왔다. 과연 한국은 단지 그가 타지에 묻힌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만으로 유해를 가져올 자격이 있는 걸까.

왜 카자흐스탄 교민들은 유해봉환 반대했을까

여러 기사들은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이 여태 안 되어온 이유로 북한과 카자흐스탄 교민들의 반대를 꼽고 있다. 북한이야 홍 장군의 고향이 평양이니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라 쉬이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왜 카자흐스탄 교민들은 반대한 것일까. 그들에게 있어서 장군은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1937년, 고려인들은 일본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적성민족'으로 분류되었다. 최정우, 오하묵 등 고려인 사회의 지도자들도 대거 숙청당했다. 그러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소련의 민족 정책에 신음하던 비러시아계 민족들은 침략한 독일군을 오히려 해방군으로 맞이했다. 당황한 소련 당국은 민족정책의 변화를 시도했다. '적성민족'으로 낙인찍힌 고려인 사회에 있어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고려인 사회는 일흔이 넘는 노장군 홍범도를 그들의 상징적 인물로 내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레닌으로부터 직접 권총을 하사 받을 정도로 공적을 인정받았고(아직도 하사 받은 권총집이 그의 외손녀에게 보관돼있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노구를 이끌고 전장으로 가겠다 나선 인물이었다. 그렇게 고려인 사회는 장군을 필두로 하여 실추된 민족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비록 일제와의 불화로 인한 전선 확대를 기피한 소련 당국의 입장으로 인해 그의 항일 투쟁 이력보다 계급투쟁에 나선 빨치산 영웅이자 훌륭한 공산당원이라는 점이 부각되어 장군은 '이상적 소비에트 시민'으로 칭송되었다. 이후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하자 그보다는 '전설적 항일투사'로서의 모습이 강조되었다.

이처럼 고려인 사회는 홍범도 장군을 통해 '모범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도자들이 숙청되고 '적성민족'으로 낙인찍힌 절망적 상황에서 장군은 한줄기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스탈린 사후에는 점차 옅어지는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신적 구심점으로서 추모 사업과 문학 활동의 대상이 되었다. 스탈린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고려인 사회의 역사에서 장군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여러모로 아쉬움 남는 유해봉환

이제야 카자흐스탄 교민들이 왜 유해봉환을 반대하는지 감이 좀 오시는가. 그들에게 있어 장군은 위대한 독립운동가를 넘어 그들의 역사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유해봉환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가 아쉽다. 정부의 진심은 이해가 가지만 꼭 이런 방식으로 장군을 기렸어야만 했을까.

가령 이런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우리 정부도 고려인 사회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장군의 묘소를 그들이 자체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되, 재정을 지원한다. 또한 장군을 매개로 하여 양국의 한민족이 지속적인 교류를 나누며 같은 뿌리임을 상기한다. 매 기일 때마다 고려인 사회 학생에게 홍범도장학금을 수여한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장군과 고려인 사회의 관계를 감안했을 때 무작정 유해봉환을 추진하는 것보다야 좀 더 나은 방식이 아닐까.

1941년, 장군이 살아계실 적에 고려인들은 연극 <홍범도>를 만들어 장군께 보여드렸다. 장군은 너무 추켜올렸다며 겸손을 피웠다. 우리는 장군의 말년을 너무 쓸쓸하고 불행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연극을 만들어 헌사하는 동포들 곁에서 과연 그는 불행하기만 했을까. 단언하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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