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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국가대표 선수는 단순히 나라만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성별도 대표하고 있다. 경기장 안에서 상대와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고, 경기장 바깥에서 오는 차별과 멸시의 시선에도 맞서야 한다는 뜻이다.

"스포츠는 남자들만 하는 거야. 여자들은 운동장에 있으면 안 돼."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여자가 두려운가 봐요.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말로 하면 사람들이 잊어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화살로 답하면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 中


안산에게 두 번 패한 세계랭킹 1위, 디피카 쿠마리 이야기
 
영화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포스터
 영화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포스터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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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양궁 국가대표 디피카 쿠마리는 도쿄 올림픽이 개막하던 2021년 7월 당시 '세계랭킹 1위'였다. 아직 인도는 올림픽에서 여성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적이 없기 때문에 13억 인도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7월 24일,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에서 열린 양궁 혼성 단체전 8강에서 대한민국의 안산과 김제덕 팀에 패하며 고배를 마셨다. 일주일 뒤 7월 31일, 여자 개인전 8강에서 다시 안산을 만났고 결과는 6-0, 안산의 완승이었다.

올림픽 메달이 없을 뿐, 이 선수는 세계선수권 2회 준우승, 2021년 월드컵 여자 개인전에서 우승한 베테랑이다. 화려한 지금의 경력과 달리 쿠마리는 "돈 때문에 싸움 그칠 날 없는 집을 떠나 교육받고 싶어서 양궁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쿠마리의 고향 자르칸드 주는 인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지역이다. 학비가 지원되는 양궁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130킬로미터를 스쿠터로 달려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3개월만 시간을 주세요. 그래도 못하면 쫓아내시고요."

다큐멘터리 영화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는 살아남고 싶어서 활을 잡았던 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저는 자르칸드 주 라투 마을 출신이에요. 거기엔 여자애들이 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엄마는 딸을 밖으로 내돌렸다고 비난받을까 무서워하셨고요. 그 마을에 사는 여자 아이들은 기회가 없어요. 만약 떠나지 않았다면 저도 18살이나 19살에 결혼해버렸을 거예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한 18살의 쿠마리는 결혼식장이 아니라 경기장에 들어섰고 당당히 메달을 목에 걸었다. 언론은 쿠마리를 '인도의 희망, 미래, 여왕'으로 불렀다. 어려서는 가족의 기대를, 커서는 국가의 기대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반면 선수를 지탱해줄 환경과 지원은 너무나 열악했다.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스틸컷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스틸컷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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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금메달을 바라는 온 국민의 관심, 활시위를 당기는 어깨가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예선 탈락하며 쿠마리는 첫 올림픽을 빠르게 마감했다. 충격에 빠진 마음을 수습할 새도 없이 인터뷰 요청과 카메라에 시달려야 했다.

부족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한 책임은 선수에게 돌아왔다. 그는 사람들을 피해 숨었고, 잠시 활을 내려놓기도 했다. 우울증과 어깨 부상을 딛고 어렵게 기회를 잡은 2016년 리우 올림픽, 16강 진출에 그쳤다.

선수단은 인도에서 브라질까지 이코노미석에 쪼그려 앉아 비행했고, 공항 의자에 겨우 몸을 뉘이며 잠을 청했으니 컨디션이 좋을 리 만무했다. 반면 동행한 정부 관료에겐 비즈니스석이 제공됐다. 하지만 쿠마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말을 삼키지 않고 꾸준히 발언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도 대한민국 선수단처럼 '멘탈 코치'가 필요합니다."
"메달에 대한 압박 때문에 경기 기술력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요. 올림픽을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해요. 그 순간을 편하게 여기고, 즐기고 싶습니다."
"'레이디 퍼스트'라고 하잖아요. 교육이나 스포츠에서 여성이 성공하고 싶어할 때, 그런 중요한 순간에는 왜 '레이디 퍼스트'라고 안 하죠? 우리가 자유를 가지게 되면 남자보다 더 성공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일 거예요."


자기만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쿠마리는 인도의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를 얻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 발자취가 후배 여성들의 길을 만든다는 점도 안다. 그래서 경기장 안과 밖에서 포기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다.

아직 갈 길 먼 '성평등 올림픽'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스틸컷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스틸컷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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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선수단의 여성 선수 비율이 약 49%에 달해 '성평등 올림픽'이라 명명된 도쿄 올림픽, 반면 인도 선수단은 남성 71명과 여성 56명으로 구성되었다. 쿠마리는 더 많은 후배 여성들이 올림픽에 함께하길 바라고 있다.

세 번째 올림픽을 마치고 난 직후 쿠마리는 "오륜기가 주는 압박감이 컸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한편 어린 여성 선수들의 등장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매우 흥분되며 기분 좋은 일"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새로운 세대와의 경쟁이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며 기쁜 마음을 내비쳤다.  

인도의 많은 여자아이들이 그를 보고 선수의 꿈을 키운다. 2024년 파리 올림픽도 디피카 쿠마리가 국가대표로 출전할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실력이 일취월장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면, 분하기보다는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지 않을까?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 마지막 장면에서 쿠마리는 양궁학교 학생들을 만나 "이제 너희가 선배야"라며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큰 꿈과 야망을 갖고 성취하고 싶어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망설입니다. 제 이야기가 모든 여자에게 용기를 줬으면 좋겠어요. 성공하고 싶다면 싸워야 합니다. 스포츠는 제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 것. 포기하는 순간 지는 거니까요. 계속 싸운다면 자신감이 생겨서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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