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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폐', 매일 하나씩 버리기.

나는 지난 7월 한 달간 '1일1폐' 인증모임에 참가했다. 날짜와 시간이 찍히는 사진 앱을 이용한 사진과 간단한 단상을 매일 자정까지 단톡방에 올렸다. 벌칙은 세 번 연속으로 못 올리면 '편의점 커피 기프트콘 돌리기'.

요즘 카카오프로젝트나 네이버 밴드, 챌린저스 등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끼리 함께 인증하고 서로 독려하는 앱이 많다. 매일 1만보 걷기, 하루 물 6잔 마시기, 경제 기사 10개 찾아 읽기, 아침 6시에 기상하기 등등 관심 분야도 다양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 사는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많았지만, 쉽게 포기하곤 했기 때문에 지인의 권유에 얼른 신청했다.

십여 년 전, 미니멀 라이프의 고전이 된 도미니크 로로의 책 <심플하게 산다>가 유행이었을 때다. 물건이 거의 없는 텅 빈 방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나는 덩치 큰 물건부터 버리자 싶어 큰맘 먹고 애들 2층 침대를 버렸다. 그리고 두툼한 요를 깔아주었다.

아이들이 자고 일어나 요를 개면 그만큼 놀이 공간을 넓게 쓰고 정리 습관도 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착각이었다. 침대 생활을 하던 아이들은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불평을 했고 다시 침대를 사야 했다. 무리한 욕심이 앞섰던 나를 자책하며 '비우는 삶은 쉽지 않구나' 하고 바로 단념했다.

나이들수록 버려야지, '1일1폐'에 도전하다
 
정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공간이 아닌 물건별로 정리하기를 권한다. 정리의 대상은 공간이 아니라 물건이기 때문이다.
 정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공간이 아닌 물건별로 정리하기를 권한다. 정리의 대상은 공간이 아니라 물건이기 때문이다.
ⓒ 전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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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무레 요코의 <나이듦과 수납>을 읽고 "맞아, 나이들수록 버려야지!" 다시 굳은 결심을 했다. 욕실 수납장에서 5년 넘게 방치한 화장 붓 전용 세정액을 버렸다. 매일 SNS에 인증하겠다고 선언까지 했지만, 물건을 들었다 놨다 들어다 놨다 하며 일주일도 못가 흐지부지됐다. 인증모임은 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벌칙도 있으니 이번엔 잘 해보리라 기대했다.

첫 목표는 책상/책장 정리. 지난 몇 년간 구독하며 모았던 영화 잡지, 10년이 넘은 서류, 누구인지 기억도 안 나는 명함, 쓰지 않는 포인트 카드 등등을 버렸다. 서류를 정리하다 큰딸이 태어났을 때 들었던 어린이 보험 만기가 내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된 옷 주머니 속에서 돈을 발견한 기분이다.

남편이 담배 끊은 지 2년이 넘는데, 서랍 곳곳에 있던 라이터를 다 모으니 10개가 넘는다. 다 버리려니 '혹시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가 또 튀어나온다. 생일 초를 붙이거나 정전 같은 비상시에 말이다. 하지만 생일 케이크에는 성냥이 따라오고, 만약 정전된다면 촛불보다 전기 손전등을 찾겠지. 미련 없이 모아버렸다.

책은 스마트폰으로 바로바로 바코드를 찍어 온라인 서점 중고 책으로 팔았다. 밑줄이 많거나 팔 수 없는 책은 깨끗한 박스에 잘 담아서 분리수거함에 내놓았다. 몇 번의 이사에서도 살아남은 미술사 책을 버리는데, 책 사이에 30년 전 대학 수강 신청 종이가 나와 깜짝 놀랐다. 이 책은 교양수업 교재였나보다. 누런 종이는 거의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클릭 한 번으로 수강 신청을 마치는 요즘 대학생에겐 구석기 유물처럼 보일 테다.

매일 단톡방에는 26명이 버린 물건들이 올라왔다. 다른 사람이 정리한 품목을 보면 나도 방치해 두었던 '물건'이 생각나 도움이 됐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정희숙/가나출판사)에서도 정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공간이 아닌 물건별로 정리하기를 권한다. 정리의 대상은 공간이 아니라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안방 정리'가 아니라 '옷 정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바구니와 에코백을 정리한 인증을 보고, 나도 창고 한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에코백을 정리했다. 사은품, 도서 굿즈 등으로 받은 에코백이 너무 많아 에코백이란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밀폐 용기' 인증을 보고는 주방 수납장 속 밀폐 용기를 모두 꺼내 뚜껑이 없거나 뚜껑만 남아 짝이 맞지 않는 것을 버렸다. 방마다 흩어져 있는 안약, 연고, 밴드 등등 약품을 모아 약장에 넣었다. 겸사겸사 유효기간이 지난 약까지 정리했다. 약장만 정리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인증모임에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정리 방법은 시간을 정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하루 10분'을 정해 시계 알람을 맞추고 그 시간만 집중해서 버릴 것을 찾는다. 계속하고 싶으면 또 10분 알람을 맞추고 정리한다. 부담 없고, 지치지 않고 성취감도 높일 수 있다.

냉동실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왔기 때문에 냉동실 정리할 때 이 방법을 사용했다. 알람을 맞추고 떡, 생선 등 냉동실의 오래된 식자재, 언젠가 쓰겠지 하고 두었던 배달음식에 딸려온 각종 소스를 버렸다. 얼마 전 자주 쓰는 접시가 없어졌다고 누가 깨뜨렸냐고 가족들을 취조했는데 치즈케이크가 고이 담겨 냉동실에 들어있을 줄이야!

들어오는 게 있으면 나가는 것도 있어야

<1일1폐> 한 달 인증모임이 끝나고, 이번 달부터는 나는 혼자서 <1일1폐>를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다. 한 달 동안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며 습관이 붙었고, 무엇보다 내 의지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한 달 프로젝트로 끝나지 않고 평생 습관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물건을 버릴 때 아직도 머뭇거리지만, 고민하는 시간은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렇게 버릴 물건을 들이지 않았으면 고민할 일도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물건을 살 때 더 숙고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주치의가 아침에 출근해 입원한 환자의 상태를 점검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아이오(I/O), 즉 인앤아웃이라 한다. 밤사이 들어간 약, 음식 등 들어간 수분과 혈액, 가래, 대소변 등 나온 수분의 양을 체크하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도 몸의 대사가 원활하기 위해서는 들어간 만큼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먹은 만큼 활동하지 않으면 초과 칼로리는 몸에 쌓여 비만을 초래한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들어오는 물건이 생기면 반드시 나가는 물건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 집 물건도 인앤아웃을 체크해야겠다. 우리 집을 가장 잘 아는 삶의 주치의는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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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중년의 둥지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50플러스 에세이 작가단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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