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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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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의 조부 최병규는 생전에 과거 자신의 만주시절 행적을 독립운동이 아니라 '동포들의 정착 돕기운동'이라고 밝혀왔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확인됐다. 이는 독립운동과 엄연히 구분되는 일이다.

또한 현재까지 확인이 가능한 '독립운동'이라 서술하는 자료는 사후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최병규의 만주독립운동 이력이 후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해방 이후 조부 최병규에 대한 언론보도는 1999년과 2008년 두 차례 등장한다. 그런데 각 시기 최병규의 만주 행적에 대한 보도 내용엔 큰 차이가 있다.

[1999년] 독립운동 아닌 '동포 돕기 운동' 또는 '한국인 지원사업'이라 서술
 
1999년 <강원일보>는 1938년 이후의 행적에 대해 “해림에서 한국인 지원사업에 가담하기도 했다”고 보도했고(강조는 필자), 비슷한 시기 <중앙일보>는 “(최병규는) 고향집에서 3년 동안 거주 제한조치를 받은 후 만주로 가 동포들의 정착 돕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 최병규의 명예졸업 소식을 전하고 있는 강원일보(1999) 1999년 <강원일보>는 1938년 이후의 행적에 대해 “해림에서 한국인 지원사업에 가담하기도 했다”고 보도했고(강조는 필자), 비슷한 시기 <중앙일보>는 “(최병규는) 고향집에서 3년 동안 거주 제한조치를 받은 후 만주로 가 동포들의 정착 돕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 최재형 후보 공보특보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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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확인 과정은 엉뚱하게 최재형 후보 측에서 조부의 독립운동 증거로 제시한 1999년의 <강원일보> 보도 기사(<춘천고 최초 항일운동 불지핀 최병규옹(1회) "73년만에 고교졸업장">, 1999. 2. 12)에서 시작되었다. 최재형 후보 측은 해당 기사를 1926년 춘천고보 시절 조부 최병규의 활동이 '항일운동'임을 입증하는 자료로 제시했지만, 논란이 되는 1938년 이후 만주에서의 행적에 대한 단서가 이 기사에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당 기사에서 1938년 이후 최병규의 행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은 "해림에서 한국인 지원사업에 가담하기도 했다"고 한 부분이다. 표현이 모호하지만, 비슷한 시기 <중앙일보>가 보도한 <항일운동 퇴학고교생 73년만에 졸업장 받아>(1999. 2. 13)라는 기사를 보면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중앙일보>는 만주 해림에서의 행적을 "고향집에서 3년 동안 거주 제한조치를 받은 후 만주로 가 동포들의 정착 돕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최병규가 만주로 가서 한 일을 '동포들의 정착 돕기 운동'이나 '한국인 지원사업'이라는 알듯 모를듯한 표현을 동원하여 포장한 점은 있지만, 두 기사 모두 분명한 것은 최병규가 자신의 활동을 독립운동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자는 앞서 보도한 두 기사에서 줄곧 "최병규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간 것이 아니라, 일제의 만주 식민 정책에 호응해 만주에 정착할 조선인으로 구성된 만주개척단을 지원하는 사업을 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1999년의 언론보도에 등장하는 '동포들의 정착돕기 운동', '한국인 지원사업'이라는 표현은 최 후보 측의 '독립운동'보다는 기자의 의혹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만주에서 최병규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있는가'라는 의혹 제기의 정당성은, 그가 편집위원장을 맡아 1984년에 발간한 <평강군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여기엔 최병규의 춘천고보 시절 맹휴를 주도하다 퇴학당한 이야기는 자세히 나오지만, 1938년 이후의 만주 행적에 대해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고 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면, 자신이 편집위원장을 맡아 제작한 <평강군지>에 맹휴 사건만 싣고 만주 독립운동 행적은 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사망 이후에 등장한 '만주 독립운동'

반면, 최병규가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 내용은 2008년 최병규의 사망을 알리는 <강원도민일보> 등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강원도민일보>에는 "고인은 만주로 건너가 조선거류민회장을 맡아 독립자금 확보와 전달 등의 역할을 담당하며 1945년 8월 조국이 해방되기까지 20여년동안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보도됐다. 

최재형 후보의 부친 최영섭 대령이 쓴 <바다를 품은 백두산> 역시 2021년 5월에 출간된 점을 고려하면, 최병규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주장은 모두 최병규 생전이 아닌 사후에 나온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선 "아버지(최병규)는 7년간 해림에서 살면서 해림가부가장과 조선거류민단장을 맡아 독립자금 확보와 전달 역할을 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돼 있다.

최병규의 만주 행적에 대한 내용이 생전과 사후를 경계로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는 만주 독립운동 주장이 최재형 후보의 조부 최병규가 아니라 부친 최영섭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최재형의 부친 최영섭은 본인 저서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서 “아버지는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최재형의 부친 최영섭은 본인 저서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서 “아버지는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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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의 87년 회고록 <사려와 조화> 공개해 논란 종결해야    

그동안 최재형 후보 측은 "조부의 독립운동 행적은 모두 사실"이라는 주장만 반복할 뿐, 근거를 내놓지는 않았다.

최 후보 측은 최병규가 1938년 이후 만주에서 어떤 독립운동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여론을 외면해왔다. 하지만 조부의 만주독립운동 주장이 2008년 이전에는 등장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마당에 최 후보가 그 사정을 직접 밝히지 않는다면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소모적 논란은 신속히 종식될 필요가 있다. 최영섭의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 따르면 최병규는 1987년에 <사려와 조화>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고 한다. 현재 이 회고록은 오래전 절판되어 일반인은 구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최병규가 이 회고록에 7년 간의 만주 행적을 남겼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최재형 후보나 그 가족은 당연히 조부의 회고록을 소장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재형 후보 입장에선 "조부의 독립운동 행적 사실은 모두 거짓없는 사실"이라는 해명을 입증할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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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검증] 최재형의 할아버지 '최병규'는 진짜 독립유공자일까? http://omn.kr/1uoci
[반론] 최재형 후보 측 "조부가 독립유공자라 한 적 없다" http://omn.kr/1ur1v
[재반론] '독립유공자' 조부는 착오? 최재형 후보님, 이 기사는 뭡니까 http://omn.kr/1ur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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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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