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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너도나도 심심한 계절이다. 부지런해지려고 마음을 잔뜩 먹다가도 폭염에 나가기가 겁이 나고, 집에만 있자니 답답하다. 에어컨을 끄자니 너무 덥고, 에어컨을 계속 켜고 있자니 컨디션이 엉망이다.

이런 심심함이나 무기력함을 겪어내는 일이 어른인 나에게도 힘든 일이니 아이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어지간히 심심함에 지친 두 아이들(초5, 중3)이 나에게 자꾸 실없는 소리를 해대는데 그래도 그렇지, 밥 먹는 식탁 앞에서, 무려 똥 이야기를, 가뜩이나 입맛도 없는데 마구마구 쏟아낼 건 뭐람.

말장난인데 진지해지는 밸런스 게임
 
어린아이들의 사고까지 지배하게 된 지금의 부동산 현실이, 점점 실현하기 어려워진 공간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가 조금은 서글퍼졌다.
 어린아이들의 사고까지 지배하게 된 지금의 부동산 현실이, 점점 실현하기 어려워진 공간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가 조금은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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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똥 맛 카레 먹을래, 아니면 카레맛 똥 먹을래?"
"갑자기 뭔 똥이야."
"아니 아니, 그러니까 뭐 먹을래?"
"당연히 똥 맛 카레지, 아닌가? 카레맛 똥? 아니다 그래도 카레지. 아니야. 나 아무것도 안 먹어, 우웩."


속이 진심으로 울렁거리는 걸로 봐서 진짜 상상이 됐었나 보다. 아이들의 이 실없는 소리를 들은 지 벌써 며칠째다. 자꾸 이거냐 저거냐 선택을 하라는데, 그 선택지가 너무나 터무니없어 실소가 나는 것이 이 놀이의 포인트인가 보다. 아이들은 이게 요즘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이라고 했다. 

"엄마, 월 200 받는 백수, 아니면 월 500 버는 직장인?"
"몰라!"

"엄마! 평생 여드름, 아니면 평생 탈모!"
"둘 다 싫어."

"엄마, 엄마 그러지 말고 이건 진짜 대답 좀 해봐, '한 달 양치 안 하기'가 좋아 '한 달 머리 안 감기'가 좋아?
"어우, 드럽게. 한 달 머리를 안 감는 게 낫지, 어떻게 양치질을 안 해!"


매번 은근히 선택하고 있는 내 자신이 놀라워 대충 대답한다고 하는데도 매번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끈기에 질릴 즈음, 신박한 질문이 하나 나왔다.

"엄마, 이건 어때? 지금 1억 받을래, 10년 뒤 10억 받을래?"
"음... 10년 뒤 10억!"

"그럼, 지금 10억이 있다면 차를 사겠어, 아니면 집을 사겠어?"
"어? 당연히 집을 사야겠지?"

"그치그치? 그런데 내 친구 중에 차 산다고 하는 애가 있어서 애들이 막 난리 났었어. 차 사면 안 된다고, 집 사야 된다고."
"당연하지~ 차 사면 안되지, 집을 사야지."


어느새 밸런스 게임에 빠져들어 간만에 의견 일치를 본 모녀가 집에 대한 의견을 침을 튀며 피력하다가 문득, 지금 10억이 생긴 것도 아닌데 너무 핏대를 올렸나 싶어 슬며시 말꼬리를 내렸다. 그러다가 어린아이들의 사고까지 지배하게 된 지금의 부동산 현실이, 점점 실현하기 어려워진 공간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가 조금은 서글퍼졌다.

'혼자 살면서 고양이 키우는 게' 꿈인 아이들인데
 
크면 독립해서 고양이를 키우고 사는 게 꿈인 아이들.
 크면 독립해서 고양이를 키우고 사는 게 꿈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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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이 그리는 미래는, 백이면 백 '커서 혼자 살면서 고양이(혹은 강아지) 키우는 것'이라는데, 우리 때와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 혼자 산다>처럼 혼자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티비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겠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독립은 곧 결혼이었기 때문에 나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특별한 소망 같은 것은 꿈꿔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혼자 사는 공간'에 대한 원초적 바람은 나이 불문 아니던가. 아이들뿐만 아니라 중년이 되어버린 나조차도 아련한 욕망에 가슴이 뛴다. 그러니 혼자 사는 공간으로의 '독립'을 꿈꾸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얼마 전 읽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서 작가는 공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이 언제든 방해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엄마의 독서, 사색, 휴식은 수시로 멈춰졌다."

무릎을 치고 줄을 치며 읽었지만 깨달음이 곧 공간을 내어주지는 않았다. '나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쯤 되겠지만 이쯤에서 나와 밸런스 게임을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결혼하고 100평 살래, 비혼으로 10평 살래?'라고 한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만약 나에게 '그래! 결심했어!'(예전 '이휘재의 인생극장' 버전으로)라고 외쳐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비혼의 10평을 선택할 것이다. 왜? 결혼해봐서 아니까. 아무리 100평의 집이 있어도, 나는 그 집의 관리자로 존재할 것임을 알기에. 그럴 바에야 10평 남짓의 아늑한 내 공간이 낫지 않을까.

내친김에 10평을 어떻게 아늑하게 꾸밀 것인가에 대한 기분 좋은 상상으로 넘어갈 즈음 내 귀에 아스라이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들려온다. 어머나 얘네들, 아직도 밸런스 게임 중이었네.

"엄마, 팔만대장경 다 읽을래, 아니면 대장 내시경 팔만 번 할래?"
"됐고,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서 숙제해."

"아니, 한 번만. 팔만대장경..."
"알았어 알았어, 나 팔만대장경 읽을래. 내시경 안 해. 됐지?"

"엄마 하나만 더 하나만."
"그럼 엄마도 문제 하나 낼게."

"좋아!!"
"너 지금부터 3시간 동안 수학 숙제할래, 아니면 3시간 동안 영어 숙제할래?

"에이 뭐야, 엄만 너무 재미없어."


마지못해 일어나는 중3 딸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는 오늘도 말한다.

"혼자 산다며. 웬만큼 벌어서는 혼자 못 살아. 고양이 키우면서 혼자 사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자, 딸아!"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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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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