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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우리 신혼집에 놀러 온 지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너희 집에는 없는 게 없네?"

그렇다. 우리 집에는 정말 없는 게 없었다. 티브이나 냉장고 같은 필수 가전들을 제외하고도 선물받거나 당근 마켓으로 저렴하게 구입한 가전제품들이 한가득이었다. 토스트기나 커피머신 같은,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우리 부부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적어도 그것들을 우리 집에 들일 때는 이 물건들이 피폐한 내 일상을 조금이나마 빛내 줄 것이라 굳게 믿었을 것이다.

가전만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꼭 무언가를 사곤 했다. 회사에서 저지른 업무 실수로 인해 벌어진 상황을 겨우 무마하고서는 진이 모두 빠진 채로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가방을 방 한구석으로 던져버리고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그리고 조건반사처럼 휴대폰을 집어 들어 유튜브를 틀었다. 그날따라 유튜브 영상에 나오는 사람이 손목에 차고 있는 애플 워치가 유독 눈에 띄었다.   

가냘픈 왼쪽 손목에 애플 워치를 찬 영상의 주인공은 나와 비슷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손수 내린 드립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여유롭게 출근 준비를 하고, 퇴근 이후 싱싱한 식재료들로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고, 필라테스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상적인 일상을 사는 사람이었다. 내적 중심이 단단하고 자신만의 루틴을 찾아 하루하루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
 
반짝반짝 빛나는 애플 워치를 가지게 되었다는 기쁨은 헛된 위안일 뿐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애플 워치를 가지게 되었다는 기쁨은 헛된 위안일 뿐이었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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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나는 더없이 지쳐있었다. 한 달에 5-6일은 몸이 아팠고, 두통과 생리통, 요통은 번갈아가며 나를 괴롭혔다. 회사 생활은 최악이었다. 새로운 부서로 이동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도 새롭고 낯선 일들이 코앞에 떨어졌고, 나는 늘 버벅거렸다. 사람을 만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평범한 일들도 그즈음의 나에게는 몹시 버거운 것이었다.

매일 밤 잠이 들기 전, 다음 날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속절없이 아침은 찾아왔고,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스스로가 우스우면서도 한심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비난이 끝도 없이 치밀었다. 

영상 속의 그를 닮고 싶었다. 또 이렇게 하루를 망쳐버렸다는 자괴감 없이 편안히 잠들고 싶었고, 아침과 함께 새롭게 다가오는 삶을 긍정과 희망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의 변화와 성장을 열망하면서도 깊게 고민하거나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귀찮았다.

그래서 가장 어리석고도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애플 워치를 사는 것이었다. 애플 워치와 함께라면 그처럼 평화롭고 안온한 일상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애플 워치는 속수무책으로 떠밀려오는 오늘과 내일, 이 지긋지긋한 반복을 조금 더 생산적이고 활기찬 일상으로 바꿔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애플 워치를 손목에 찬 나는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즈음의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사들이며 인위적으로 새로움을 갈구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수많은 물건들을 사들였다. 그러나 많고도 새로운 물건들은 그것이 내 소유가 된 기점부터 하찮고 시시한 것이 되었다.

갈증은 그칠 줄을 몰랐다. 끝도 없이 쌓아 올린 물건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새로운 물건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었다. 흘러넘치는 풍요 속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의 갈증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이미 소유하게 된 모든 것들은 색이 하얗게 바래버린 고물처럼 느껴졌다.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가졌으면서도 기어이 새로운 색을 찾아 나서는 인간. 나는 바로 그런 인간이었다.  

큰 망설임 없이 구입한 애플 워치는 바로 다음날 배송되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정확히 이틀 뒤 나는 애플 워치를 구입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즉, 애플 워치는 나를 절망의 나락에서 건져 올리지 못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애플 워치를 가지게 되었다는 기쁨은 헛된 위안일 뿐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시커먼 우울이라는 우물에서 악착같이 기어 올라와, 수면 위로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은 결국 나였다.

이제 더는 슬프거나 고통스러울 때 물건을 구입하지 않으려 한다. 슬픔이 오면 오는 대로, 고통이 오면 오는 대로, 감정들을 정면으로 맞닥뜨릴 생각이다. 현실 도피를 위한 감정적인 소비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손쉽게 사들일 수 있는 물건들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해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물건은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 나는 이제 그런 얕은 위로가 필요하지 않다. 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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