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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 15일(양력 2021년 8월 22일)은 연중 해수면의 조차가 가장 큰 '백중사리'다. 조석 간만의 차가 커서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이 가장 잘 보이기도 한다. 이날은 제주여성리더십포럼이 제주도민 5374명의 서명을 받아 '이어도 문화의 날'로 제정을 촉구한 그날이기도 하다. 이어도의 날은 끝내 제정되지 않았지만, 매년 제주도에선 이어도의 문화와 역사를 계승하기 위한 소규모 행사가 열린다.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km에 있는 수중 암초이자, 제주도 사람의 전설 속 섬이다. 이어도 인근 해역은 과거 옥돔이 풍부한 제주 바당의 끝자락 '걸팥가'로 불리기도 한다. 조선의 선비 최부(崔溥)는 중국으로 가는 길에 이어도 주변에 파랑(波浪)이 이른다고 하여, 그곳을 백해(白海)라고 했다. 또한, 이어도는 제주도에서 집중적으로 전승되는 맷돌 노래의 후렴구로 오랫동안 제주 여성들 사이에서 불려왔다.

이어도는 국제법적 상 섬은 아니다. 이어도는 정상부가 해수면 아래 4.6m에 있는 해저 지형으로, 파고가 10m 이상이어야 겨우 모습을 보인다고 전해진다. 2003년, 우리나라는 그곳에 파일(pile) 즉 말뚝을 박아서 종합해양과학기지를 설치했다. 이어도는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있으므로 종합해양과학기지 역시 국제법적으로 합법적 인공 구조물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아가 이어도 해역이 자국의 관할 아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배경에서 제주도에선 민관이 협력해 이어도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이처럼 이어도는 제주도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관광지로서 날로 번성하는 제주도와 달리 이어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제주학(濟州學) 박사인 석주명 선생을 '나비 박사'로만 조명하는 것과 같이 근시적이다. 그가 2년 남짓 제주도에 머물며, 제주도를 연구한 결과는 훗날 저작으로 입증할 수 있다. 특히 생물학자로서 자연·인문·사회 분야를 아우르며 제주도에 관한 통찰력을 발휘한 업적은 가히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오늘날 제주도를 삼다도(三多島)·삼무도(三無島)라 부르게 된 것도 석주명 선생 때문이다. 그의 유고작 <제주도수필>(1968년)에서 그러한 내용이 있다. 이 책은 그가 제주도에 머무르며, 관찰한 제주도를 총론, 자연, 인문 등 세 개의 장으로 나눠 기록하고 있다. 제주학을 연구하는 후학들은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제주대 윤용택 교수는 이 책을 일반 수필집이 아닌 작은 '제주백과사전'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제주도수필>의 '인문편'에는 제주인의 일상생활이 기록돼 있다. '삼춘', '사름잇수까', '누워서 지름떡 먹기' 등 친숙한 제주어 표현에서부터 '감옷', '돌담', '허벅' 등 제주인의 삶에서 뗄 수 없는 것들까지 석주명 선생이 모두 글에 담았다. 그리고 거기서 이어도에 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석주명 선생은 이어도가 '제주 민요 ― 맷돌 노래, 뱃노래, 농업노동요 ―에서 별 뜻 없이 후렴구로 사용된다'라며, '제주도와 중국의 중간에 있는 가상의 섬으로, 과거 제주도에서 중국을 오고 갈 때 이 섬에 도착하면 안심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보다 이어도를 더 명료하게 설명한 글은 아직 없었다.

석주명 선생은 외지인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제주도를 사랑했다. 이어도는 제주도를 넘어, 바다와 더불어 사는 해륙국가로써 우리 역사와 문화 속의 중요한 유산이다. 또한, 이어도는 국내 최초 최첨단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세워진 곳으로, 우리 해양과학의 위상을 상징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석주명 선생도 말한 이어도를 언젠가 온 국민이 알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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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개인홈페이지: leejun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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