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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K-DRAMA, K-MOVIE가 열풍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 자부심에 우리만 아는 자조적인 마음을 담아 온갖 한국적인 것 앞에 K를 붙여 새로운 단어를 탄생시키기도 하는데, 나는 내 게으름에도 K를 붙여주고 싶다. 그냥 게으름뱅이보다는 'K-게으름뱅이'라고 부르는 편이 본질에 가깝다.

내 게으름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내 집엔 쇼파가 없다. 될 수 있으면 침대에 누워서 지낸다. 침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큰 맘먹고 모션 베드를 구입했다. 어느 날은 퇴근길에 마주친 회사 선배가 "난 아직 애가 어려서 그런건데, 넌 대체 뭐 때문에 집에 매일 급하게 가냐?"고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얼렁뚱땅 대답하고, 그날도 얼른 집에 가서 누웠다.

그런 내가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려고 온라인 강의를 신청했다. 올해 3월에 신청해놓고 수업 종료가 임박한 7월이 되어서야 제대로 강의를 들었다. 마감이 임박했음에도 일하고 돌아와서 어찌나 듣기가 싫던지, 게으름을 피우며 쓸데없이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는 날이 많았다. 정작 해야 할 공부는 안 하면서 잠은 제대로 못 자고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공부의 신들은 목표를 제대로 세우면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경험상 목표랑 의지는 헐거운 사이다. 뭐가 됐든 해보면 생각보다 쉽지도 않고, 마냥 좋기만 할 수도 없다는 현실이 이 둘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나 같은 'K-게으름뱅이'는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라고 배웠으므로, 게으름뱅이 주제에 게으름을 극복할 방법을 다시 찾아 나선다.

먼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본다.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봉사활동을 다니고 싶다. 귀여운 어린이들과 어울리고 싶다. 내가 만약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선생님 말고도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평범한 어른들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조금 살아보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내가 계속 힘차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 주었다. 사랑하는 것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것 중 하나인 독서를 전해주고 싶었다. 어른들에게는 꽤나 영업을 잘 하는데(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다), 어린이들에게도 잘 먹힐지 모르겠어서 일단 이론을 배우고자 했다.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경험하는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이룬다는 말을 믿는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봤을 때 부모님, 조부모님,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척들과 학교 선생님 외에는 경험할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 우리 집은 시골인 데다 마을에서 외떨어져 있어서 더 그랬다.

난 대신 책과 TV로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흥미롭고, 그들이 서로 만나 사건을 겪으면서 생겨나는 이야기가 즐거웠다. 내가 만날 어린이들이 나를 경험하길 바라고, 책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자기가 만들어갈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이 글은 독서지도사 강의 종료일 이틀 전인 7월 30일쯤 쓰기 시작했다. 강의도 더 들어야 했고 총 네 개의 과제 중에 마지막 과제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막 에세이반 글쓰기 숙제가 하고 싶어졌다. "나는 대체 왜 이럴까?" 하는 자아비판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 글을 마무리 지었던 때는 8월 7일이고, 독서지도사 양성과정은 무사히 수료했다. 나 자신을 게으름뱅이라고 나무랐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문제없이 끝나서 자아비판의 내용은 아무도 모르게 삭제했다. 실제로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한 시간보다는 하기 싫어서 마음고생을 한 시간이 더 많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해맑아졌다는 점이 우습다.

"넌 그냥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도 사람 구실 하는 거야. 제발 회사만 제대로 다녀."

엄마는 애쓰는 나를 안타까워한다. 'K-게으름뱅이'는 평범한 게으름뱅이이기를 거부하고 게으름과 격렬하게 싸우면서 사는 게으름뱅이의 운명을 가졌다. 엄마에게 고생하는 모습 보여주지 않고 따로 나와 살아서 다행이다.

올 11월엔 독서지도사 자격시험을 봐야 하고,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나서, 확진자가 줄어드는 날이 오면 봉사활동도 구해야 한다. 이렇게 글로 써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인터넷에도 올리면 지워지지 않는 과거가 되어 내 꿈을 꼭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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