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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고헌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기 추모행사에서 유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10일, 고헌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기 추모행사에서 유족들이 참배하고 있다.
ⓒ 경주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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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내가 아느냐!"

순국 100년 만에 고헌 박상진 의사의 묘에서 독립군가가 울려 퍼졌다.

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기 추모제가 10일 오전 11시부터 내남면 노곡리 의사의 묘에서 거행됐다.

1915년 일제강점기 최초로 전국단위 항일단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독립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 활동을 통해 독립의 희망을 쏘아 올린 고헌 박상진 의사는 1921년 8월 11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순국 100년 만에 처음으로 경주시가 공식 주최한 추모 행사는 헌화 헌작 분향 등 전통적 묘제와 지역 문화단체가 준비한 진혼무, 추모시, 독립군가 제창 등으로 진행됐다.

생애를 기록한 비석과 망주석, 상석만 있었던 박 의사의 묘는 경주시가 올해부터 추진 중인 진입로·묘역 정비 공사에 따라 호석과 상석이 새롭게 설치되고 잔디를 심어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주변 수목도 정비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주낙영 경주시장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경주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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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식에는 경주시와 울산시, 박 의사 유족 등이 참석했다.

주낙영 경주시장, 서호대 시의회 의장, 박대동 박상진 의사 추모사업 회장, 류복수 우리 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 회장, 이경림 대한광복회 울산지부장, 박원희 울산 북구 문화원장, 박 의사의 증손자 중훈, 기훈씨, 종친회 대표로 박경동씨, 김일윤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박재호 부산 남구을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주낙영 시장은 "박상진 의사의 출생지는 울산 송정이지만, 4살 때부터 외동읍 녹동리로 이주해 허위 선생 문하에 들어가기 전까지 경주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경주최씨 문중에 출입*하고 묘소가 내남에 있는 등 경주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면서 "그동안 박 의사를 기리고 추존하는 일에 소홀했지만, 앞으로는 이곳 묘소가 박 의사의 넋을 기리고 우국정신을 선양하고 배우는 성지로 잘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족을 대표한 박경동씨는 "경주시가 순국 100주년 만에 처음으로 추모제를 거행하고, 묘를 확장 정비하며 성역화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1884년 울산 송정동에서 출생해 네 살 때 경주 외동읍 녹동리 백부의 양자로 입적된 박상진 의사는 1902년 구한말 의병장 허위 문하에 들어갈 때까지 유소년기를 외동읍 녹동리에서 보내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양정의숙을 졸업하고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식민지 관료의 길을 버리고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총사령에 취임했다. 그해 12월 24일에는 지금의 효현교와 소티고개일원에서 일제 세금마차 습격을 주도했으며, 1916년 만주에서 무기를 들여오다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박 의사는 출소 후 친일부호 장승원, 박용하 등을 처단하며 무쟁투쟁노선을 견지하는 독립운동을 했으나 1918년 일경에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고, 1921년 8월 11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후 1963년 국권 회복과 항일투쟁에 앞장 선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한편 경주시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억 8천만 원을 들여 박상진 의사 묘 주변 정비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 박상진 의사의 부인 최영백 여사는 경주 최씨 최준의 사촌누이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주포커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박상진, #항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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