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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미
▲ 분수 양윤미
ⓒ 양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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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 하면 어린 시절 수학시간에 배운 분수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사과를 여섯 등분하면 6분의 1이 여섯 개, 포도알 열 개를 다섯 등분하면 10분의 2가 다섯 개 나오는 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나처럼 어린 나이에 분수를 알기 위해 꽤나 힘든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이해하기에도 어려운 분수를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기까지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가? 겨우 숫자를 셈할 수 있는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분수를 깨닫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동음이의어의 경우 의미가 다르면 한자 표기도 달라진다. 광장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분수(噴水)와 부처 앞에 향을 피우고 도를 닦는다는 의미의 분수(焚修)의 한자 표기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정수a를 0이 아닌 정수 b로 나눈 것을 뜻하는 수학적 표현인 분수는 나눌 분(分), 셈 수(數)라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 사람으로서 일정하게 이룰 수 있는 한계라는 의미의 "분수"와 한자 표기가 똑같다. 두 개의 분수는 분명 뜻이 다른데 본질적으로 같다는 말을 하고 있다.

분수를 아는 일은 셈하여 서로 나눠 가진 제 몫을 안다는 뜻이다. 분수를 모르고 까분다는 말은 자신의 그릇 이상으로 허세를 부린다는 뜻이며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는 말은 자신의 깜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주제넘은 일은 삼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의 분수를 아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분수를 깨닫는 순간 두 가지를 얻는다. 바로 자족과 겸손이다. 깜냥을 아는 것은 자족이고 허세를 버리는 것이 겸손이다.

"네 분수를 알라"는 표현은 가끔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속에서 욕심내지 말고 살라는 의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분수는 나의 개성이며,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다. 제 분수를 깨달은 사람들만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겸손함을 구비하고 자족함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을 하늘도 돕고 사람들도 돕는다.

분모가 같은 사람을 만나면 덧셈은 쉬워진다. 그러나 분모가 달라도 괜찮다. 그럴 때는 곱셈을 사용하면 된다. 3분의 1이 5분의 2를 만나 15분의 11이라는 더 큰 숫자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자신의 숫자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계산이 더 빨라진다.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과 더하고 곱하며 상생하는 삶을 분수에게서 배운다.
  
혼자서만 잘해서 되는 일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 혼자서만 잘해서 되는 일은 별로 없다. 배구, 핸드볼 경기에서 팀워크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가족, 학교, 직장, 다양한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다 같이 잘 해내야 잘 굴러간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비록 여자배구팀은 4강전에서 패배했으나 경기를 본 모든 사람들은 패배감이 아닌 벅차오르는 심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의 도약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물줄기를 내뿜는 분수가 끊임없이 도약한다. 포말을 흩뿌리며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분수에서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들의 도약을 본다. 때로는 편안하게, 가끔은 안간힘을 다해 도약하는 모습도 비친다. 실제로 하늘에까지 닿지 못하는 분수의 한계가 무슨 대수랴. 삶에서 이루는 크고 작은 성취가 값지다 하더라도,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값진 것은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도약했다는 사실, 그 자체인 것을. 솟아오르는 분수처럼, 도약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만큼 아름다운 분수는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claire1209)에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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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영어강사/ 번역도 가끔씩 - 문화예술인/ 시인 - 5년차 엄마사람 -디카시 공모전 수상 및 시부문 신인상, 우수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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