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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만큼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여름 음식도 드물 것이다. 푹 삶은 콩을 곱게 갈아낸 진한 콩국이 주는 그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열광하는 부류와, 소위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그 맹숭맹숭한 국물과 콩 특유의 비린내를 생각하면 몸서리칠 정도로 질색하는 쪽으로 나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로 말하자면 후자에 가까웠다.

사실 나는 콩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밥이나 떡 안에 들어가서 달큰하게 씹히는 원래의 맛을 즐기는 터였기에, 굳이 그것을 삶고 갈아서 국물로 낸 다음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무슨 괴상한 취미인가 싶었다. 게다가 콩국수는 여느 다른 면류보다 간이 약하기 때문에 나처럼 맵고 짜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입맛엔 영 맞지 않았다.

중학교 때였나, 부모님과 함께 시장통 허름한 국숫집에서 먹은 콩국수가 그간 내 인생의 마지막 콩국수였다. 그마저도 나를 가운데 끼고 양쪽에 앉은 엄마와 아빠는 연신 "맛있다!" 소리를 연발하시면서 후룩후룩 잘 드셨건만, 나는 열무김치를 얹어 그 김치맛으로 겨우 몇 젓가락을 끼적이다 만 것이 전부였다.
 
여름철 한정 메뉴, 부지런히 먹자!
▲ 콩국수 여름철 한정 메뉴, 부지런히 먹자!
ⓒ 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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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전 일이었다. 은행 업무를 보러 나왔다가 끼니때를 놓쳤다. 혼자 뭐 먹을 만한 것이 있나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마땅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고깃집이야 많이 눈에 띄었지만, 아무리 '혼밥'에 진심인 나라고 해도 혼자 고기를 구워 먹기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때 칼국수 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뜨거운 국물은 별로인데, 생각하면서도 하는 수 없이 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가게 입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문 앞에 붙은 종이에 큼직하게 적힌 글씨 때문이었다. '여름 한정 메뉴, 시원한 냉콩국수 있음.'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연이어지던 날이었다. 앞뒤 잴 것도 없이, 나도 모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여기 냉콩국수 한 그릇 주세요!"

잠시 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겉절이 한 접시와 소금과 설탕이 각각 담긴 양념통이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십오 분쯤 지나서, 국수 그릇이 앞에 놓였다. 노리끼리하면서도 살짝 초록빛이 감도는 걸쭉한 콩 국물을 보면서 문득, 내가 내 돈 주고 콩국수를 사 먹는 날이 다 오네 싶어 웃음이 픽 났다. 그리고 소금을 살짝 치고 휘휘 젓은 뒤 그 국물맛을 보는데, 세상에나! 맛있어도 너무 맛있는 것이 아닌가?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살짝 짭조름하면서도 콩의 달큼함은 그대로 살아있는 그 진한 콩 국물에 손으로 밀어낸 모양새가 틀림없는 쫄깃쫄깃한 칼국수 면발이 더해지자, 여태 이렇게 맛있는 걸 안 사 먹고 뭐 했나 싶어 후회가 들 지경이었다. 겉절이까지 곁들여 야무지게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보니 어느덧 더위도 가시고 뱃속까지 든든했다. 영양가 풍부한 음식으로 제대로 보양한 기분이랄까.

식당 문을 열고 나오면서, 문득 콩국수가 맛있어지면 어른이 된 거라던 누군가의 농담이 떠올랐다. 아마 맵지도 달지도 짜지도 않은, 콩국수의 그 담백하고 슴슴한 맛의 진가를 알아챘다면, 그럴듯한 '한방'이 없는 심심한 인생이라도 그 나름의 매력과 가치가 있다는 진리를 깨우칠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입안에는 한참이나 콩국수의 그 고소한 맛이 남아 있었다. 날은 덥고, 되는 일은 없고, 짜증이 늘던 요즘이다. 이럴 때일수록 조금 더 침착하게 또 너그럽게 나 자신을 다독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대체 왜 나만 이런 것인지, 왜 나만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인지, 스스로를 들볶고 꼬치꼬치 따지는 대신 때론 두루뭉술하게 또 슴슴하게 넘어가서 이렇게 고소함만 남을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한 그릇의 콩국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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