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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다양한 뉴스를 보다가 '포경수술'과 관련된 기사에 '껍질이 일부 벗겨진 바나나 사진'이 올라온 것을 본 후 나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웠다.
 인터넷으로 다양한 뉴스를 보다가 "포경수술"과 관련된 기사에 "껍질이 일부 벗겨진 바나나 사진"이 올라온 것을 본 후 나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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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휴일, 인터넷 포털 검색으로 여러 가지 뉴스를 접하던 나는 문득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남자 아이의 '포경수술'에 대한 기사인데 관련 사진으로 '껍질이 조금 벗겨진 바나나' 가 올라와 있었다.
      
전지적 보건교사 시점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하고 각급 학교의 교직원 대상 성인지 감수성 강사 활동을 했던 보건교사이다. 나는 그 바나나 사진을 보면 볼수록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성인지 감수성이 거의 없다시피한 과거에는 대수롭지 않았을 일일수도 있다.

나는 성교육이나 성인지 감수성 강의를 할 때,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실제 사례를 많이 제시한다. 특히 여성을 음식에 비유하거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음담패설, 미디어 속의 성문제 등 실제 사례를 많이 활용한다.

과거 성인지 감수성이 매우 희박했던 시절에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던 일들이기도 하였고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를 바탕으로 음란물에 드러나는 왜곡된 성(性)의식과 남성 중심의 지배 구조 즉,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성적 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에 대하여 경종을 울린다.

학생들에게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성인지 감수성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이라고 본다. 따라서, 위에 실제 사례들을 바라볼 때와 동등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남성의 성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바나나 사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개인적인 글이 아닌 많은 독자들이 보았을 기사이기에 더욱 부적절했다고 본다. 또 한편으로는 학창시절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의 아픈 흔적이라고도 생각되었다.

나는 기사 속 '바나나 사진'을 보면서 몇 년 전 교육부가 주관하는 성교육 전문가 연수에서 들었던 일화가 생각났다. 어느 학교에 학생 성교육을 하러 갔던 외부 강사가 콘돔 교육 시 수업 교구가 아닌, 바나나를 사용하여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교육적 관점에서 부적절한 부분도 있었지만 강사분이 특별한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 수업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크게 번진 이유'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 교육을 받은 학생 또는 그 수업을 전해들은 학부모의 불편한 감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그 바나나 사진을 보면서, 독자로서 매우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들의 댓글을 보니 역시 그랬다. '바나나 사진의 의도가 무엇인가' 또는 '여자이지만 너무 거북하다' 등의 견해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학교뿐 아니라 여러 기관에서 성비위에 대한 징계가 강화되고 신입직원부터 관리자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일정 시간 의무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거나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들은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상대방에 대한 외모 평가, 헤어스타일 등 변화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불편할 수 있지만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상대방에 대한 외모 평가, 헤어스타일 등 변화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불편할 수 있지만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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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신규 교사 시절과 비교했을 때, 과거에 비하여 현저히 성희롱 관련 발언과 행태가 줄어든 것으로 보여지고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겨난 것은 분명하다. 어느 날, 사람들과의 대화 도중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새는 누가 헤어 스타일을 바꾸고 출근해도, 뭐 어떻다는 칭찬이나 평가, 무슨 말을 못하겠어... 그게 성희롱이 될 수 있으니까..."

어떻게 들으면 '세상이 너무 팍팍해져서 힘들다'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나는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답게 시대적 흐름에 맞는 성인지 감수성을 잘 체득하고 계신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그 분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공감의 눈빛을 보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어른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내가 성교육에 열의를 보이는 이유도 이런 어른들이 많아져야하기 때문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어린 시절부터 높여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성교육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 어쩌면 내가 접한 여러 가지 실제 사례가 또하나의 계기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돼지'가 불러온 불미스러운 일

몇 년 전, 학교폭력 전담기구에서 접했던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 평소 학생들이 친한 친구끼리 서로의 별명을 부르는 일은 자주 목격된다. 나 역시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친한 친구끼리 이름보다는 별명 혹은 애칭을 부르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평소 친구 사이에서 장난스럽게 불렀던 '돼지'라는 별명이 발단이 되었다. 담당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사안이 되기 전에는 그 별명의 당사자인 학생은 표면적으로는 긴 시간동안 자신의 별명을 불렀던 친구들과 별탈없이 잘 지내왔다는 것이다.

전담기구에 참여한 당시 시점에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다. 그 별명을 들은 학생이 평소에도 기분이 나빴는데 그냥 참았던 것일까, 아니면 어떤 불미스러운 일을 계기로 더이상 친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바람에 자신의 별명이 기분 나쁘게 들렸던 것일까. 물론 그 진실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학생이 평소에도 화가 났을지, 갑작스럽게 그렇게 느낀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비하발언을 지속적으로 들었다고 주장하였다.
 친구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학생이 평소에도 화가 났을지, 갑작스럽게 그렇게 느낀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비하발언을 지속적으로 들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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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과적으로 신고를 한 학생은 평소 지속적으로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친구들의 발언이 불쾌하다는 주장을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평소 친하게 지내며 그 학생에게 별명을 불렀던 친구들은 그동안 아무 내색이 없다가 갑작스럽게 자신들을 신고한 친구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도 전해들었다.

이런 다양한 사례들을 종종 접했던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서도 뜻하지 않은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않으려면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컸다.

"여러분이 조심해야 할 내용이 있어요. 성희롱이 성과 관련하여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만 성립되는 건 아니에요. 상대방에게 외모에 대한 칭찬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듣는 상대방이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면 성희롱이 될 수도 있다는 거에요. 한마디로 어떤 말을 했을 때, 그것을 듣는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학생들 중 일부는 의아하다는 반응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대다수 그럴수 있을거라며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결국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려면 상대방의 관점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이 될 만한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익숙해지기 전에는 많이 불편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의외의 사진 하나가 나 뿐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면, 결론적으로 '그것은 별것이 아닌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한 시대, 이것은 충분히 논란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외침이 우리 사회의 '논란'으로만 그치지 않고 부디 깨달음과 변화의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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