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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재 도배를 하며 가장 기쁨을 느끼는 부분은 내가 하는 일이 아주 '밀도 있다'는 것이다. 도배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 아주 빽빽하고 알차다는 의미이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책상 앞에 앉아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일을 하는 것에 회의감을 많이 느끼고는 했다. (…)도배를 하면서는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모든 행동은 결국 도배를 완성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니 말이다. -<청년 도배사 이야기> 15쪽에서.
 
흔히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 아이가 월급이 제때 나오는 직장을 다니다 도배와 같은 일을 하겠다고 하면 선뜻 지지해 줄 수 있을까? 배윤슬 자전적 에세이 <청년 도배사 이야기>(궁리 펴냄)는 직업(관)에 대한 그동안의 생각을 돌아보게 한 책이다.

20대 청년이 도배에 뛰어든 이유 
 
 <청년 도배사 이야기> 책표지.
 <청년 도배사 이야기> 책표지.
ⓒ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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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회복지학을 전공, 노인복지관에 취직했다고 한다. 그가 맡은 일은 노인 일자리 관련 업무. 어르신들을 만나 응대하고 원하는 일자리를 소개하는 한편, 잘 적응하도록 지원하거나 현장 사람들과 업무를 조율하는 등의 일이 흥미롭고 적성에 잘 맞아 '재미있고 보람찼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퇴사하고 만다. 
 
그가 소개해 줄 수 있는 노인 일자리는 적었다. 그런데다 선별 기준도 이상했다. '당장 그 일자리가 아니면 소득이 없어지는 절박한 사정에 놓인 사람들은 탈락하는 반면 비교적 가볍게 용돈 벌이로 참여한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돌아가기 쉬운' 행정적인 허점과 한계, 불합리한 현실을 자주 맞닥뜨렸다. 그가 퇴사한 건 이로 인한 회의감과 직업에 대한 깊은 고민 때문이었다.
 
수많은 직업 중 하필 도배사를 선택했던 것은, 기존에 했던 사회복지 일처럼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삶에 깊이 관여해야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신의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이고, 정년퇴직이 없는 기술직 중 자신이 지속해서 견딜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20대 여성으로서 이른바 '노가다'를 하게 되니 많은 게 달라졌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온몸을 써서 하는 일인 데다가 주 6일, 게다가 퇴근 후 겨우 2시간 정도 여유 있을 정도로 빡빡하게 일할 때가 많다 보니 제대로 쉬지 못해 앓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덕분에 "몸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아프지 않은 것이 감사한 일임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옛날처럼 예쁜 옷을 입는다거나 화장이나 액세서리 등으로 치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런 삶을 살게 된 것도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다. 하지만 덕분에 "많은 옷과 화장품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치장하는 것보다도 그것을 위한 물건을 사며 소비하는 순간의 쾌락을 즐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합리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일의 특성상 평소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취미로 뭔가를 하는 등과 같은 것이 어려워졌다. 이처럼 시간과 관계를 포기하면서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시간을 더 확보했다면 좋았을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등 자신의 마음과 주변을 돌아본다거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도배를 시작한 이후 관계 속에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면 가장 큰 지지는 누군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 내가 가진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버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쉽지 않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네가 가진 능력이 아깝다, 아쉽다', '네가 그런 일을 왜 하니?'와 같은 말들은 마치 겉으로는 나를 생각해 주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내가 가진 스펙, 능력과 내 직업에 대한 일종의 '평가'가 반영되어 있다. 그런 말들 사이에서 아무런 평가 없이 '그렇구나, 너의 선택을 응원해'라고 꾸준하게 관심 가져 주는 것이 온전한 지지와 응원이라는 것을 느낀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롭게 시작하는 것과 지지를 받으며 일하는 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삶이고 내 선택이지만 주변의 응원과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청년 도배사 이야기> 167~171쪽에서.
 
 눈길이 자꾸 머물던 사진, 일부다.
 눈길이 자꾸 머물던 사진, 일부다.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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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도배일을 시작한 건 2019년 10월부터다. 도배사로 살아온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청년노동자로서의 일과 삶에 대한 고민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식당에서 먹을 권리조차 거부당하는 노동자들의 현실 ▲겉에 드러난 것이나 조건만으로 그 사람 자체를 평가하는 직업에 대한 편견 ▲화장실조차 갖춰지지 않은 불편한 노동 현장과 부당함 ▲여성 노동자로 극복해야만 하는 성차별 ▲도배 과정과 도배사의 일상 등. '매일 까마득한 벽 앞에서 부딪히고, 갈등하거나 극복하며' 버텨온 이야기들을 4장으로 들려준다.
 
진솔하게 와 닿는 글들이다. 아마도 '도전보다는 도피처로 선택한 도배일'이라는 고백처럼 솔직하게, 무엇보다 경험을 바탕으로 날것 그대로 들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오지랖과 측은지심을 넘어, 순수한 응원을 보내며 
 
책을 읽는 순간까지도 도배는 나이 든 사람의 일자리로, 그것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일자리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막연한 편견은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났을까? 만약 내 아이들이 책의 저자처럼 도배일, 혹은 흔히 말하는 막노동을 한다면 주변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이가 좋아하는 일 그 자체로 봐줄 수 있을까?

평소, 직업에 대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누군가를 하는 일로 판단한 적이 정말 없는가? 직업과, 내 안에 자리한 막연한 편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 책이다.
 
이 청년 도배사뿐일까? 생활 곳곳에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일궈가는 청년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내 아이들도 20대이다. 그래서일까?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막연히 측은해하곤 했던 것 같다.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을 왜 측은해만 했을까? 이제는 이와 같은 오지랖의 측은지심보다, 있는 그대로 말없이 바라봐주는 것으로 응원과 격려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크고 작은 목표들을 하나둘 세워가고 있다. 느린 듯 조금씩 만들어지는 내 길이지만, 멀리서 높이서 본다면 그래도 꽤 틀이 잡혀가고 있지 않을까? 수많은 도배사들 가운데 여전히 새내기인 내가 누구에게는 진흙 위의 조그만 돌, 박스종이처럼 작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도배를 시작하고 싶거나 혹은 현재 하는 일과 전혀 다른 일을 시도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이 분명 많을 텐데, 그 첫걸음에 조금이나마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청년 도배사 이야기> 82~83쪽에서.

청년 도배사 이야기 -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

배윤슬 (지은이), 궁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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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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