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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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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절박한 한마디가 토론장을 울렸다. 2017년 9월,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건립을 위한 주민토론회에서 발달 장애 아동 엄마가 외친 말이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등굣길이 누군가에겐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길. 학창시절 편안한 등굣길을 당연하게만 여긴 나는 영화 속 발달 장애 학생들의 학교 가는 길이 고된 여정으로 느껴졌다.

2020년 기준 전국 특수학교 재학생 46%의 아이들은 살고 있는 동네에 특수학교가 없다. 긴 시간을 들여 다른 동네로 학교를 가야 한다. 심지어 이사를 가거나 방을 얻어야 하는 일도 생긴다. 강서지역 발달 장애 아동 엄마들은 아이들의 등하교 문제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다.

발달 장애 아동을 돌보는 보호자는 의지와 상관없이 발달 장애 인권 운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현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장애인 교육권 보장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때 김정인 감독은 묵묵히 그들의 곁에 머물렀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은 특수학교 건립을 위한 엄마들의 투쟁부터 강서구 특수학교인 서진 학교가 생기기까지, 5년간의 과정을 화면에 담았다. 발달 장애 아동 교육은 그 동안 많은 문제제기가 됐지만 해결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당장 특수학교도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부모님이 아직도 계시는 구나"라고 생각한 김 감독은 장애 인권 운동에 앞장선 엄마들의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김정인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김정인 감독
ⓒ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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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린이날 개봉한 이 영화는 2달 만에 2만 명의 관객이 들었을 만큼 큰 관심을 받았다. 올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학교 가는 길> 일부를 삭제해달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어떻게 된 일일까? 지난 3일과 6일 두 번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김 감독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을 것

영화에 10초 정도 등장하는 한 주민이 배급사를 통해 본인이 나온 장면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이 오랜 시간 지역에서 나눔과 봉사 활동을 해 온 사람인데 이 영화로 인해 자신의 명예가 실추됐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주민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민은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많은 시민들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이 관심과 응원을 보내준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현재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은 취하됐다.

하지만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던 주민은 지난 2일 자신이 나온 10초 정도 되는 장면을 삭제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다시 제기했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은 또 한 번 소송에 휘말리게 됐다.

"배급사를 통해 본인의 장면을 삭제해달라라고 계속 말씀하셨어요. 그분의 분량이 10초 정도 되는 거지만 저는 그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은 응할 수 없었어요. 공개된 토론회에 모자이크 처리된  토론자(장면 삭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주민)가 등장하는데 그 토론자의 발언 장면을 삭제할 수 없었습니다."

법정 소송까지 가게 된 현 상황이 안타깝다는 김 감독. 상대방과 최대한 절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장면 삭제 가처분 소송을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한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제 영화 속에 등장하는 (특수학교 건립 반대하는) 다른 주민 분들이라고 이런 비슷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게 모든 주요 내용이 삭제되면 <학교 가는 길>은 다큐멘터리로서 생명력을 잃게 될 거예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장면 삭제 가처분신청 모두 본질적으로 <학교 가는 길>의 존재 이유를 명백히 훼손하는 요구라 생각하기에 겸허히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고자 합니다.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았다가는 다른 주민들께서 비슷한 내용의 소송을 계속해서 제기할 수도 있다는 그런 우려 때문에 일단은 최대한 충실하게 잘 준비해서 대응하려 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모습이 지역 이기주의처럼 비쳐졌다는 주민의 주장과 달리 김 감독은 특수학교를 반대했던 주민들 역시 피해자라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나 님비현상(자신이 속한 지역에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반대하는 행동)으로 상황을 바라보기보다 주민들의 아픔과 상처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다큐멘터리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큐멘터리는 최대한 사실을 바탕에 두어 진실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제작된다. 이것은 김 감독의 마음이기도 하다.

"작품이 완성된 후에 관객들이 보시고 나서 어떤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비난하는데 그친다면 감독으로서 다큐멘터리로서 모두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흑백이나 찬반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측면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특히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많은 고민을 했어요.

실제로 제작 과정에서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하셨던 분들께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응해주진 않으셨어요. 영상이라는 게 한 번 만들어지면 기록으로 오래 남는 거잖아요. 그래서 비대위(강서 특수학교 건립 반대 비상대책 위원회) 주민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 솔직히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 균형감 있게 폭넓게 객관적으로 다뤄야겠다고 마음먹었고요."


영화는 특수학교 건립에 대해 발달 장애 아동 학부모 입장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 동네의 역사, 한 국회의원의 한방병원 설립 공약, 지자체와 중앙 정부의 역할에 대해 지적하는 내용을 함께 담고 있다. 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원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각 입장의 고충을 보여준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것을 전달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강서구 서진학교.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강서구 서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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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정부는 주택난 해소를 위해 가양동 일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건설한다. 그 결과 이곳은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탈북민 등 저소득층 거주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 되었다. 취약계층을 집단수용 해버린 국가의 주거정책은 지역사회 모든 구성원의 극심한 불만을 낳았다." - 영화 <학교 가는 길> 자막 중 일부

"가양동이나 방화동이나 등촌동 자체가 임대아파트 다 때려 지어서 이쪽을 몰아넣는 식으로 진행이 됐어요. 가장 아픈 건, 특수학교 주변의 민간아파트 주민들뿐만 아니고 그들에게 냉대와 차별을 받아 온 임대아파트 주민들도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여기 가뜩이나 임대아파트 많고 저소득층 많이 몰려 사는 동네인데 거기에다 장애인 특수학교까지 들어서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하란 얘기냐? 왜 저쪽 잘사는 동네 한복판에 짓지 못하느냐? 저는 이런 주장들이 충분히 타당하다고 봐요.

장애인을 분명히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집값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 분들의 걱정을 욕망을 채워줄 다른 것도 들어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서진학교 지으려면 어떻게 지어야 하느냐?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같이 만들어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조성해 놓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 생각을 정부 당국에서 했어야 하는 거죠. 배려를 하고 정책적으로 추진을 했어야 하는 거죠.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저는 그걸 거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 영화 <학교 가는 길>에서 전 가양동 주민 인터뷰 중 일부

"김성태 의원이 갑자기 교육부지에 병원을 짓겠다고 했어요. 상식적으로 조금만 아는 사람이면 여기가 교육부지인데 어떻게 병원이 들어오지? 생각할 텐데 너무나 유명한 정치인이 '여기에 병원을 지을 수 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 얘기를 누가 안 믿겠어요? 그렇게 해서 갑자기 마치 한방병원이 기정사실화됐는데 특수학교가 그 한방병원의 자리를 빼앗은 것처럼 되어버린 거죠." - 영화 <학교 가는 길>에서 발달 장애 아동 학부모 인터뷰 중 일부

 
 
각각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감독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처럼 영화를 균형감 있게 제작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상황이 안타깝다.

"조직 차원이 아니고 개별적으로 소송 제기를 하셔서 더 마음이 복잡해요. 오히려 조직 차원에서 소송을 걸었으면 크게 마음 쓰지 않고 대응했을 것 같아요. 근데 또 한편으로 어쩔 수 없는 건 일단 그분이 법원으로 소송을 또 제기하신 상황이어서 저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같이 대응하고 있어요. 상황이 여기까지 온 거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지금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드네요.

이번 일을 통해서 학교 가는 길이라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상영되고 말고가 문제 되는 것보다 대한민국 전반적인 특수 교육에 대한 관심이 대대적으로 일어났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장면 금지 가처분 소송에 대한 첫 심문은 12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이뤄진다. 김정인 감독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다큐 한 편의 상영 여부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 가는 길 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 학생들의 현실에 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되길 염원하고 있다. 그의 선량한 마음이 소송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모두가 누리는 권리를 왜 쟁취해야만 하는가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
ⓒ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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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학교 가는 길>은 특수학교 설립뿐 아니라 발달 장애인 직업센터 설립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 특수학교 설립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발달 장애 자녀 학부모들은 애타는 마음으로 발달 장애 직업센터를 설립해달라고 호소했다.

발달 장애 아동 엄마들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서진학교를 세울 수 있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특수학교를 비롯한 장애인 시설들이 계획 단계서부터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 6월에도 경기 시흥의 장애 아동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싸움을 시작했다. 시흥시에는 800여명의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있지만, 특수학교는 단 한 곳도 없다. 부지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익산에서는 중증 장애인 거주 시설 이전으로 주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하지만 가까운 학교를 다니는 것도 거주지를 이전하는 것도 장애인들에게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들은 당연한 권리를 힘겹게 싸워 얻어내야만 한다.

김 감독은 "더 이상 장애라는 것이 낯설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우리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거창한 건 아니지만 모두가 더불어 공존하는 세상에서 살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

마이너 중 마이너인 독립 다큐멘터리는 개봉을 해도 관객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2만 명이 넘는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향했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다양한 관객층을 생각하고 있지만 김 감독은 학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비장애 자녀의 학부모와 교육계에 일하는 사람들이 <학교 가는 길>을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가 작품이 끝날 때도 언급을 했지만 특수학교를 확대하는 거 못지않게 일반 학교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장애 학생들이 함께 교육받을 수 있는 통합 교육을 내실화하는 게 중요해요. 아이가 자라 인생을 넓게 살아가는 걸 고려해 본다면 내 아이와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이 절대 그 아이에게 어떤 피해가 있거나 손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하잖아요. 비장애 학생들의 학부모님들과 교육의 일선에 계신 선생님들도 이런 통합 교육의 내실화를 중요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 감독은 <학교 가는 길>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딸에게 전하는 편지기도 하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만들고 있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그는 딸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학교 가는 길> 첫 머리에 나오는 짧은 한 줄짜리 자막이 '마로와 마로 친구들에게'예요. 제 딸 이름이 마로거든요. 특수학교 설립을 이끌어가는 부모님들의 행보를 다룬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제 딸에게 기성세대로서의 반성과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담아서 만든 영상편지라고도 생각하고 있어요."

서진학교는 작년에 첫 입학생들을 받을 수 있었다. 학교 설립 과정을 지켜본 그는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영화 상영 여부를 떠나 발달 장애 학생들의 교육 환경이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똑같이 좋은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발달 장애 학생들이 어렵게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대부분 사회가 아닌 집으로 돌아온다고 해요. 이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에서 적성에 맞는 일자리들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너무 멋지겠다. 이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영화 <학교 가는 길> 한 장면 한 장면이 관객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하길 바라본다.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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