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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대체왜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유튜브를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친구들과 맘껏 놀 수 없으니 자연스레 집에서 게임 하고 유튜브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또 유튜브냐고 한소리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아이 어깨 뒤에서 몰래 영상을 훔쳐본다. 예전에 즐겨보던 슬라임 영상 같은데 화면에 크게 채팅창이 뜨는 게 조금 다른 것도 같다.

"지금 뭐 보는 거야? 슬라임 영상이야?"
"모버실."


아이는 간단히 대답한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요즘 아이들 말 중에는 왜 이렇게 모르는 말이 많은지, 꼭 몇 번씩 되물어야 한다.

"모버실이 뭔데?"
"모든 버전 실시간의 줄임말."


역시, 줄임말이었다. 하지만 풀어 놓은 말을 들어도 여전히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또 묻는다.

"모든 버전 실시간이 뭐야? 실시간으로 채팅하면서 슬라임 가지고 노는 영상이야?"

엄마는 모르는 아이들 놀이, 모버실

아이는 한숨을 쉬더니 꼭 내가 자기에게 수학 문제를 알려줄 때처럼 팔짱을 끼고 설명한다. '모버실'이란 진짜 실시간은 아니고 실시간 대화하는 것처럼 채팅창이 나오게 편집한 영상이다.

뒤의 배경은 주로 액괴(액체괴물, 슬라임)를 만지는 영상을 사용한다. 액괴를 만지는 영상 위에 어떤 주제로 채팅이 진행될 거라는 문구가 뜨고 곧바로 관련 채팅창들이 올라온다.

"그러니까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로 상황극을 하는 거지? 실시간인 것처럼?"
"응 맞아. 여기서는 주제를 버전이라고 해."


아이 말에 의하면 모버실은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학교 여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더 호기심이 생긴다. 유튜브 검색창에 '모버실'을 치니 관련 영상이 주르륵 뜬다. 난 오늘 처음 들은 단어인데 이렇게 많은 영상이 있다니. 아이는 그중 모버실로 유명한 유튜버의 영상을 틀었다.

앗. 채팅창 대화의 대부분이 줄임말이다. 반모, 반신, 추모, 초반, 반박, 윰차 등 한 장면에 적어도 하나는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아이는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씩 나에게 설명해준다.

반모는 반말 모드, 반신은 반말 모드 신청, 추모는 추가 모집, 초반은 초면에 반말, 반박은 반말 모드 박탈, 윰차는 유명한 유튜버와 무명 유튜버를 차별하는 것. 생각보다 친절한 아이의 설명에 감동했다. '나도 이제부턴 아이에게 친절하게 수학 문제를 설명해 줘야지'라는 다짐을 부를 만큼.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학교 여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이라는 모버실. 느낌 아시겠어요?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학교 여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이라는 모버실. 느낌 아시겠어요?
ⓒ 유튜브 모버실 영상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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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말을 듣고 다시 영상을 유심히 본다. 내용은 주로, 뒷담화 하는 지인 복수 버전, 공주병 걸린 친구 복수 버전, 생일선물 달라고 재촉하는 지인 복수 버전, 차별하는 선생님 복수 버전 등 복수와 관련된 게 많았다.

'왜 이렇게 복수 버전이 많지, 너무 자극적인 내용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됐다. 하지만 몇 개 보고 나니 그 복수라는 게 차별하는 선생님을 교장 선생님께 이르거나 유튜브에서 친구를 차단하는 것 정도다. 코로나19로 떡볶이도 같이 못 먹으러 가는 아이들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이런 상황극으로 풀고 있다면야... 크게 나무랄 일도 아닌 듯했다. 

모버실에서는 채팅창의 모든 채팅을 유튜버가 읽는 게 아니라 자신의 채팅만 읽는다. 그래서 화면에 다른 사람들의 채팅이 뜰 때는 뽀록뽀록 액괴를 만지는 소리만 들린다. 뽀록뽀록 스윽, 뽀록뽀록 토도도독. 지루할 틈이 없다. ASMR의 향연이다.

"엄마, 이건 내가 좋아하는 액괴 영상이랑 드라마가 같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좋아하지."

40대를 위한 모버실을 추천해주는 아이
 
40대의 모버실은 어떨지 궁금하다. 역시나, 본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 강유미의 연기도, 상황도 그럴듯해 나도 모르게 깔깔 웃으며 끝까지 봤다.
 40대의 모버실은 어떨지 궁금하다. 역시나, 본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 강유미의 연기도, 상황도 그럴듯해 나도 모르게 깔깔 웃으며 끝까지 봤다.
ⓒ 강유미 모버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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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에는 조금 유치한 상황극이 아이에게는 공감 가는 짧은 드라마인 거다. 드라마 작가만 드라마를 쓰는 게 아니다. 하지만 30분 정도 모버실을 보자 난 그 상황이 그 상황인 것 같고, 액괴 만지는 영상 위에 뜬 채팅창을 봐서 그런지 멀미가 났다. 이제 그만 보자니까 아이는 급하게 다른 영상 하나를 더 튼다.

"엄마, 이건 개그맨 강유미의 모버실이야. 재미있을 걸?"

들었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인다. 십 대가 아닌 나와 비슷한 40대의 모버실은 어떨지 궁금하다. 역시나, 본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 강유미의 연기도, 상황도 그럴듯해 나도 모르게 깔깔 웃으며 끝까지 봤다. 유튜브에는 아이들의 이런 놀이를 심층 취재해 놓은 콘텐츠도 있었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부모님 중 '모버실'이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강유미의 모버실을 추천한다. 그만 보자고 했다가 깔깔거리며 영상을 끝까지 본 게 민망해 괜히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줄임말이 많이 나오는 건 안 좋은 것 같아."
"엄마, 이거 전문용어야. 액괴계(액괴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모두 합쳐 이르는 말) 전문용어. 슬기로운 의사 생활 드라마에서 의학 전문용어가 나오는 거랑 똑같아. 우리도 평소에는 이런 말 안 써."


전문용어라니. 아이의 새로운 접근에 웃음이 났다. 또 유튜브 보냐고 윽박지르기 전에 같이 영상을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이렇게 아이와 길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부작용도 있다. 내가 원하는 건 딱 거기까지였는데, 그 뒤로 아이는 자꾸만 나와 모버실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한다. 계속 나를 불러대서 황급히 가봤더니 또 모버실 이야기다.

"엄마,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가 새 모버실 영상 올렸는데 같이 볼래?"
"참, 내가 저번에 모버실에 대해 설명 안 해준 게 있는데, 지금 설명해줄까?"


아이는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다. 난 모버실이 좋아서 본 게 아니라 아이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서 봤던 건데. 이제는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보다.

'딸, 너의 추천은 고맙지만 엄마는 모버실 안 좋아해. ㅜ.ㅜ 그거 보면 멀미가 나. 엄마는 워크맨이나, 출장십오야 이런 거 좋아해. 우리, 취존(취향존중)하자.'

group대체왜하니 http://omn.kr/group/teen_why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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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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