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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사진자료-경남진주낙육고등학교 졸업예식
 경남 진주 사진자료-경남진주낙육고등학교 졸업예식
ⓒ 국립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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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글씨-청초당
 안중근 글씨-청초당
ⓒ 국립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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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20세기초 민족 독립·인권운동에 투신했던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와 강상호(姜相鎬, 1887〜1957) 선생의 젊은 시절 활동을 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장상훈)은 10일 "애국계몽의 두 갈림길–안중근과 강상호"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고 6일 밝혔다.

박물관은 "1876년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 이후, 조선은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그 성과를 온전히 내지 못한 채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이 시기 수많은 지식인들은 나라를 지키고 낡은 사회관습을 없애기 위해 학교를 세웠고, 신문을 창간하였으며, 독립협회(獨立協會) 같은 사회정치단체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황해도 해주 출신인 안중근 의사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를 하얼빈역에서 사살하면서 한국의 독립의지와 동양평화론을 널리 알렸다.

경남 진주 출신인 강상호 선생은 1923년 사회적 차별을 받던 백정의 인권 신장을 위해 '형평사(衡平社)의 결성을 주도하여 백정의 인권 개선에 크게 기여하였다.

박물관은 "두 사람의 삶이 다소 달랐던 것 같지만, 두 사람 모두 청년기에는 국채보상운동과 교육을 통한 계몽운동으로 나라와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였다"고 했다.

이어 "안중근이 거대한 외세에 맞서 나라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면, 강상호는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백정의 인권 증진을 위해 헌신하는 길을 걸었다"며 "두 사람이 선택한 길은 달랐지만, 나라를 되찾고 사회를 개혁한다는 목표는 같았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안중근 의사와 강상호 선생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두 사람의 삶에 대한 소개와 함께, 안중근 의사가 직접 쓴 글씨 <임적선진위장의무(臨敵先進爲將義務)>(보물)를 비롯하여 두 사람의 자료 16건 22점이 전시된다.

박물관은 "근대 진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강상호 관련 사진자료는 관람객이 보기 쉽도록 크게 확대하여 사진전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19세기 말~20세기 초 우리 역사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라며, 진주를 포함한 서부경남의 지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작은 받침돌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애국계몽의 두 갈림길?안중근과 강상호” 홍보물.
 “애국계몽의 두 갈림길?안중근과 강상호” 홍보물.
ⓒ 국립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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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 사용 벼루·벼루집(개인 소장)
 강상호 사용 벼루·벼루집(개인 소장)
ⓒ 국립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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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글씨-임적선진위장의무
 안중근 글씨-임적선진위장의무
ⓒ 국립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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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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