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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강화회의 후 이승만이 추진한 '위임통치' 청원은 이승만 탄핵으로 이어졌다. 특히 단재 신채호는 '이승만이 이완용이나 송병준보다 더 큰 역적'이라며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 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 먹으려 한다'고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을 격렬히 비판했다.
 파리강화회의 후 이승만이 추진한 "위임통치" 청원은 이승만 탄핵으로 이어졌다. 특히 단재 신채호는 "이승만이 이완용이나 송병준보다 더 큰 역적"이라며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 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 먹으려 한다"고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을 격렬히 비판했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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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의 인물을 꼽는다면?"

언젠가 수업 시간에 주의를 환기할 겸 아이들에게 물었다.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야 여러 언론에서 흔히 다루는 소재여서 반대로 질문해 본 것이다. 물론, 최고로 꼽는 대통령은 어른이고 아이고 별 차이가 없다. 십중팔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 아니면 박정희. 그리고 간혹 김대중. 

그들의 눈에 비친 최악의 대통령은 누구일까. 부모 세대가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은 광주의 아이들이라서인지 전두환이 압도적인 1위다. 과거 어느 백일장에서 전두환을 뿔 달린 악마로 표현한 어느 초등학생의 그림을 본 적도 있다. 그렇다면 2위는? 

박근혜였다. 세월호 참사와 촛불 혁명을 직접 겪은 세대로서, 1위가 아닌 게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역사적 경험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정치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정치적 효능감'이다.

3위는? 의외의 인물이 차지했다. 사리사욕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은 이명박도, 유신 독재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도, IMF 외환 위기를 초래한 김영삼도 아닌, 이승만이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 그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인물'로 꼽았다. 

요즘 아이들은 4.19 직후 내각책임제 상황에서 대통령을 역임한 윤보선이나, 박정희가 측근 김재규에 의해 살해당한 뒤 대통령직을 승계한 최규하에 대해선 잘 모른다. 워낙 존재감이 없는 인물들인데다 교과서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승만을 '디스'하는 이유는 뭘까. 현대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다 보니 이름을 낯설어하는 아이는 없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의 이름이 교과서에 족히 열 번도 더 등장한다. 빈도로 치면, 전체를 통틀어 아마 1등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의 직함과 행적을 '따로국밥'처럼 여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매 순간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행적은 늘 직함에 못 미치거나 엇나가기 일쑤였다고 비판했다. 과연 그의 공이 있기나 한 건지 의심을 품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화려한 직함 말고는

몇 해 전 수업 시간에 역대 대통령의 공과 과를 주제로 찬반 토론을 아이들끼리 벌인 적이 있다. 물론, 양쪽의 논거가 분명해 쉽게 결판이 나지 않는 대표적인 인물은 박정희였다. 김영삼과 김대중도 의외로 찬반이 팽팽해 토론이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다못해 이명박과 노무현까지도 찬반의 쏠림이 확연할지언정 공과 과를 대조해보려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승만은 토론의 무대에 애초 올라오질 못했다. 그를 두둔하려는 아이들이 아예 없어서다. 그의 공은 독립운동가였다는 것, 그리고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화려한 직함 말고는 그의 공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알고 있는 그의 행적은 죄다 부정적인 것 투성이다. 그가 개입된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은 하나같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역사를 퇴행시켰던 일들이다. 한 아이가 요약정리한 '이승만 관련 노트'를 잠깐 소개한다.

국제연맹 위임통치 청원, 임시정부 대통령 탄핵, 반탁운동, 정읍 발언, 제주 4.3, 여순 사건, 반민특위 해산, 한강철교 폭파, 보도연맹 사건,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진보당 사건, 3.15 부정 선거, 4.19. 교과서 속 이승만과 관련된 사건이 시대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3.1운동 직전 생뚱맞은 국제연맹 위임통치 청원 사건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큰 갈등을 빚었다. 이는 결국 이승만의 탄핵과 지도층의 분열로 귀결되고, 이후 임시정부는 내각을 구성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세력이 약해졌다. 알다시피, 그렇듯 망가진 임시정부를 일으켜 세워 해방의 그 날까지 걸머지고 간 이는 김구였다. 

이승만은 신탁통치 정국에서 반탁운동 편에 서며 미소 냉전을 정치적으로 십분 활용했다. 내친김에 38선 이남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하자는 정읍 발언으로 이어졌고, 그에 맞서 제주에선 단독정부 수립 반대의 기치를 내걸고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제주 4.3은 이어 여순 사건을 불러왔다.

제주도민을 토벌하라는 명령에 불복해 일어난 여순 사건은 진압과 부역자 색출 과정에서 제주 4.3 못지않은 희생자가 나왔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남녀아동이라도 일제히 조사해 불순분자는 모두 제거'하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이 제정됐다.

여순 사건 직후 처음 등장한 단어가 그 유명한 '빨갱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보다 빨갱이가 더 나쁘다는 황당한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강제 이식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국가보안법 제정 반년 만에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가 전격 해산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민주주의 짓밟은 독재자

아이들이 이승만에 대해 가장 치를 떠는 대목은 따로 있다. 북한군의 남하를 늦춘다는 미명에 당시 피난민들이 건너고 있던 한강철교를 폭파했다는 것. 그리고 좌익 세력의 전향을 목적으로 스스로 조직해놓고선 6.25 전쟁이 터지자 이적 행위가 우려된다며 모조리 학살했다는 것. 그 잔인무도함은 정치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패륜이라는 것이다. 

몇몇 아이들은 이승만을 아예 친일파의 범주에 넣곤 한다. 그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해방과 분단 과정에서 자신의 권력을 위해 친일파를 단죄하기는커녕 중용했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친일 청산의 실패는 팔 할이 이승만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한편, 아이들에게 두 차례의 개헌 파동은 역사가 아닌 '개그'의 소재가 돼버렸다. 처음엔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느냐며 교과서 내용을 의심하기도 했다. 이젠 국민의 높은 문맹률을 권력 연장에 활용할 만큼 야비했고, 느닷없는 반올림의 원리까지 끌어와 우길 만큼 뻔뻔한 정치인이었다며 입을 모은다.

그가 제정한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 죽였고, 급기야 부정 선거를 획책하기에 이른다. 집권한 지 12년이나 지난 1960년 봄이 되어서야 불의로 점철된 그의 권력욕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승만 독재 정권에 맞선 2.28 민주 운동과 4.19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시작을 알린 대사건이다. 

곧, 그는 국민에 의해 두 번이나 권좌에서 쫓겨났다. 1925년 임시정부의 대통령에서 탄핵이 됐고, 1960년 4.19로 하루아침에 무소불위 대통령에서 망명객의 신세로 전락했다. 역사는 이를 위대한 국민의 승리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찬란한 순간으로 기록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알다시피, 임시정부와 4.19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헌법은 시작된다. 그것이 헌법 가치의 고갱이임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임시정부에서 탄핵이 되고 4.19로 내쫓긴 이승만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로 기록하고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6일 경북 칠곡군 왜관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6일 경북 칠곡군 왜관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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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수업 시간 이승만을 '디스'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린 건, "역대 대통령 중 헌법 가치를 가장 잘 지킨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꼽은 국민의힘 최재형 대선 후보의 발언을 듣고서다. 언론에선 '보수 본색'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고등학생들도 아는 우리 현대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교사로서 역사적 인물을 설명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있다. 모든 사람에겐 공과가 있어 다양한 관점에 따라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인물 관련 수업을 할 때 찬반 토론이 제격인 이유다. 그런데 이승만을 다룰 땐 이렇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선생님, 이승만의 과에 관해선 교과서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공은 잘 모르겠어요. 과를 상쇄할 수 있을 만한 그의 공에 대해 직접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솔직히 그때마다 얼버무리고 만다. 일제강점기 구미위원부 활동, 해방 후 농지개혁, 공산화 저지와 미국식 민주주의 제도 도입, 교육 시설 확충과 문맹 퇴치 등을 열거해보지만, 그의 허물에 견준다면 '새 발의 피'라는 생각에서다. 아이들도 '그게 뭐냐'며 비웃기 일쑤다. 

양극화된 진영 논리에 감춰져 있을 뿐,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다. 그를 위대한 정치 지도자로 상찬하는 건, 일부 극우 세력의 지지를 얻게 될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폄훼하고 부정하는 짓이다. 역사가 한낱 정치인의 발언에 휘둘려서야 되겠는가.

사족 하나. 최재형 대선 후보의 발언에 대한 한 지인의 반응이다. 과연 그가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판사 출신이 맞느냐며 이렇게 말했다. 이승만이 헌법 가치를 가장 잘 지킨 인물이라면, 그에겐 국가보안법 위반이 가장 큰 범죄라는 뜻 아니겠느냐며 비아냥거렸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면 '자유당 시절'로 회귀하게 되는 거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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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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