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서산 치즈 고양이
 오서산 치즈 고양이
ⓒ 이재환

관련사진보기

 
가기 싫고 귀찮고 심지어 두려운 길이라도 막상 가보면 의외의 재미가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지난 2016년 충남 홍성으로의 귀촌이 그랬고, 또 오서산 산행이 그랬다. 물론 산행이라기보다는 취재를 위해 억지로 올랐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발바닥에 바늘이 찔려 빼내는 대수술을 받은 뒤 반복적으로 발목을 접질려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실제로 발목에 부서진 뼛조각이 돌아다녀서 조금만 무리해도 발목이 퉁퉁 부어오른다. 그런 나에게 산행은 정말 큰맘 먹고 해야 하는 '두려운 일'이다.

오서산 정상 데크가 훼손돼 위험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몇날 며칠을 준비한 끝에 지난 5일 오서산에 올랐다. 물론 등반 중에 4번을 쉬어가며 겨우 정상에 오를 수가 있었다. 4번을 쉬었다는 것은 4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반적으로 한 시간 정도면 오른다는 등반 코스를 나는 1시간 40분이나 걸려 올라갔다.

그럼에도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쾌감은 남들 못지않았다. 정상에 오르자 눈앞에 펼쳐진 난생처음 보는 오서산 풍경은 역시 듣던 대로 장관이었다. 오서산 아래를 오가며 늘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정상에 올라 취재를 위해 산에 올라왔다는 사실은 잠시 까먹고 오서산 아래에 펼쳐진 광경에 심취해 있을 무렵 어디선가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이겠지? 설마 잘못 들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렸을 때 노란 치즈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다. 해발 790미터 고지에 고양이라니. 다소 믿기 어려운 이 현실에 나는 금방 적응하고 말았다. 어느새 고양이 소리를 흉내 내며 "야옹, 너 여기사니?" 하고 고양이에게 안부를 묻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녀석은 내게 배를 내밀어 보여주고 골골 송까지 신나게 열창해 주었다. 녀석의 반김이 좋긴 좋은데, 아무런 준비 없이 고양이에게 간택(?)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다. 이럴 때는 소셜미디어의 힘을 빌리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SNS에 이 상황을 공유하자,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아이(고양이) 오서산 마스코트로 유명해요." (지인 A)
"아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도 있어요. 아이 이름은 몰라요." (지인 B)
"언제부터인가 오서산 정상에서 보였다고 해요. 그 아이 거기 살아요." (지인 C)

정보를 종합해 보면 이 치즈 고양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서산 정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름은 오서산을 따 '서산이'라고 지어줄까 하다가 일단 '서냥이(오서산 냥이의 줄임말)'로 부르기로 했다.
 
▲ 오서산 고양이 충남 오서산 정상에서 만난 치즈색 고양이
ⓒ 이재환

관련영상보기


지인들이 전해준 정보를 토대로 녀석의 상태를 살펴보니 비록 산속에 살지만 꽤 건강해 보였다. '너 선수구나!' 하며 웃음이 후훗하고 터져 나왔다. 산속에 혼자 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인간들과 친해지는 법을 익힌 녀석이 대견해 보여서다.

녀석에게는 내가 덩치가 조금 큰 고양이로 보였을까. 아니면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내 몸에서 고양이 냄새가 났던 모양이다. 녀석은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주위를 맴돌며 내 몸에 자신의 체취를 뭍이기에 바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

사실 지난 2016년 홍성으로 귀촌한 뒤 고양이들에게 밥을 나눠주고, 사료를 사다 나르면서 오작동 되고 있던 내 마음이 교정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인연은 상상이 아닌 사건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물론 사건은 주로 행동을 통해 발생한다. 내가 오서산을 오른 것은 행동이고, 그 와중에 고양이를 만난 것은 작은 사건이다. 그 사건 속에서 고양이와의 인연, '묘연'이 시작된 것이다. 말 그대로 참 묘한 것이 고양이와의 인연이다.

어쨌든 오서산 정상에서 만난 고양이와의 짧은 교감만으로도 나는 산을 내려올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하산 도중에 발목이 아파 주저 앉으면 어쩌나, 119라도 불러야 하는 것일까하는 따위의 걱정도 모두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비약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좋은 만남이 주는 힘은 그만큼 강하다. 오서산 고양이의 안부가 문득 문득 궁금해질 것 같다. '서냥이'가 오서산의 넓은 품에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다.
 
보령 쪽 능선에서 바라본 오서산 정상
 보령 쪽 능선에서 바라본 오서산 정상
ⓒ 이재환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고양이가 어떤 이유에서, 언제부터 오서산 정상에 살고 있는지, 사연을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블로그 미주알고주알( http://fan73.sisain.co.kr/ ) 운영자. 필명 전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