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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둘째 아이는 라면을 너무나 좋아한다. 심지어 녀석은 라면을 끓여먹는 것도 아니고, 생라면을 부셔 먹는 것을 좋아한다. 거의 1:4의 비율로 끓여먹기보다 부셔먹는 것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아이가 즐겨먹는 생라면
 아이가 즐겨먹는 생라면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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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맛

눈치가 빠른 편인 둘째 아이는 내가 생라면 먹는 것에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곧잘 눈치챈다. 따라서 그것이 먹고 싶을 때는 간절한 표정으로 애절하게 나에게 말하곤 한다.
 
"엄마... 나 라면 한번만 먹으면 안돼요? 진짜 오늘만 먹을게... 대신 이따가 밥 잘 먹을게... 응? 먹게 해줘..."
"그래... 알았어... 그럼 끓여줄까?"
"아니... 부셔먹을거야... 그렇게 먹으면 안돼?"

 
먹고 싶은 음식을 코앞에 두고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갑작스럽게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잔꾀를 써서라도 먹고야 마는 그런 아이였다.

하나의 일화를 들자면, 그 시절 평소 잘 먹지 않았던, 가격이 제법 나갔던 '탕수육'이 지독하게 먹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부모님께 졸랐는데 사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탕수육을 종이에 그려서 오린 후 그것을 먹는 시늉을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측은지심을 얻기 위한 나의 전략이었다. 결국 나의 작전대로 부모님은 탕수육을 시켜주셨다.
 
이 정도로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열망이 깊었던 나이거늘, 이런 나를 가장 많이 닮은 아이가 저토록 간절하게 말할 때는 얼마나 먹고싶을지 그 심경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나의 높은 공감지수가 결국 문제였던 것일까.
 
나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는 신이 나서 부엌으로 가서 큰 쟁반을 가지고 온다. 라면 봉지를 과감하게 개봉한 후, 그 안의 라면과 스프를 쟁반 위에 쏟아붓는다. 그리고 라면을 동강동강 한 입에 먹기 좋게 자른다.

아이의 먹는 방식은 나의 어린 시절과는 조금 다르다. 한 입에 넣기 좋도록 자그마하게 자른 조각의 라면을 한 개씩 손으로 집어든다. 그리고 그 조각 위에 하나하나 스프를 솔솔 뿌리면서 먹는다. 너무 맛있게 먹지만, 한눈에 보아도 스프를 너무 많이 뿌리고 있었다.
 
"아! 너무 짤 것 같은데... 너 그러다가 진짜 병 걸릴까 무섭다... 근데 그게 그렇게 맛있어? 얼마나 맛있어?" 
"어... 엄청 맛있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한 6위 정도에 들어가지..."


라면 봉지에 적힌 숫자를 보다
 
불현듯 아이가 먹고있는 라면 봉지 뒤편의 '영양정보'를 들여다보았다. '나트륨 1,710mg, 86%' 매우 높은 수치인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하여 '나트륨 권장량'에 대하여 검색해보니,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나트륨 권장량은 2,000mg이지만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국인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4,878mg으로 무려 2.4배 이상이라고 한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하여 우리집에 보관 중인 먹거리의 나트륨 함량을 찾아보았다. G과자는 280mg(14%), 미니 사이즈의 약과는 110mg(6%), 치킨너겟은 620mg(31%) 그리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식품인 카레는 900mg(45%)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역시 라면의 나트륨 함량이 다른 식품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시중에 판매하는 다양한 종류의 라면
 시중에 판매하는 다양한 종류의 라면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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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집에 있는 라면도 종류별로 한번 찾아보았다. 종류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의 나트륨 함량을 보이고 있었다. J라면은 1,760mg(88%), A라면은 1,790mg(90%)로 비슷했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국물이 없는 비빔면의 나트륨은 1,090mg(55%)로, 예상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수, 냉면, 유탕면류, 햄버거, 샌드위치 이 5가지에 대해서만 의무적으로 '나트륨 함량 비교 표시'를 하도록 하고 있다.
  
라면봉지 뒤의 나트륨 함량 비교 표시
 라면봉지 뒤의 나트륨 함량 비교 표시
ⓒ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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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라면봉지 뒤에 '나트륨 함량 비교 표시'가 눈에 띄었다. 식품저널 foodnews에 따르면, '나트륨 함량 비교 표시제'는 소비자들이 나트륨 함량을 비교하여 제품을 선택하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우리 국민의 나트륨 섭취를 줄이는데 기여하자는 취지로 법으로 정한 제도로, 2015년 개정된 식품위생법에 따라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7년 5월 19일부터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중독성 있는 라면에 대한 새로운 다짐
 
이렇듯 우리나라 국민이 나트륨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나는 아이를 통해 우연히 불편한 진실을 직접 보게 된 후,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트륨 섭취로 인한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아이의 식습관을 조절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고백하자면, 둘째 아이는 입맛이 워낙 까다로운 편이라서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아이의 식습관에 맞추기에 엄마로서 너무 힘들고 버거웠다. 그래서 아이가 생라면을 부셔먹을 때마다 잔소리를 하며 옥신각신하기도 싫거니와, '먹고 싶은 것은 뭐라도 먹으면 된다거나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려 건강하다'는 식의 근거 없는 논리에 나를 합리화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개선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으로 섭취 횟수라도 줄일 수 있도록 우선 노력해 봐야겠다. 그리고 라면을 끓여먹을 때에도 국물을 되도록 많이 마시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다.
 
사실 사람들은 라면 특유의 스프 맛, 그 짠맛에 이미 길들여진 것 같다. 제과 업체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입맛과 취향을 기가 막히게 간파하고 있다. 최근에도 계속적으로 라면 스프 맛이 나는 과자들이 지속적으로 출시되고 있다.

실제로 이 제품들은 아이 뿐 아니라, 어른들의 입맛까지 공략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하여 증가한 혼술족을 겨낭하여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술안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짭조름한 라면 스프의 맛을 제대로 살린 스낵들이 등장하는 추세이다.

이런 라면에 대한 사랑은 이미 과거부터 이어진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생라면을 봉지째 부신 후 봉지 안에 라면 스프를 몽땅 털어 넣고 마구 흔들어 과자처럼 먹었던 추억이 있다. 그 짭조름한 라면 스프가 솔솔 뿌려진 단단한 라면 조각, 오독오독 씹다 보면 이내 짭짤한 라면 스프와 어우러지면서 계속 먹게 되는 그 중독성 있는 맛과 식감!
 
그렇지만 이제는 그 시절 추억 속의 맛과 결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라면 봉지에 적힌 객관적인 수치가 이제는 그렇게 해야한다고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슬프고 당황스러울 이 소식을 알려할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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