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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에는 13곳의 묘역에 군인, 경찰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분들이 잠들어 있다.
 대전현충원에는 13곳의 묘역에 군인, 경찰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분들이 잠들어 있다.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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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현충원은 묘역만도 13곳에 이르는데 장병 묘역, 장군 묘역, 독립유공자 묘역, 국가원수 묘역,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순직공무원 묘역, 경찰관 묘역, 소방관 묘역, 의사상자 묘역, 독도의용수비대 묘역,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 천안함 46용사 묘역이 있다. 전국 최대의 묘역이다. 그런 만큼 '아니 이 분이 여기에?' 하고 놀랄 만한 각계각층의 분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전 현충원 둘레길을 걸어본 사람들이면 거치게 되는 국가 원수 묘역. 유일하게 최규하 전 대통령이 홀로 지키고 있다. 2004년 9월 21일, 8기까지 안장이 가능한 규모의 국가원수 묘역이 조성되었는데, 2006년 돌아가신 최규하 전 대통령과 부인 홍기 여사의 묘소가 유일하게 대전현충원에 있다.

군인 묘역엔 12.12 반란군과 저항군이 함께

군인 묘역(장병 묘역, 장군 묘역)엔 한국 현대사를 거쳐 온 인물들이 누워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될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그는 12.12 군사 쿠데타 때 신군부에 의해 체포돼 이등병으로 강제 전역 당한 후 대장으로 복권됐고 2002년에 사망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예비역 대장 자격으로 안장되었다.

장태완은 12.12 군사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서울에 있던 부대 중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육군헌병감과 함께 쿠데타에 끝까지 저항한 군인이었다. 2010년에 숙환으로 숨져 대전현충원에 묻혔다.

반대로 신군부 세력이었던 전두환의 대통령 경호실장 안현태와 12.12 군사반란의 주역 유학성 전 중앙정보부장, 소준열 전 전교사 사령관, 진종채 전 2군사령관도 대전에 누워있다.

안현태는 전두환의 비자금을 조성한 죄로 구속되었고, 유학성은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으나 재판 중 사망해 공소 기각됐다. 이 둘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은 지금까지도 논란거리다. 소준열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투병과 교육사령관으로 시위대 진압 임무를 맡기도 했다. 진종채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지휘계통상 발포 명령권자였다는 논란이 있다.

이밖에 12.12쿠데타 관련자들로는 이차군, 정동호, 우국일, 김택수, 김기택, 정도영, 송응섭, 김윤호 등이 있으며 이들도 모두 장군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장군묘역엔 12.12 신군부 쿠데타 세력과 이에 저항한 군인들이 함께 누워있다.
 장군묘역엔 12.12 신군부 쿠데타 세력과 이에 저항한 군인들이 함께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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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쿠데타 주역들도 다수 안장되어 있었다. 관련자로는 김동하, 최주종, 박창암, 김진위, 정명환, 김인화, 이석제, 박원빈, 강상욱 등이 장군묘역에 안장되어 있고, 이중 김동하, 최주종, 박창암은 친일 경력도 있다. 쿠데타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중앙정보부장으로 김대중 납치사건을 벌인 이후락도 안장자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친일과 관련해 논란을 빚고 있는 군인들도 많다. 만주국군 출신 김석범, 송석하, 신현준, 김대식 등과 일본군 출신으로 대한민국 국군 군번 1번인 이형근을 비롯해 백홍석, 김창룡, 유재흥 등이 누워 있고, 최근에 숨진 백선엽 대장도 친일 논란 속에 안장되었다.

이밖에 천안함 실종자 수색 도중 숨진 한주호 준위가 잠들어 있다. 2016년 동해에서 한미연합 해상무력시위 작전에 참여해 고난도 야간 비행 임무를 수행하다 추락사고로 순직한 해군 링스 해상작전헬기 조종사 등 순직 장병 3명도 영서(永逝)해 있고, 1983년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대령도 대한민국 군인의 자격으로 장교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천안함 승조원, 연평도 전사자는 독립묘역으로

군인이면서 독립묘역에 묻혀있는 군인들도 있다.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사건 전사자들은 2015년에 특별히 한 곳으로 이장해 묘역을 새로 조성했고, 46명의 천안함 승조원들은 사병 묘역 일부에 합동 안장한 후 철제 울타리를 쳐두어 별도의 묘역으로 조성했다. 행사 등이 잦아 상대적으로 찾는 인원이 많은 점을 감안한 것으로, 양 묘역 모두 추모 상징물 등이 있다.
 
천안함 전사자들은 별도로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천안함 전사자들은 별도로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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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용수비대 묘역도 별도로 조성돼 있다. 첫 안장자는 유원식 당시 교육대 대장으로 2014년 11월 21일 이장했으며 모두 14명의 대원이 묘역에 잠들어있다.

보통 각 군 참모총장은 1월 1일과 현충일 등에 국립서울현충원 대신 이 곳을 찾는다. 육·해·공군본부가 위치한 계룡대가 인근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경찰묘역엔 좌익과 전투하다 전사한 경찰 많아

경찰묘역은 502~513번 묘역으로 총 5천여 위가 안장되어 있고, 애국지사 묘역에는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용원 선생 등 임시정부경찰 22위와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 20위가 모셔져 있다. 경찰묘역의 많은 안장자들은 해방 후 공간에서 좌익과 전투를 벌이다가, 또 6.25전쟁 당시 공비들과 교전하다가 전사한 경찰들이 많다.

경찰묘역에서 돋보이는 이는 차일혁 경무관이다. 강점기 시대에는 조선의용대에서 항일유격활동을 했고, 6.25전쟁 당시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장으로 활동했다. 토벌작전이 진행된 지리산 일대의 화엄사 등과 덕유산 일대의 선운사 등 사찰 소각 명령을 받았으나 문짝만 뜯어 소각하는 기지를 발휘해 문화재를 전화(戰火)에서 구하게 했다.

또 1953년 9월 서남지구전투경찰대 2연대장 시절 빨치산 남부군사령관 이현상 부대를 토벌하였는데, 그를 적장의 예를 갖추어 화장해 섬진강 변에 뿌려주기도 했다. 그는 빨치산 토벌을 빌미로 민간인을 수탈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했다고 한다. 1998년 화엄사 경내에는 공적비가 건립되었고 2008년 문화재호국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찰묘역에는 화엄사 등 문화재를 전화에서 구한 차일혁 경무관의 묘가 눈에 띈다.
 경찰묘역에는 화엄사 등 문화재를 전화에서 구한 차일혁 경무관의 묘가 눈에 띈다.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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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1989년 부산의 동의대 중앙도서관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순직한 최동문 경위 등 경찰관과 전투경찰 7명도 대전현충원에 묻혀있다. 2011년 해상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을 나포해 조사를 벌이던 중 중국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이청호 경사도 안장되어 있다.

해안경비함에서 근무하다 복통으로 쓰러진 경찰을 구조해 헬기로 이송하던 중 추락해 현장에서 순직한 이유진 경장과 실종된 이병훈 기장(경감), 권범석 부기장(경감) 등 5명도 대전현충원에 영면해 있다.

반면 이승만의 친위대 역할을 하며 테러를 일삼았던 서북청년단의 중앙본부 단장을 지낸 문봉제는 내무부 치안국장을 지냈다 하여 경찰관묘역에 안장되는 등 다수의 단원들이 경찰묘역을 차지하고 있다.

생명을 구하려다 숨진 안타까운 사연 많아

2012년 1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소방관 묘역이 처음 생겼다. 그동안은 국가원수 묘역, 애국지사 묘역, 국가유공자 묘역, 군인·군무원 묘역, 경찰관 묘역, 의사상자 묘역, 일반공헌자 묘역, 외국인 묘역 등 8개 묘역으로 구분돼 있었다. 소방관 묘역은 "국민들이 119를 누를 때 언제 어디서나 소방관들이 달려올 것이라는 믿음에 답하고자 365일 24시간 잠들지 못한다"는 소방관들의 고귀한 영령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소방관 묘역 맨 앞줄에는 2018년 충남 아산에서 도로 위의 개를 구조해 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 여성 소방관 3명이 나란히 안장돼 있다.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던 소방관과 20대 예비소방관 2명의 희생은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바로 그 옆에는 2017년 강원도 강릉 석란정에서 화재 진화 중 건물 잔해에 깔려 순직한 고 이영욱 소방경과 이호현 소방교의 묘비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이 소방경은 퇴직을 불과 1년 앞두고 있었고, 이 소방교는 임용된 지 불과 8개월 밖에 안 됐다. 2019년 독도 인근에서 환자를 수송하다가 헬리콥터가 해상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숨진 5명의 소방관도 대전현충원에 함께 누워있다.

최근 쿠팡 물류센터 화재에서 화재진압과 인명 구조를 위해 투입됐다가 순직한 경기도 광주소방서 구조대장 고 김동식 소방령도 지난달 7일 대전현충원에 모셔졌다.
 
쿠팡물류센터 화재에서 인명구조를 위해 투입되었다가 순직한 고 김동식 소방령의 안장식이 진행되고 있다.
 쿠팡물류센터 화재에서 인명구조를 위해 투입되었다가 순직한 고 김동식 소방령의 안장식이 진행되고 있다.
ⓒ 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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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가장 많은 애국지사 잠든 곳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애국지사가 잠들어 있는 곳이 바로 충절의 고장으로 꼽히는 대전이다.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는 2021년 6월 기준 총 3277명이 잠들어 있다. 우리나라 전체 독립유공자 1만6685명(2021년 3월 기준)의 20% 가까이 된다. 서울현충원의 경우 임시정부요인 18위와 배우자 애국지사 3위를 포함해 377명의 독립유공자가 있고, 국내 최대의 독립유공자 전용 국립묘지인 국립신암선열공원(대구 소재)에는 52명의 애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3대가 독립항쟁에 매진했던 상해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가족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인 곽낙원 지사는 독립유공자묘역 771번에, 바로 옆에는 김구 선생의 장남인 김인 지사(772번)가 자리해있다. 곽낙원 지사는 독립운동가들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뒷바라지하면서 국내 및 중국에서 조국광복을 위한 항일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 인물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지사와 아들 김인 지사의 묘가 독립유공자 묘역에 나란히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지사와 아들 김인 지사의 묘가 독립유공자 묘역에 나란히 있다.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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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와 아들 나란히 안장

독립유공자 3묘역(705번)에 계신 조문기 지사는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부민관 폭파 의거'를 거행하였으며,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을 지냈다. 독립유공자 4묘역(397번)의 김준엽 지사는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다.

이밖에 광복군에서 활약한 김효숙·김정숙 자매와 조옥순, 광복군사령관 지청천의 딸로 광복군에서 활약한 지복영(이버지 지청천 장군은 서울현충원 임정 요인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1930년대 사회주의계 노동운동에 헌신한 이효정, 이병희, 제주지역 최대의 여성주도 항일운동을 전개한 김옥련·부춘화 등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재야 민주화운동가였던 함석헌 선생은 오산학교 교사로 일제하에서 독립운동을 벌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였다. 1970년 월간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여 1980년 폐간당할 때까지 10여년 간 많은 글을 발표하고 강연 등을 통해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그의 묘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에 있었는데, 2002년 건국훈장이 추서됨에 따라 2006년 국립대전현충원에 이장되었다.

반면 이승만의 친위대 역할을 하며 테러를 일삼았던 서북청년단의 선우기성은 오산학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해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고, 애국지사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한국영화의 개척자이자 영화 ‘아리랑’의 연출자인 나운규 감독이 독립유공자묘역에 영면해 있다.
 한국영화의 개척자이자 영화 ‘아리랑’의 연출자인 나운규 감독이 독립유공자묘역에 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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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에서는 일제 강점기 한국 영화의 개척자이자 최초의 영화 '아리랑'의 각본·감독·주연을 맡았던 나운규 감독 등이 영면해 있다. 지난 6월 충남 연기군 출신 애국지사 임우철 선생이 101세로 돌아가신 뒤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묻힘으로써 생존 애국지사는 국내 16명, 국외 3명 등 총 19명만 남게 됐다.

논란의 인물 주체사상 창시자 황장엽 묻혀

국가사회 공헌자 묘역에는 국가나 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외국인을 포함한다) 중 사망한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사람들이 모셔져 있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 박치기왕으로 유명한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가 안장되어 있고 최근에는 '아시아의 물개'로 불리던 조오련 수영 선수의 유해가 가족묘에서 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기도 하였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시사만화 '고바우영감'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성환,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 등 수많은 동요의 노랫말을 지은 윤석중 아동문학가가 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 전직 국무총리나 장관, 대법원장 등 고위 관리들이 다수 있다.

논란이 되는 인물로는 2010년 10월 10일 사망한 황장엽이다. 안장 자격이 없던 그를 1등급 훈장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는데, 훈장을 먼저 받은 후에 현충원에 안장된 것이 아니라, 현충원에 안장하기 위해 훈장을 추서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또 주체사상을 창시해 독재 정권의 기틀을 마련하고 북한의 인권 악화를 초래한 장본인이 단지 남한으로 넘어와서 김정일을 비판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현충원에 안장될 수는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세월호 침몰로 숨진 교사 순직공무원 묘역에

순직공무원묘역은 군인, 경찰, 소방 공무원을 제외한 공무원의 묘역이다. 직무 수행 중 순직한 경우가 해당한다.

지난 2018년 산불진화 헬기 한강 추락 사고로 순직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윤규상 검사관(정비사)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는데, 위험직무순직으로 첫 인정된 사례다. 2019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폭발 사고로 숨진 연구원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국방과학연구소법에 따라 공무원 신분이 인정돼 대전현충원 안장이 결정된 사례다. 또 순직공무원 묘역에는 한국전쟁 당시 군사 수송 작전에 참여했다 순직한 철도원들도 안장돼 있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안산 단원고 교사들이 순직공무원 묘역에 안장된 것은 교사로서는 처음이다. 2017년 11월 고창석 교사가 안장된 이래 2018년 1월 양승진·박육근·유니나·전수영·김초원·이해봉·이지혜·김응현·최혜정 교사의 유해가 차례로 안치됐다. 이중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3년 넘게 순직 인정을 받지 못했다가 뒤늦게 순직이 인정됐다. 이들은 모두 2014년 4월16일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안에서 제자들을 구하다 미쳐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제자들을 구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안산 단원고 교사들의 합동 안장식이 지난 2018년 1월 진행되고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제자들을 구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안산 단원고 교사들의 합동 안장식이 지난 2018년 1월 진행되고 있다.
ⓒ 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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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상자 묘역에는 대전현충원 최연소 안장자인 변지찬(향년 8세)군이 잠들어있다. 2005년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려다 사망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조난한 동료를 구하려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전재규 연구원 등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숨지거나 다친 분들의 사연이 의사상자 묘역에 깃들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 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실렸습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시민미디어마당 협동조합입니다.
태그:#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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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간신문에서 사진기자로 활동, 2007년 <제1회 우희철 생태사진전>, <갑천의 새와 솟대>, 2008년 <대청호 생태사진>, 2008년 <하늘에서 본 금강> 사진전 동양일보 「꽃동네 사람들」, 기산 정명희 화가와 「금강편지 시화집」을 공동으로 발간. 2020년 3월 라오스 신(新)인문지리서 「알 수 없는 라오스, 몰라도 되는 라오스」를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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