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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간격으로 계속해서 배달되는 엄마의 택배
▲ 엄마의 택배 퍼레이드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해서 배달되는 엄마의 택배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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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는데, 나는 엄마를 생각하면 화부터 난다. 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나는 걸까? 엄마의 사랑이 무지막지하기 때문이다.

나의 고향은 사계절 중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 사방이 싱글거리는 초록으로 가득하고, 나무엔 우람한 과실들이 으스댄다. 땅의 모든 감각이 열려 있으며 그 땅으로부터 잉태한 생명들은 자신의 존재를 대차게 과시한다. 

요즘 가장 대차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과실은 복숭아다. 내가 자란 고장에선 복숭아가 특산물이다. 우리 집도 복숭아 과수원을 하는데 이맘때가 가장 바쁘다. 보통은 부모님도 뵙고 일손도 도울 겸 겸사겸사 남쪽으로 휴가를 가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방문을 하지 못하고 전화로만 소식을 주고받는다. 

엄마는 제철을 맞은 복숭아를 못 먹어서 어쩌냐며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연신 택배를 보내온다. 사람들은 복숭아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하지만, 내 입장은 다르다. 나는 화가 난다. 

"엄마! 또 보냈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야야~ 아직도 안 묵고 있으면 우짜노. 얼른얼른 무라." 


그리고 며칠 뒤, '띵동' 해서 문을 열면 택배다. 또 복숭아다. 우리 가족은 죽자 사자 복숭아를 먹는다. 아이들도 처음엔 좋다고 먹다가 한 며칠이 지나면 거들떠도 안 본다. 복숭아 귀한 줄 모른다.

엄마가 보내는 복숭아는 대부분 흠과다. 상품성이 떨어지지만 먹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주변인들에게 나눠주려니 흠과를 주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 관둔다. 결국 우리 가족이 죄다 해결해야 한다.

흠과를 보내는 그 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여기저기 상처 난 복숭아를 냉장고에 쑤셔 넣고 있자면 고마움보단 원망이 더 앞선다. 이런 고충을 몇 번이나 말해도 엄마는 매번 같은 말을 한다. 

"야야~ 도시에선 그런 것도 다 돈 아이가. 부지런히 무라."

사랑도, 복숭아도 다 때가 있는 법 

한 번은 택배사 사정으로 하루 늦게 택배가 도착했다. 박스를 열었더니 복숭아가 죄다 썩어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을 직접 목격하면 모정이고 뭐시기고 여름 열기보다 더 이글대는 분노가 솟구친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복숭아에선 끈적이고 축축한 진물이 흐른다. 날파리들이 파르르 집 천장으로 날아오른다. 이걸 또 버리려면 박스 채 음식물 처리장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혼자 힘으로 들기엔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일일이 손으로 썩은 복숭아를 비닐봉지에 담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며 버려야 하는 수고를 겪어야 한다. 

혼자 살던 자취 시절, 비슷한 일로 엄마와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싸움이라기보다 나의 일방적인 폭주가 더 맞는 말이다. 일이 많고 밤샘근무가 잦아 거의 회사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도 엄마의 택배는 무자비했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시시때때로 택배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택배가 달갑지 않았다. 그 안엔 호박이며, 양파며, 무며, 대파며, 엄마가 키우는 작물들을 얌전히 누워있었다. 늙은 호박이 있을 때도 있었다. 
 
냉장고. 엄마가 보낸 것들이 들어찰 자리가 없었다.
 냉장고. 엄마가 보낸 것들이 들어찰 자리가 없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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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걸 어떻게 먹으란 건지. 게다가 내 자취방 냉장고는 허리춤만 한 크기였다. 냉장고 공간은 비좁고 엄마의 택배는 끊이지 않았다. 필요할 때 마트에 가면 언제든지 비싸지 않게 살 수 있는 것들을 굳이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엄마에게 짜증이 났다. 모자란 잠과 스트레스에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던 날, 또 현관 앞에 배달된 엄마의 택배를 보고 나는 결국 폭발했다. 

'이걸 어떻게 해서 먹냐, 벌레가 얼마나 생기는 줄 아냐, 버리는 것도 일이다. 혼자 사는데 이 양이 웬 말이냐.'

앙칼지고 독하게 쏘아붙였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다가 "알았다"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인 나를 타박했다. 내 전화를 받고 엄마가 울었다고. 싸가지가 없다고.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고.

너무 했나? 싶은 생각에 나도 맘이 편치 않았다. 그 뒤부턴 엄마의 택배에 일언반구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받는 사람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택배를 보내고 보는 엄마를 보면 여전히 답답하고 화가 난다. 그래도 이젠 예전과 달리 좋게 좋게 해결해보려 한다.

"엄마. 맛있게 잘 먹었는데, 너무 연이어 보내지 마. 다음에 보내. 진짜 넣을 데가 없단 말이양~"  

그랬더니 엄마가 말한다.  

"야야~ 다음이 어딨노. 다 때가 있는데... 요때 지나면 보내고 싶어도 못 보낸다." 

그 말이 말벌처럼 내 가슴을 쏘았다. 따갑고 아프고 붓고 시큰했다. 엄마가 말한 보내고 싶어도 못 보내는 때란 복숭아 철이 끝나는 시점을 말한다. 하지만 내게 이 말은 아주 먼 훗날 엄마가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때,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때, 엄마의 복숭아가 그리워질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있어 좋다, 정말 좋다 

나를 화나게 하는 엄마의 무지막지한 사랑도 복숭아처럼 다 때가 있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마트에서 복숭아만 봐도, 눈앞에 알짱이는 날파리만 봐도 눈물을 왈칵 쏟을 것이다. 엄마에게 못되게 쏘아붙인 걸 두고두고 가슴 아파하며 나를 질책할 것이다. 그것이 자식의 숙명이다. 

갑자기 쳐다도 보기 싫던 복숭아가 먹고 싶어졌다.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상처투성이 복숭아. 썩은 부분은 칼로 동그라이 도려내고 쓱쓱 깎은 뒤 서긋서긋 잘라 그릇에 예쁘게 담았다. 포크로 콕 찍어 '와앙' 하고 베어 무니 입안에 복숭아 과즙이 향긋하게 적셔진다.  

다른 엄마들은 딸한테 예쁜 과일만 준다는데 엄마는 흠과만 준다며 툴툴댔더니, 원래 썩은 게 더 맛있다고 멋쩍게 웃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복숭아 사이사이에 오이나 가지 같은 농작물을 끼워 넣는 엄마의 표정이 떠오른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영어로 된 아파트 이름을 꾹꾹 눌러쓰는 엄마의 손도 떠오른다. 꼬깃한 현금을 지불하며 택배비가 비싸다고 구시렁대는 엄마의 말투도 떠오른다.

무지막지한 사랑으로 나를 화나게 하는 엄마... 
그런 엄마가 있어서 좋다. 정말 좋다.
엄마, 그래도 택배는 좀 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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