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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정원에서 살펴보는 산사원의 세월량과 운악산의 전경이다.
▲ 야외정원에서 살펴보는 산사원의 세월량과 운악산의 전경 야외정원에서 살펴보는 산사원의 세월량과 운악산의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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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잠에 들었을까? 노곤했던 하루를 보낸 탓인지 꿈도 꾸지 못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그날 밤을 골아떨어진 채로 하루를 보냈다. 아직 동이 채 트지 않는 새벽, 산에서 내려온 듯한 차가운 공기가 꽤나 쌀쌀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날이 더워지기 전에 시원한 공기와 산뜻함을 즐기려고 호수가로 천천히 걸어갔다. 안개로 인해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 속에서 나는 더할 나위 없는 고독감을 느낀다. 작년 여름부터 경기도의 31개 도시와 인천, 강화까지 묶어 총 33개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파악해 보려는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22개의 도시를 돌아다녔지만 마음속에 묻어 나오는 외로움은 커져만 간다.     

호수를 한없이 쳐다보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았던 기억들, 삶의 무게는 물론 짓눌리는 고통의 현장 속에 홀로 감당해야 하는 많은 것들을 안갯속으로 흩날려 본다. 어느덧 안개가 걷히고, 고요하고 청초한 모습 그대로 산정호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1977년 이래 국민관광지로 지정되면서 현재까지 포천의 대표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산정호수는 과연 어떻게 조성되었을까?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 영북 영농조합의 관개용 저수지로 구축되었으며 산속에 있는 우물이란 뜻을 빌려 산정호수라는 명칭을 얻었다. 명성산을 배경으로 하는 산세의 아름다움과 호수가 빚어내는 아름다움 덕분에 그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다.      
 
포천을 대표하는 명소인 산정호수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한 농업용 저수지였으나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찾는 국민관광지가 되었다.
▲ 포천에서 가장 유명한 경승지, 산정호수 포천을 대표하는 명소인 산정호수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한 농업용 저수지였으나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찾는 국민관광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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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한화리조트를 비롯한 숙박단지고 몰려있는 하동주차장으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놀이공원을 비롯한 위락시설과 식당가가 있는 상동 주차장으로 가는 것이다. 

각각의 장단점이 명확한 편이니 본인이 선호하는 코스에 맞춰 출발지로 삼으면 좋다. 하지만 본인이 산정호수를 조용한 산책길로 걷고자 한다면 무조건 하동을 출발지로 잡아야만 한다. 물론 하동이 상동에 비해 고도가 낮은 편이라 상당한 오르막길을 걸어서 올라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다. 10분 동안 천천히 숨을 고르며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산정호수의 제방이 나타나며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우선 상동 방향으로 가서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로 잡고 호숫가를 걷다 보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인 궁예를 본격적으로 만날 수 있다. 호숫가의 패널에는 궁예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애니메이션화해놓았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궁예는 드라마 <태조 왕건>을 통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지만 한반도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신라 왕실에서 버림받았고, 승려 생활을 했다는 점, 미륵 사상을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는 것 등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다시 한번 궁예가 다시 주목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궁예 관련 판화를 살피다 보니 어느새 상동 주차장 부근까지 오게 되었다. 그동안 보았던 산정호수의 잔잔했던 모습과 다르게 호숫가엔 오리배들이 둥둥 떠 있고, 색이 바랜 놀이기구들이 어색한 자태로 서 있었다. 아마도 산정호수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면서 설치된 위락시설들로 보인다.

그 당시 마땅한 놀이시설이 없었던 때라 인기를 끌었겠지만 국민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고 트렌드도 조용한 힐링 시설을 선호하는 지금 자연스레 쇠락을 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나름 조각공원도 설치했지만 단순한 눈요기 이상의 무언가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가족호텔을 개조한 '낭만 닥터 김사부'의 돌담병원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촬영지로 쓰였던 돌담병원은 예전에는 포천 가족호텔로 쓰였다고 한다.
▲ 예전에는 포천 관광호텔로 쓰였던 돌담병원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촬영지로 쓰였던 돌담병원은 예전에는 포천 가족호텔로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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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유원지를 벗어나 다시 호숫가를 거닐어 본다. 여기서 소나무 숲 쪽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브라운관에서 본듯한 낯익은 건물이 한 채 보인다. 바로 <낭만 닥터 김사부>의 주 무대, 돌담 병원이다.

내부는 못 들어가게 막혀 있었지만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았던 건물 그대로 지금까지 보존 상태가 괜찮았다. 알고 보니 드라마 촬영을 위해 세트장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1988년 지어져서 2013년에 적자 누적으로 폐업될 때까지 호텔로 쓰였던 산정호수 가족호텔이었단다. 현재는 드라마가 종방된 지 오래되지 않았기에 나름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제 데크길을 따라 편하게 산책을 하면서 각도에 따라 다른 경관을 보여주는 산정호수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차례다. 길을 걷다 보면 이곳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낯선 표지판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산정호수에 김일성 별장이 있었다고 한다.

해방 직후 포천 땅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산정호수는 북쪽에 속했다. 산정호수의 지도를 뒤집어 보면 한반도의 모양과 비슷하게 보이고, 자연경관이 뛰어나다는 점 때문에 김일성 별장이 세워졌다. 한때 포천에서 복원 계획도 있었다곤 하지만 많은 논란 때문에 현재는 추친 계획이 없다고 한다.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를 담고 있는 산정호수의 아름다움이 변함없이 우리 곁에 남았으면 좋겠다.

이제 마지막 발걸음은 배상면주가에서 운영하는 산사원으로 이어진다. 전통술 박물관과 배상면주가를 창업한 우곡 배상면의 기념관, 그리고 술을 발효하는 세월량과 야외정원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애주가들에게는 술 종합 테마파크라 봐도 무방한 장소다.

먼저 전통주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전통술의 원리와 탁주의 제조 과정을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알려줘 관람자의 흥미를 돋게 해 준다. 특히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항아리들, 각종 도구들, 전국에 퍼져 있는 수많은 전통주를 보니 벌써부터 내 입이 근질거리는 듯하다.    

수십 종의 전통술을 시음할 수 있는 곳  
  
산사원에는 전통주 박물관, 시음을 비롯해 전통주 관련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에 뇌리에 가장 깊게 박혔던 장소는 우곡 배상면 선생의 기념관이다. 그의 치열했던 전통주 연구의 노력을 집대성한 공간이다.
▲ 산사원에 위치한 우곡 배상면 선생의 기념관 산사원에는 전통주 박물관, 시음을 비롯해 전통주 관련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에 뇌리에 가장 깊게 박혔던 장소는 우곡 배상면 선생의 기념관이다. 그의 치열했던 전통주 연구의 노력을 집대성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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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하로 내려가 시음을 할 차례가 왔다. 입장권을 끊으면 각자 시음잔 하나씩을 받고 시음실에 있는 수십 종의 전통술들을 차례로 시음해 볼 수 있다. 전통주에 관해 꽤 문외한이었던 나로서 우리 술의 세계가 얼마나 깊은지 이번에 단단히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단감으로 만든 와인의 맛이 너무 달지도 않고 다양한 맛을 복합적으로 느끼게 해서 너무나 좋았다.

시음으로 끝내려고 했었는데, 결국 내 손에는 그 술들이 쥐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 애주가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으리라. 이제 반대편에는 배상면주가를 창업했던 우곡 배상면 선생의 작업실을 엿보게 된다.

그분의 정확한 인생은 잘 모르지만 전통주 하나의 열정만큼은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벽면을 가득 메운 그의 연구노트, 전통주 관련 서적 등을 보며 존경심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의 열정 덕분에 전통주 시장이 다시금 붐을 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     
 
산사원의 전통정원 공간으로 가면 술을 발효하는 항아리가 모여 있는 장관을 살필 수 있다.
▲ 포천 산사원의 세월량 산사원의 전통정원 공간으로 가면 술을 발효하는 항아리가 모여 있는 장관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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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야외정원으로 다시 나와 세월량이라 불리는 전통주 숙성고를 볼 차례다. 400개의 옹기 독들 그것도 하나에 650리터가 들어가는 항아리가 모여 또 하나의 장관을 만들었다. 그 뒤편에는 소쇄원의 광풍각을 본떠 만든 취선각이 있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세월량과 그 뒤의 운악산의 조화가 정말 아름답다.

산사원을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포천 땅과 작별을 고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영화를 누렸지만 현재는 사람들의 관심에 한발 떨어져 있는 곳이다. 언젠가 포천 땅을 거쳐 금강산으로 가는 육로가 열리는 날 다시금 주목을 받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9월초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한 운민의 경기별곡 1권이 출판됩니다. 많은 사랑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경기도, #경기도여행, #포천, #포천여행,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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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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