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여름휴가 내내, 여러분처럼 못 읽었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출퇴근과 아이들 챙기기, 카카오 음의 새벽방송, 일주일에 세 번 연재하는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을 다람쥐처럼 준비하다 보니, 특별한 결과물도 없는데 분주하기만 해서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없었거든요.

앞부분만 들췄다가 덮기를 반복했죠.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산문집, 시집 그리고 내가 관심 있어서 구매한 책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휴가라고 해도 3~4일 정도에 불과하기에,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겠지만, 최대한 꼼꼼히 읽고 있습니다.

오늘은 '시인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시집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진정성' 때문이 아니라, 내가 겪지 못했던 삶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어 의미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이러한 삶도 있었고, 어떤 상황에선 이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는, 삶을 대리 경험할 수 있죠. 여름 휴가의 막바지 의미 있는 시집을 읽어 보시는 것 어떠할까 해서, 세 권의 시집을 추천합니다.

김승일 시인의 시집 <프로메테우스>(파란)
 
김승일 시집 프로메테우스
▲ 김승일 시집 프로메테우스
ⓒ 파란

관련사진보기

 
그악스러운 상황이라면 폭력은 무차별적이겠지만, 오늘의 폭력은 사람을 가립니다. 학교 폭력과 관련해선 더더욱 그러하죠. 순진하고 약한, 힘없는 학생이 폭력의 타깃이 됩니다. 김승일 시인도 그 타깃 중 한 명이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학교폭력에 당한 경험을 시집 <프로메테우스>에 녹여 냈습니다.

시인의 시 '화사한 폭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날 끌고 나온 너 / 같이 밥을 먹던 너 / 갔다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 수많은 발이 타격하는 축구공처럼 / 꽃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 다시는 들어갈 수 없는 사월이었다'라고. 나는 처음 너를 친구로 생각했으나, 나를 축구공처럼 타격했던 운동장 사건 이후 나는 내가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세상'이 파괴된 것입니다.
 
운동장에 얼굴을 처박는 꽃잎들
끌려온 자목련 끌려 나온 개나리를
나뭇가지 안에 넣어 두고 싶었다
사월의 담장 안으로 거두어 주고 싶었다

나는 너의 신발 뒤축만 살짝 보았을 뿐인데
귀가 뜨겁고 얼굴이 노랬다
햇빛 속 운동장을 가로질러

날 끌고 나온 너
같이 밥을 먹던 너
갔다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발이 타격하는 축구공처럼
꽃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다시는 들어갈 수 없는 사월이었다

- 김승일 시인의 시 '화사한 폭력' 중에서

학교폭력을 당하던 아이들이 자살하는 까닭, 저 파괴된 세상 속에서 자신이 숨을 장소가 없다고 판단한 까닭입니다. 그 누구도 내 방어막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죠. 어른과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며, 이미 어른이 된 우리의 시각으로는 아이들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소 읽기 어려운 시집이지만(이 시집을 읽었던 독자의 의견을 전달해 드립니다), 학교 현장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특히 학교 폭력과 관련하여 일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왜 우리가 학교폭력과 그리고 세상의 모든 폭력과 맞서 싸워야 하는지 참고하기에 좋은(거의 유일한) 시집입니다.

류시화 시인의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문학의 숲)
 
류시화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문학의 숲

관련사진보기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사랑하는 시집 한 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을 추천할 것입니다. 이 시집은 류시화(본명 안재찬) 시인의 세 번째 시집입니다. 네 번째 시집인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열림원)는 시선집입니다. 등단 이후에 썼던 시들을 모은 시선집인데요, 이 시선집을 읽으면 류시화 시인의 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시집에서 '반딧불이'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려고 / 당신을 처음 고향 마을에 데리고 간 날 / 밤의 마당에 서 있을 때 / 반딧불이 하나가 / 당신 이마에 날아와 앉았지' 농담 삼아, 제 아내의 이마가 넓어서 이 시가 끌렸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 서정적인 풍경묘사입니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사랑의 추억이 내 몸으로 윤회한 것처럼 되살아납니다. 담담히 얘기하는 화자의 목소리에서 '다정함'이 느껴집니다. 제가 제 마음과 시에 담고 싶은 다정입니다.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려고
당신을 처음 고향 마을에 데리고 간 날
밤의 마당에 서 있을 때
반딧불이 하나가
당신 이마에 날아와 앉았지

그때 나는 가난한 문학청년
나 자신도 이해 못할 난해한 시 몇 편과
머뭇거림과
그 반딧불이밖에는
줄 것이 없었지

류시화 시인의 시  '반딧불이' 중에서

낭독회에 초대되어 갈 때면, 제 시집과 함께 이 시집을 품 안에 넣고 갑니다. 단 몇 편의 시만 읽었을 뿐인데 독자의 입이 술술 풀립니다. 감정의 동화가 만들어내는 기적이겠죠. 류시화 시인의 시만이 가지는 특별함입니다. 이 시집은 언제 읽어도 좋을 시집입니다. 추천할 때마다 좋은 시집 소개해줘서 감사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다산책방)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다산책방

관련사진보기

 
외국 시인의 시 중에서 한 편을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을 손꼽습니다. 불행한 한 시절을 살았던 시인, 이 시집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던 까닭은 그의 삶 이야기가 타자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껴 읽을 문장이 많습니다. 산문집 <시와 산책>에서 소개되었던 문장,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는 시 '여름'의 한 문장입니다. '살다 보면 겪는 고통, 너무나도 힘든… 모르겠어'('검은 전령' 중에서)라는 문장은 삶의 고통을 끔찍하게도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어 더 아픕니다. '나는 신이 /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같은 이야기' 중에서)와 같은 문장을 읽을 때면, 이렇게도 아프게 삶을 표현할 수 있구나라며, 탄식하게 합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고생한다는 걸
모두들 압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이나 끝은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

세사르 바예호 시인의 시 '같은 이야기' 중에서

시를 공부하기 위하여 억지로라도 외국 시인의 시를 읽는데요, 다수의 시집에서 익숙하지 않은 문장 때문에 읽는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질감'이라고 말씀드리면, 어떠할까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느낌을 토로하시는 분들도 여럿 만났습니다.

세사르 바예호 시인의 시집은 다릅니다. 머릿속에 담긴 이상이 아닌 삶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대는 달라도 삶은 동일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니까요. '이상은 공허하고 현실은 담담하다'라는 문장은 제가 외국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떠올린 생각입니다.

여름 잘 보내시고, 가을에 뵙겠습니다

몇 주 동안 여러 권의 시집, 산문집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혹시 읽어 보셨나요. 실망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해도, 우리는 지금 책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좋은 책을 골라서 읽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시집과 산문집 소개, 제가 다독(多讀)가로서 읽어보면 좋은 책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인데요, 폐를 끼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스케줄은 가을쯤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을에 읽기 좋은 시집·산문집'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 모두를 천천히 훑어보려고요. 이번처럼 읽기 편하면서도 가을의 감정을 물씬 풍기는 책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책과 시집 관련된 얘기를 더 듣고 싶으시다면, 제가 매일 새벽 6시 '카카오음'에서 시를 읽어드리고 있으니까요, 방문해 주시길 바랍니다. 라디오처럼 편하게 듣다 보면, 어느새 시(詩)가 내 마음 가까이 한 발짝 다가와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럼, 책 읽기 좋은 가을에 뵙겠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이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

김승일 (지은이), 파란(2016)

이 책의 다른 기사

어서 와, 5월 개학은 처음이지?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은이), 열림원(2015)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은이), 고혜선 (옮긴이), 다산책방(2017)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평일 새벽 6시 <클럽하우스>, <카카오 음>에서 시 읽어드립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