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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락향
▲ 디카시 <등> 김락향
ⓒ 김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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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인생이 나에게만 가혹해 보일 때가 있었다. 삶은 불행의 연속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적도 있다.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인생이라며 원망한 적도 많았다. 열심히, 성실히, 포기하지 말고 잘 살자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정답이었다. 내가 이미 아는 답이 전혀 위로를 주지 못할 때, 나는 나를 견디게 해 줄 해답을 찾아야만 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세상을 원망하며 사는 삶은 지독하게 소모적이었다. 그 원망의 대상이 나 자신일 때, 생은 더욱더 지옥 같았다. 원망을 동력 삼는 인생은 안식이 없었다. 삶이란 버티고 견디는 것이며 그 사실이 앞으로도 변함없을 예정이라면, 조금 더 힘을 빼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여유롭게 맞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얻어야 했다. 의미를 찾는 여정은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 해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힘들다. 누구나 버티고 견디고 있는 일 한두 개쯤은 있는데 말이다. 나만 힘든 건 아니란 사실은 동질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순수한 연민은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등을 내어주는 사랑을 가능하게 만든다. 내 삶도 분명 내게 등을 내어준 사람들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다.

등을 내어주었던 사람들은 아마 내가 가야 할 길을 이미 지나쳐갔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이미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그 앞에 서서 머뭇거리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은 큰 울림을 준다. 나는 고마운 사람들의 등에 기대어 험난한 길을 조금 덜 넘어지면서 걸어왔다. 삶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말이다.     

방황의 끝에서 '함께 함'으로 균형 잡는 법을 배우던 순간, 똘똘한 눈빛과 당찬 목소리가 매력적이던 후배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전공에 대한 회의감,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주는 부정적인 싸인들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나쳐가야 할 길 앞에 서서 머뭇거리는 후배에게 나는 연민을 느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어도 오늘의 힘겨운 날들이 언젠가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내민 손을 붙잡고 걷던 후배는 아마 지금쯤 스스로 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등을 내어주고 있을지 모르겠다.       

시인은 바위와 그 곁에서 자라난 꽃을 보며 살아낸 날과 살아갈 날을 떠올렸다. 지나쳐온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일이 만나는 일은 수없이 머뭇거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등에 업고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업혀 가겠다는 결정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손을 내밀고 등을 내어주는 일, 기대고 의지하는 일은 언제나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믿음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말로 꾸며낸 가식은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등을 내어주고 기댈 바위가 되어주고자 하는 진심만이 언제나 수없이 머뭇거린다.     

시는 "수없이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다"로 끝을 맺고 있지만 바위에 기댄 꽃의 명징한 이미지는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기대고 함께 의지하며 살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머뭇거림의 끝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서로는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 삶이 의미 있어지는 길은 없다. 등을 내어줄까 머뭇거리는 사람들, 기대도 될까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사랑으로 다가서는 삶이 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claire1209)에도 업로드 됩니다.


태그:#디카시, #진심, #함께, #바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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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화예술기획자/ 『오늘이라는 계절』 (2022.04, 새새벽출판사)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 (2023.10, 학이사) (주)비커밍웨이브 대표, (사)담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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