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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한창 손이 많이 가던 시기,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 한창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없을 때면 아이도 잘 돌보는 '착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전화라니,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는데.

"국자 어디 있어?"
"?!"


전화를 받고는 잠시 아무 말도 못 했다. 설거지가 되어 있다면 설거지통 혹은 수저 꽂이 정도에, 설거지가 안 되어 있다면 싱크대 안에, 그것도 아니라면 어쨌든 부엌, 아니 넓지도 않은 집안 어딘가에는 있을 국자였다.

황당했던 건, 국자의 위치를 묻기 위해 굳이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와이프에게 전화를 하는 이 착한 남편의 행동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쓰는 거라 사적인 장소에 숨겨 둔 무엇도 아니고, 부엌이 아니면 있을 리 만무한 국자라는 물건을 찾기 위해 집 밖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휴, 안 보이면 그릇 사이사이를 들춰봐. 설거지통 같은 데 있겠지!"

나는 그렇게 타박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없는데...'라는 문자를 계속해서 보내오다가 조금 지나서야 그릇 사이에서 찾았다고 연락해 왔다.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남자와 여자는 원래 다르다는 오래된 사고 방식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남자와 여자는 원래 다르다는 오래된 사고 방식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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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OOO 어딨어?"라고 묻는 때면 불안감이 급습해 온다. 나 또한 그 물건이 놓여있는 '아주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해 "옷장 안에 있을 거야", "책상 위에 봐봐", "안방에 있어"라고 말해주면 결국 100이면 100, 그가 물건을 찾지 못하고 나를 부른다.

그가 찾는 물건은 '옷장의 다른 옷 사이에' '책상 위 오른쪽 이면지 아래' '안방 탁자 위 가습기 왼쪽 옆에' 놓여있다. 그는 다른 옷 사이사이를 살필 생각도, 물건들을 들춰볼 생각도, 탁자 위를 둘러볼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가 물건을 찾는다는 것은 내가 설거지를 하든, 목욕을 하든, 화장실에 있든 결국 내 할 일을 멈추어야 함을 뜻한다.

신혼 초에 이런 일이 자주 발생했을 때 나는 남자와 여자 간의 뇌구조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분명한 차이가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나의 20대 때는 당시 유행하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정도가 남녀차를 이해하기 위한 그나마의 참고 자료였고, 그 자료에 의하면 남녀가 '원래' 가지고 있는 뇌 구조와 감정의 차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남녀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했다. 즉, 남자는, 여자는 '원래' 그러니 이해하라는 말이었다.

그 시대에는 이런 류의, 즉 남자와 여자가 '원래' 얼마나 다른지를 극명하게 설명하는 이론이 유행했고 지인들끼리 이런 이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맞아, 맞아'라며 공감하곤 했다. 2011년 출간된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에서 설명한 남녀의 시야 차이에 대한 이론도 정리하면 이랬다. 

'남자는 오래전부터 멀리 떨어진 목표물에 집중해서 사냥을 하며 진화해 온 이유로 망원경을 들고 앞을 보는 것처럼 좁고 멀리 보는 '터널 시야'를 가지고 있고, 여자는 거주지를 지키며 침략자가 오는지 항상 살피면서 지내왔기 때문에 주변을 넓게 보는 '광각 시야'를 가지고 있다.'

이 이론은 남녀 차이를 탐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반영되어 왜 남성이 여러 매장이 있는 쇼핑몰에서 두리번거리며 쇼핑하는 것을 힘들어하는지 우스꽝스러운 콩트로 연출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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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자는 '원래'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며 남편의 '터널시야'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버리려던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광각 시야'로 인해 변화를 맞이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물건을 참 잘도 찾는 다른 집 남편들이 많이 눈에 띄었고, 나의 첫째 딸 또한 여자임에도! 아빠와 비슷하게 물건을 잘 못 찾는 양상을 보였으며 또한 결혼생활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남편도 조금씩은 변화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행을 몇 시간 앞둔 어느 날, 내가 다른 일로 집을 비우자 그동안 남편은 물건들을 찾아서 짐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그건 나에겐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내가 부재하니, 그리고 시간이 촉박하니 남편도 다 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이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 사람도 원래 못 찾는 사람이 아니다, 물건 찾기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내게도 보인다!'

사실 요리 잘하는 남성 셰프가 인정을 받고 장관급 인사에서 여성이 늘어나며 살림을 도울 줄 아는 아들을 뿌듯하게 여기는 부모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성역할의 고정관념은 진작에 깨진 것 같다. '남녀가 원래 다르니 이해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남녀는 원래 같으니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것이 시대의 대세임이 분명해 보인다.

얼마 전 발간된 이스라엘의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가 쓴 <젠더 모자이크>라는 책이 이런 경향에 과학적 근거를 더한다. 이 책의 저자는 '여자 뇌, 남자 뇌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과감하게 펼친다.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남녀의 사고 구조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두뇌는 모두 '여성적' 그리고 '남성적' 특징이 혼합된 조각보, 즉 모자이크와 같다는 사실을 뇌 영상 연구를 통해 밝힌 것이다.

다르지 않다, 다르다고 배워 왔을 뿐
  남자들은 '원래' 물건을 잘 찾지 못한다는 믿음은 학습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남자들은 "원래" 물건을 잘 찾지 못한다는 믿음은 학습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 픽사베이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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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는 원래 다르다는 오래된 사고 방식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지금의 사회와는 정반대인, 여성 우월적인 사회를 그린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은 아이는 당연히 남성이 돌봐야 하고 바깥일은 당연히 여성이 해야 한다는 등 모든 성역할적 시스템을 지금과 반대로 설정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원래' 그렇다고 믿었던 남성과 여성의 특성과 역할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철저한 학습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그 학습에 의한 고정관념이 전복되는 순간, 왜 우리는 그동안 비논리적인 성별 우월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쓸데없는 논쟁을 벌였는지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게 된다.

자, 이제 문제는 우리 집에 이런 결론을 적용할 차례다. 남편은 살림을 살피는 시간이 나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 이른바 집안 공간과 동선, 물건의 배치를 학습할 시간이 그동안 현격히 적었던 것이다. 15년 동안 간헐적 학습이 이루어졌다면 이제 좀 더 집중적인 학습을 모색해 봐야겠다.

남녀는 원래 다르지 않으니 학습이 그를 변화시킬 것이고, 언젠가 내가 그에게 "OOO이 어딨지?"라고 물으면 "여기!"라고 찾아줄 날이 좀 더 빨리 다가오기를 기대해 보면서.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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